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컸던 글로벌 테마파크... 강원도의 효자냐 계륵이냐[김원배 논설위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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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소비층인 2~12세 인구 급감
인프라 확장, 추가 투자 여부 관건
청동기시대 유물 보존도 큰 숙제
춘천 레고랜드의 미래는
지난 19일 오전 춘천대교를 건너 중도로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색깔의 각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5월 5일 개장한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다. 진입로 한편에는 ‘역사 유적을 지키자’는 현수막과 시위용 천막도 보였다. 평일에다 영하의 날씨 때문인지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놀이기구도 일부만 운영됐다.
이곳은 세계 10번째 레고랜드로 춘천시 중도동 28만㎡(약 8만4900평) 부지에 건설됐다. 2011년 9월 투자합의각서가 체결된 이후 10여년 만에 완공됐다. 한국에 들어선 첫 번째 글로벌 테마파크지만, 지난 10월 채권시장에서 자금 경색이 나타났을 때 빠짐없이 언급됐다.
사실 문제가 된 것은 레고랜드가 아니라 중도를 개발하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다. 최대 주주는 강원도로 44.02%의 지분을 갖고 있다. 22.54%를 보유한 2대 주주는 영국의 멀린엔터테인먼트로, 전 세계 레고랜드를 운영하는 곳이다. 덴마크 유명 완구업체인 레고사와는 별도 회사지만, 두 곳 모두 레고 창업자 가문의 지주회사인 키르크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중도는 레고랜드와 관련 시설을 제외하면 허허벌판이다. GJC는 강원도 소유의 중도 땅을 넘겨받아 부지로 조성하고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낸다. GJC는 지난 7월 강원도에 총괄재정수지를 보고했는데 412억원 적자였다고 한다. 땅 매각 대금을 모두 합해도 각종 비용에 못 미친다는 내용이다.
레고랜드를 지나 섬 아래쪽으로 가면 비닐하우스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엔 공사 현장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이 임시 보관돼 있다. 2014년 7월 문화재청 발표에 따르면 고인돌 101기와 집터 917기 등 청동기 시대 유적 1400여기가 나왔다. 이를 보존할 유적공원과 박물관을 짓는 것도 GJC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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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출자한 중도개발공사 부실
유적이 나오면서 공사가 지연됐고 금융비용 등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강원도가 파악한 것에 따르면 GJC의 예상 손실 규모는 412억원이 아니라 7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사업 자금은 GJC가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조달했다.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시절 이 CP에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는데 강원도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아 논란이 됐다. 박기영 도의원(국민의힘)은 ”지방재정법상 의회 동의가 필요한데도 이를 거치지 않았다”며 “전임 집행부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 보니 그만둘 기회를 놓쳤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안 그래도 취약하던 채권시장에 지자체 보증도 의미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자금 경색이 나타났다. 강원도는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고 말했지만, 시장에선 이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빚 줄이려 회생 추진, 채권시장 혼란
정재웅 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김 지사 인수위가 모든 문제를 GJC 탓으로 돌리며 감정적 접근을 했다”며 “회생 신청을 해 강원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지적했다. 강원도는 자체 예산 등으로 2050억원을 마련해 보증 채무를 갚았다. 기업 회생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전임 최문순 지사 시절 임명된 GJC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동부건설과 하도급업체는 지난 8월 말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공사를 마무리하고 9월 27일 준공검사까지 마쳤지만 아직 GJC로부터 공사대금 136억원을 받지 못했다. 10월 25일엔 공사 관련 업체와 근로자들이 강원도청 앞에 모여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GJC는 현재 이를 갚을 능력이 없다. 윤인재 강원도 산업국장은 “보증 채무는 강원도가 갚았지만 공사비를 강원도가 대신 낼 수는 없다”며 “GJC가 토지 매매 중도금을 빨리 받아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 끝에 개장한 레고랜드는 강원도 경제에 어떤 도움을 줬을까. 강원도는 지난 4월 보도자료에서 레고랜드 개장에 따라 연간 200만 명의 가족 단위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레고랜드코리아는 정확한 입장객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강원도는 개장 후 내년 5월까지 입장객 수를 90만 명 수준으로 예상한다. 애초 수치의 절반 수준이다. 저출산도 위험 요인이다. 레고랜드가 대상으로 하는 2~12세 인구는 올해 448만 명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를 보면 2030년엔 294만 명으로 감소한다.
