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출시 하세월…커지는 ‘테슬라 리스크’
중견 자동차부품 업체 A사는 지난해부터 미국 테슬라의 차세대 모델에 들어갈 부품 공급을 위해 연구개발(R&D), 제조설비 등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문제는 새 모델 양산이 늦어지는 데다 기존 생산량도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A사 관계자는 “전기차 전환에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도 테슬라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기대가 컸지만 양산이 미뤄지고 금리도 오르면서 유동성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고경영자(CEO) 리스크와 예상을 밑도는 실적, 주가 급락 등으로 테슬라가 고전하면서 ‘테슬라 생태계’에 참여한 한국 기업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장 혁신적인 전기차’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테슬라였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3분기 테슬라의 글로벌 인도량은 34만3830대로 시장 전망치(37만 대)보다 적었다. 반도체 수급난과 전체 생산능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중국의 코로나19 봉쇄가 길어지면서다.
차기 모델 출시가 늦어지는 것은 ‘테슬라 공급망’에 참여한 기업에 직접적인 부담이 된다. 테슬라는 올해 전기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을 출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계속 미뤄지고 있다. 현재로썬 내년 상반기 출시도 어려울 전망이다. 테슬라의 신차는 2020년 ‘모델Y’가 마지막이었다.
한국 대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테슬라의 주행보조장치(ADAS)인 ‘HW 3.0’ 시스템에는 현재 삼성전자가 위탁생산하는 FSD(Full Self Driving) 칩셋 보드가 들어간다. 사이버트럭에는 차기 버전인 HW 4.0 시스템과 새로운 FSD 칩셋보드가 들어갈 예정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HW 4.0의 FSD 칩을 위탁생산할 예정이었는데 사이버트럭 양산이 연기되면서 일부 물량을 경쟁자인 대만 TSMC에 내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7나노미터(㎚·10억 분의 1m)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출시가 늦어지면서 초기 물량은 삼성전자가, 후기형엔 TSMC의 4㎚ 칩셋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테슬라 자율주행 시스템의 핵심인 ‘비전 센싱(Vision Sensing·카메라로 찍은 정보를 자율주행 기술에 활용하는 것)’ 부품 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테슬라의 차세대 자율주행용 카메라모듈은 LG이노텍과 삼성전기가 물량을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차 양산이 미뤄지면서 투자금 회수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배터리 업계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다. 테슬라는 2020년 ‘배터리 데이’에서 ‘4680 배터리(직경 46㎜, 높이 80㎜의 원통형 배터리)’라는 새로운 폼팩터를 선보였다. 건식 전극 기술을 활용해 주행거리는 16% 늘리고 에너지 밀도는 5배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전까진 파우치형·각형 배터리가 원통형 배터리와 주도권을 다퉜지만 테슬라가 4680 배터리를 선보인 이후 대세는 원통형 배터리가 됐다. 문제는 4680 배터리 양산에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차세대 테슬라 모델의 공조장치, 열관리 시스템, 섀시(차체)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물량이 유동적이고 계약 내용조차 비밀에 붙이는 테슬라의 특성상 부품 업체의 속앓이도 커진다. 국내 전장업체 관계자는 “사이버트럭과 이후 신차 양산이 늦어질수록 금융 부담이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시장 봉쇄와 미·중 갈등, 그리고 차세대 기술 양산 어려움이 겹치면서 테슬라 공급망에 들어있는 한국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럼에도 전기차·자율주행차나 인공지능(AI)·슈퍼컴퓨터 같은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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