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7년 만에 맞은 첫 위기…고칠 게 있다면 다 고치겠다”
구조조정 돌입한 ‘정육각’ 김재연 대표
유동성 파티가 끝난 후 불어닥친 한파에 정육각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4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한숨 돌렸으나, 당초 계획엔 한참 못 미치는 자금이다. 결국 같은 달 말 구조조정에 나서야 했다. 신사업도 전면 중단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정육각 본사에서 김재연 대표를 만났다. 그는 “이번 위기는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했다. 허리띠를 졸라맨 정육각의 생존 전략을 들어봤다.
Q : 구조조정까지 한 원인은.
A : “지난해까진 유동성이 풍부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원했던 만큼 자본을 조달할 수 없었다. 공격적인 투자로 성장하는 구조보단 재무 건전성을 우선해야 할 상황이다.”
Q : 권고사직 대상은.
A : “적자 구조를 탈피해야 하므로 신사업을 전부 정리하기로 했다. 그 담당자들이 대부분 대상이 됐다. 재무 안정성이 확보되거나 대규모 후속 투자를 받기 전까지 신사업은 못 할 것 같다.”
Q : 사업 계획 때 상황을 너무 낙관한 것 아닌가.
A : “정육각을 믿고 입사한 분들을 내 손으로 떠나 보낸 거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투자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장이 얼어붙었다. 초록마을 인수(4월 29일) 후 일주일 만에 미국이 금리를 0.5%포인트나 인상했다. 예상 못 했다. 반성하자면 매크로(거시경제)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했다. 지난 7년 동안 매크로(거시경제)에 대한 고민을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Q :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던데, 뭘 바꿨나.
A : “스타트업은 적은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가 중요하다. 현금이 많을 땐 광고 등을 많이 했다. 지금은 현금 흐름이 빠듯해졌기 때문에 오가닉 성장(organic growth, 자체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하고 있다.”
Q : 오가닉 성장이 뭔가.
A : “우선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정육각은 제조 공장을 주 5일만 가동해왔다. 지금은 고객들의 구매를 유기적으로 늘려야 하므로 내년 1월 초부터 공장을 주7일 가동할 예정이다. 이밖에 각종 효율화 작업으로 매출 총이익률이 올 초 대비 20%포인트 상승했다.”
정육각은 지난 4월 컬리·바로고 등을 제치고 대상그룹의 초록마을을 900억원에 인수했다. 온·오프라인 강점을 결합하겠다고 했지만, 두 회사 모두 적자여서 인수 당시부터 시장에선 우려가 나왔다.
Q : 무리한 인수로 정육각이 자금난에 빠졌다는 시각도 있다.
A :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인수하지 않았더라도 올해 투자 유치는 해야 했다. 다른 스타트업들도 신사업을 중단하는 추세다.”
Q : 초록마을 인수 이후, 뭘 했나.
A :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다. 최소 3단계였던 의사결정 체계를 조직장 자율에 맡겼다. 이전엔 3개월 걸리던 신제품 개발 기간이 지금은 최장 2주로 단축됐다. 초록마을은 풀어야 할 문제들이 명확해서 고칠 때마다 성과가 굵직하게 나온다.”
Q : 개선한 게 뭔가.
A : “소비자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내부 문제들이다. 가령 본사 물류센터 배송기사가 주문 내역서를 일일이 확인 후 수작업으로 물건을 픽업했다. 이걸 기계가 처리하면 전체 비용의 10% 이상이 절감된다. 내년 1분기 적용 예정이다.”
Q : 정육각·초록마을 둘 다 적자인데.
A : “초록마을은 지난해 감사보고서상 매출 2000억원, 영업손실 40억원이지만 내년 상반기엔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 정육각은 더 걸릴 거 같다. 다음 달 초 정육각·초록마을의 첫 시너지를 선보이려 한다. 정육각이 오프라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신호탄이자, 초록마을의 축산 경쟁력을 끌어올리게 될 거다. 설 전후로 초록마을에 새벽배송도 도입할 계획이다.”
Q : 창업 7년 차다. 이번 위기로 느낀 점 있다면.
A : “계획들이 무너져 힘든 시기이지만, 밖에서 보는 것만큼 불안정한 상황은 아니다. 이 위기를 이겨내야 다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테니 열심히 해결해보겠다. 재정비한 정육각·초록마을이 성과를 내면 더 좋은 회사로 인정받을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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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경 기자 kim.ink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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