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제’ 함정…7.5억 단독주택 주담대 고작 7500만원
경기도에서 6·4세 두 자녀를 키우는 직장인 김모(39)씨는 올해 초 서울의 한 단독주택을 7억5000만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1층은 부모님, 2층은 자신이 살 집으로 리모델링해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함께 살 계획이었다. 부모님과 자신이 각자의 빌라를 팔고, 새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자금 조달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달 은행을 돌며 주택담보대출 상담을 받은 김씨는 앞이 캄캄해졌다. 난생처음 알게 된 ‘방공제’ 제도가 발목을 잡았다.
방 공제는 지역별, 주택유형별로 적용 기준이 다른데 서울 단독주택을 사면 방 1개당 5000만원을 대출 한도에서 줄인다. 김씨가 매입한 주택의 방 수는 총 6개니 그가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에서 3억원이 깎인다는 얘기다. 다만 방 공제 총액은 주택 가액의 50%를 초과할 수 없게 돼 있다. 5억짜리 단독주택이 방은 6개라고 해도 3억이 아닌 2억5000만원까지만 대출 한도에서 제외한다는 의미다.
규제지역이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50%를 적용하면 3억7500만원인데, 여기서 방 공제로 3억이 빠지니 김씨가 빌릴 수 있는 돈은 고작 7500만원이었다. 주택 가액의 10%에 불과한 수준이다.
김씨는 “집값이 폭락해 살던 집도 헐값에 넘겼는데 방 공제까지 발목을 잡으니 현금 부자 아니면 집을 사지 말라는 것 같다”며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고 싶으면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이 제도는 2002년 부동산 규제 강화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집 주인이 방을 세 놓은 상태에서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세입자에게 지급할 보증금을 미리 떼어 놓는다는 개념이다.
다만 아파트는 단독주택처럼 방의 일부만 세를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보고 방 공제 적용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집값 하락 폭이 큰 데다, 방 몇 개에 세입자를 둘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은행이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손해 보지 않을 만큼 공제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할 방안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주담대를 받을 때 SGI서울보증·주택금융공사 등에서 취급하는 모기지신용보험(MCI)이나 모기지신용보증(MCG)에 가입하면 대출한도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은행 재량이다 보니 요즘 같은 땐 추가 대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방 공제가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겠다는 정부 기조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생활을 중시하면서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도 늘고 있는데 방 공제는 시대착오적 제도”라며 “확정일자 등 세입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이미 있는데 단독주택 구매자를 ‘예비 임대인’으로 간주해 최대한 담보 가액을 낮게 책정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은행 입장에선 주택의 경우 아파트처럼 거래가격이 표준화돼 있지 않고 경매 낙찰가도 불안정하니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거겠지만, ‘영끌’을 해서라도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서민들에겐 이중규제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내년 1년간 한시적으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해 9억원 이하 주택은 소득과 관계없이 5억원까지 대출해주겠다고 했지만, 이때도 기존의 보금자리론처럼 방 공제는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단독주택 소유자는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까지 대출 한도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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