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의 문화예술톡] 프리드리히의 겨울 풍경

2022. 12. 2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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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필자가 거주하는 스위스의 겨울은 매우 길고 춥고 습하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도 많지만 짙은 안개가 껴서 눈앞의 풍경이 희미하게 보인다.

회색빛 하늘에선 좀처럼 해가 나지 않고 으스스하게 습한 추위가 뼛속을 파고드는 느낌이 드는 날이 며칠씩 계속되기도 한다. 이런 날씨가 이어질 때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1774~1840)의 겨울 풍경이 생각난다.

‘교회가 있는 겨울 풍경(Winter landscape with church)’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에는 커다란 소나무 세 그루가 그림의 중앙에 있다. 안개가 자욱한 배경에는 희미한 실루엣의 교회가 보인다.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앞에 위치한 바위 앞에 한 남자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고, 그 앞에는 소나무들 앞에 놓인 십자가상이 있다. 그림의 앞부분에는 이 남자가 짚고 다녔을 듯한 목발이 버려져 있다.

「 소나무·교회·십자가 스산한 풍경
인간의 고독한 내면 묘사 탁월
18세기 낭만주의 탄생 보는 듯
감성과 상상력의 새로운 발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교회가 있는 겨울 풍경, 1811, 32.5x45㎝, 캔버스에 유화. [사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 남자는 하얗게 눈 덮인 숲길을 힘겹게 걷다가 이 십자가상을 발견한 감동에 목발도 집어 던진 채 바위에 기대에 간절한 소망을 빌고 있는 듯하다. 그는 희미하게 보이는 교회에 다다르기 위해 혹독한 추위를 마주한 기나긴 여정을 힘들게 계속해 왔을 터였다. 그는 황량한 겨울 속에서 아직 교회를 향한 여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찾게 된 십자가상 앞에서 영적인 감동에 휩싸인 것일까. 겨울에 숲에서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을 그린 듯한 그림 같지만 이 그림에는 당시 화가들이 그렸던 겨울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미화하는 것을 넘어서 화가는 이 그림에 신비함과 화가 자신이 이 풍경을 보면서 가졌을 느낌과 감상을 독특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그림을 보는 이들은 소나무 앞에 위치한 십자가상과 배경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고딕 교회의 첨탑 묘사에서 종교적인 경이로움을 느끼거나, 자욱한 안개 속 보랏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언제라도 눈보라가 몰아쳐서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한겨울의 자연 속에 홀로 남겨진 한 인간이 직면한 부정할 수 없는 고독과 존재의 연약함과 혹은 깊은 우울을 느낄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카스파르 다비디 프리드리히의 이 풍경은 다양한 감상과 내면적인 감수성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화가는 눈앞에 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보는 것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소 어둡고 불안하고 외로워 보이는 이 겨울 풍경은 작가 자신이 어려서부터 목격한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가 지니고 살았던 슬픔과 우울과도 연관이 깊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가가 활동하던 당시 유럽에는 낭만주의라는 예술과 학문의 새로운 사조가 유행이었다. 18세기까지 지배적이었던 바로크나 로코코를 비롯한 고전주의 양식이 소수 귀족이 이끌었던 예술 사조였다면 18세기에 상공업으로 신흥 부자로 떠오른 시민들이 새로운 문화 향유층으로 성장하였고, 이들은 자신의 감성을 자유롭게 발산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당시 사회가 지닌 고정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감성과 상상력을 더 중요시하였고 예술의 창작하는 주체로서의 예술가 자신의 존재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인간의 이성이나 전통적인 고정 관념을 벗어나 보다 넓은 정신적인 세계로 확장될 수 있었던 낭만주의 덕에 예술의 폭도 더 넓어지고 깊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현대에서도 ‘낭만적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감정 표현을 절제하지 않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세심함을 지닌 행동을 볼 때 우리는 낭만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표현 안에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고 자신의 감성을 좀 더 솔직하게 비춰보는 거울이 들어 있다.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와 같은 다소 어둡지만 경이롭고 슬프지만 신비로움과 희망이 남아있는 겨울 풍경을 마주한다면 그로 인해 나에게 생기는 감수성과 감정을 자제하지 말고 낭만주의의 본질에 마음껏 마음을 맡겨보기를 바란다.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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