“설득하려는 태도 버리는 것이 공감 위한 설득의 출발점이죠”
흔히 법원은 싸움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기거나 지니까. 이 안에는 싸움을 말리는 사람도 있으니 바로 민사재판 조정위원이다. 안지현(46·온누리교회 대전캠퍼스) 대전고법 상임조정위원은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싸우길 싫어하지만 지길 더 싫어하다 보니 소송을 한다”면서 “하나님이 저를 평화와 화해의 도구로 써주시길 늘 기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조정위원이 됐을까. 아버지의 권유로 법학을 전공했지만 성격은 법률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 때 성격유형검사 MBTI를 했는데 법률가로 유리한 ISTJ와 정반대인 ENFP(외향·직관·감정·인식형)가 나왔다. 그런데 어떤 법철학 책에서 공감을 잘하는 따뜻한 법률가도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그런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 울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고 공부도 힘들었다. 기도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는데 예수님이 내 마음에 ‘네가 시험에 합격해서 나 대신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법률가로서의 소망을 품은 계기다.
2003년 사법연수원 졸업 후 법무법인 소명에서 일을 시작했다. 10년 정도 소년재판 국선변호 활동을 했다. “경험에 비춰 보면 뉴스에 나오는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비행 청소년은 불우한 환경 때문에 거리를 배회하다가 범죄에 휘말리게 된 경우가 많았다. 사회가 이 아이들에게 가족이나 친구가 돼 주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10대 미혼모를 만나기도 했다. “청소년이 직접 아이를 양육하는 비중은 25%도 되지 않는다. 직접 양육을 결심했더라도 빈곤과 주거 불안정에 시달린다. 할머니를 부양하며 홀로 병든 아이를 키우는 청소년도 만나봤다. 이들이 마음 놓고 일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돌봄 서비스나 보육시설 등이 갖추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도 청소년인 아들(14)과 딸(11)을 키우고 있다. 안 위원은 남편과 함께 교회 중등부 교사로 봉사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축복과 기도인 것 같다. 매일 아이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2019년부터는 법원에서 개인 간 다툼을 조정하는 조정위원으로 일하게 됐다.
조정의 노하우는 경청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은 논리와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호감이 가서’ ‘저 사람 참 애쓰네’ 같은 출처 불명의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설득하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설득의 출발점이다. 가능한 한 조정하러 오는 사람들의 말씀을 많이 들으려 한다”고 했다.
ENFP 법률가의 특장점을 살리는 셈이다. 그러면서 최근 경험을 예로 들었다. “아들이 선친의 채무자에게 돈을 청구했다.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증거도 없이 재판을 청구했다. 소송 상대방은 선친이 무리하게 사업을 떠넘겨 고생했다는 원망을 하더라. 이런 각자의 마음에 공감하니까 억울한 감정을 해소하고 합의하겠다고 했다.”
그는 종종 교회 분쟁 조정도 한다. “소송을 내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지에 대해 먼저 위로부터 한다. 그 후 함께 기도하면서 갈등을 조정 절차로 해결하자고 권유한다. 그러면 대개 저를 만나 다행이라 안도하면서 조정으로 원만히 끝내려는 의지를 보인다”고 소개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앞으로 계속 조정위원으로 일하길 원한다.
“저는 한쪽 편만 들어 싸워야 하는 송무 변호사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쪽을 화해시키는 조정위원이 성격에 잘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분노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조정위원이 법원의 듣는 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분노 지수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고 했다.
안 위원은 최근 변호사로 일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모은 에세이집 ‘법정 희망 일기’(이와우)를 냈다. 부제는 ‘조정변호사가 써 내려간 미움과 용서, 그 경계의 순간들’이다. “제가 감성형이라 그런지 법정에서 생긴 즐겁고 슬픈 감정들이 마음에 많이 남더라. 그런 여러 감정을 글로 써 푸는 습관이 있다 보니 책까지 내게 됐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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