레고랜드는 내년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휴장한다. 다만 레고랜드 호텔은 정상 운영된다. 놀이 시설이 3개월가량 문을 닫으면 고용 효과도 떨어진다. 레고랜드 자체는 운영되더라도 강원도엔 기대했던 효과가 나오지 않는 ‘계륵’ 신세가 될 수 있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은 “레고랜드 유치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7000억원 이상이 들어갔고 보증채무를 갚는 데도 2050억원을 썼지만 연간 관람객은 80만 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면밀한 분석 없이 사업 추진하면 큰 부담
김병헌 한국관광진흥학회장(전 한국관광대 교수)은 “레고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경제적 효과를 과다 추정하고 멀린사의 요구도 너무 많이 수용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지자체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원도 입장에선 레고랜드가 완공된 이상 이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레고랜드가 아닌 중도 전체가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려면 추가 투자와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 중도와 춘천시 도심 쪽은 춘천대교를 통해 연결됐지만 반대편인 춘천시 서면을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 주변 부지도 어떻게 매각되느냐도 변수다. 개별 분양하면 난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워터파크나 대형 쇼핑시설, 콘도 유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국내 경기가 좋지 않고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도 쉽지 않다.
박기영·정재웅 도의원 모두 “남은 부지를 효과적으로 매각하고 멀린사의 추가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철성 소장은 “땅을 비싸게만 팔려고 하면 난개발이 될 수 있다”며 “강원도민의 관점에서 중도의 가치를 높이는 개발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인재 국장은 “이름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부지에 관심을 보이는 큰 기업이 있다”며 “서면을 잇는 다리가 건설되면 지가가 오르는 부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계약 놓고도 논란...레고랜드 측 "추가 투자할 것"
「 2018년 12월 강원도와 멀린사가 맺은 총괄계약을 놓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비밀유지 조항에 따라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 지역 시민단체에선 이를 ‘노예계약’이라고 비판한다.
레고랜드 부지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50년 무상으로 임대하고 50년 연장할 수 있다. 멀린사가 테마파크를 짓되, 800억원 상당의 시설은 GJC에 매각한 뒤 다시 빌려 쓰는 구조다. GJC는 임대료로 평균 3%를 받는데 연간 매출이 400억원을 밑돌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GJC는 이미 800억원을 지급했지만 아직 시설도 넘겨받지 않았다. 이를 받으면 재산세 등 각종 세금으로 유지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배임 소지가 있다고 보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에 고발장도 접수됐다.
레고랜드코리아의 2021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5년 이내에 사업을 그만두면 GJC가 매입한 테마파크 시설을 멀린 측에 되팔 수 있지만 5년이 지나면 이 조건도 사라진다. 레고랜드코리아 측은 총괄계약에 대해서는 비밀유지 조항을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논란에 대해선 이런 답변을 했다.
Q : 겨울 휴장은 왜 하는가.
A : 미국 뉴욕, 영국 등 한국과 비슷한 기후를 가진 지역의 레고랜드는 겨울에 휴장한다. 자금 시장 논란과는 관계없다.
Q : 직원들의 고용 문제는.
A : 겨울 휴장으로 인한 계약 중도 해지나 해고 등은 전혀 없다.
Q : 주변 여유 부지가 있다는데.
A : 내년부터 매해 추가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Q : 멀린사가 부산 씨라이프아쿠아리움에 이어 코엑스아쿠아리움도 인수했다.
A : 연계 상품도 고려 중이다. 한국 사업 확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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