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공당의 끔찍한 좌표찍기
범죄 수사하는 검사들이 무슨 죄?
'주여, 이 많은 잔인함 용서하소서'
가기가 쉽지 않아 권하는 데 주저하게 되지만 아우슈비츠(현지어로는 오슈비엥침) 수용소는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300㎞가량 떨어져 있고, 이 나라 제2 도시 크라쿠프에서 차로 한 시간 넘게 가야 당도한다. 주변에 딱히 들러 구경할 곳이 없으니 폴란드 출장자나 유럽 여행객 입장에서는 마음먹고 시간을 내야 방문할 수 있다. 약 10년 전 그렇게 외진 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크라쿠프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적막해 도착 전에 경건함이 절로 생겼다.
몰랐던 무언가는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상이나 사진으로 눈에 익은 장면들이 펼쳐졌다. 수용소 입구까지 이어진 기찻길,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문구로 장식된 출입구, 전기 철조망, 가스 체임버, 시신 소각로…. 유독 깊이 기억에 각인된 것은 한쪽에 쌓아 전시해 놓은 신발 더미였다. 그곳에서 참혹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의 유품이다. 퇴색해 꽃무늬가 희미해진 작은 구두 한 짝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안네의 일기’ 주인도 이곳에 있다가 다른 수용소로 옮겨진 뒤 숨졌다는 설명을 들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존·관리하는 사람들과 어렵사리 그곳에 가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곳을 지키고, 찾는 것일까. ‘인간은 한순간에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는 다짐을 위해서. 내 나름의 답이다.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이 증발한 그곳은 인류 교육장이다.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옷에 육각형 별 문양(다윗의 별)을 새기도록 했다. 곳곳의 수용소에 몰아넣기 전에 벌였던 일이다. 신분증 가운데에 ‘J’자를 크게 새겼다. 나치 당원은 유대인이 사는 집에 다윗의 별을 그렸다. 그렇게 낙인을 찍었다. 이 좌표찍기로 피아의 경계선이 분명해졌다. 비인륜적 유대인 공격이 우리 편을 지키는 위대한 노력이 됐다. 유대인 집에 돌을 던지거나 불을 질러 하루에 100명 가까이 숨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23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사 16명의 이름이 담긴 도표를 내놨다. 그중 열 명은 얼굴 사진까지 붙였다(원본은 11명, 착오로 다른 사람의 사진을 올렸다가 지웠다). 그 열 명에는 방패 모양의 딱지를 붙이고 안에 ‘尹 사단’이라고 적었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를 하는 검사들을 기억하고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당 대변인이 설명했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당 바깥의 조직이 아니라 당이 직접 한 일이다.
검찰이 비밀 조직이 아니므로 누가 어디에서 어떤 수사를 하는지를 아는 게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수사받는 쪽에서 상대를 파악하기 위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신봉을 말하는 공당이 16명을 선별해 이름을 내걸고 그중 열 명은 얼굴까지 공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해당 검사들은 이제 밤길 인기척에 놀라고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엄청난 폭력이다. 이들과 가족이 무슨 죄를 지었나. 검사 중엔 이재명 대표 부인 공금(법인카드) 유용 수사, 아들 도박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이름이 걸린 이도 있는데, 수사를 덮어버렸어야 옳았다는 것인가.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면 당사자가 조목조목 따져 국민에게 알리면 된다.
‘尹(윤) 사단’ 딱지도 흉측하다. 대통령·법무부 장관과의 업연(業緣)이 있는 검사들인데, 한때 같이 일했으면 지시하는 상관과 따르는 부하 역할을 계속한다는 유치한 발상의 결과물이다. ‘계파 패밀리’로 뭉쳐 충성을 요구하고 바치는 이들 눈에는 세상이 다 그렇게 보이나 보다.
이재명 대표 호위무사를 자임한 정치인들은 지지 세력의 후원금으로 한 차례 보상을 받았다. 이제 검사들을 바리새인으로 지목하고 나섰으니 총선 공천에 더 유리해졌다. 이 작업에 앞장선 정치인들은 다음엔 검사 150명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주여, 이 많은 잔인함을 용서하소서.’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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