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3] 노친네는 오줌을 쌌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온 세상 인생들에 가장 큰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시다. 우리는 이미 그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그분께서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오셨고, 죽으셨고, 영생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느냐 아니냐의 절체절명의 선택 여지가 있을 뿐.
(지난 회에 이어)
수혈받으면서 계속 링거를 꽂고 있어서였을까. 소변이 그렇게 마려울 수가 없었다. 코에 매달린 산소 호스를 비롯해서 주렁주렁 이런저런 선들이 매달려 있으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얼른 일어나 나갈 수는 없는 노릇. 너무나 분주한 간호사들에게 부탁하기도 미안해서 참아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냥 싸. 기저귀를 채워 주었잖아. 싸라고, 그냥 너를 내려놓으라고. 지금은 우아하지 않아도 돼. 언제는 오줌을 안 쌌니?”
그렇다. 나는 오줌을 싼 적이 있다. 아기 때에 싸는 거야 부끄러울 일이 아니지만, 중학교 3학년이나 된 다 큰 아가씨 때 말이다. 1963년도 이른 봄이었다. 그땐 학교에서 단체로 회충약을 먹이곤 했다. 메주콩처럼 생긴 누런 회충약을 복용하는 날은 밥을 먹으면 안 된다. 그러나 부모, 학생은 그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도시락을 챙긴다.
나는 JRC(Junior Red Cross) 청소년 적십자반 부회장이었다. 남자아이가 회장이었지만, 그는 럭비선수라 연습하기 바빠서 실질적인 일들은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같은 적십자반 학급 친구가 의견을 내놓았다. “도시락을 걷어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이자.” 좋은 생각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곧 그 일에 착수했다.
우선, 밥을 먹어야 되는 사람들이 몇 명인지를 알기 위해 인원수를 파악하고 밥과 반찬을 모을 리어카를 빌려왔다. 각 반에서 도시락을 거두어 밥과 반찬을 분류하고 빈 도시락을 돌려주었다. 한 학년에 7개 반으로 기억한다. 3학년까지 21개 반을 돌며 밥과 반찬을 리어카에 실었다. 리어카를 끌고 가 밥을 먹지 못한 이웃에게 나눴다. 온종일 그 일을 하느라 학교 수업도 빼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화장실 한번 갈 여유도 없었다.
뒷일을 마무리하고 제법 어둑해질 무렵에 하굣길에 올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중학교 정문을 걸어 나와 전차를 타고 명륜동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느닷없이 뜨뜻한 물이 교복 바지 밑으로 흘러내렸다.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었다. 잔뜩 긴장해서 하루 종일 잠잠하던 방광이 문득 깨어난 듯 움켜쥐고 있던 오줌보를 놓쳐버렸다. 오줌은 흘러 흘러서 전차 바닥으로 흥건히 고였다. 젖은 교복 바지는 이내 뻣뻣해졌다. 승객들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럽다는 생각보단 황당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씩이나 되던 나는 전차에서 오줌을 쌌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부족한 존재입니다. 지금 막 터져 나오려는 오줌을 참는다고 참아지겠으며, 그렇다고 한들 제가 고상하고 우아한 여자라는 명성을 누리겠습니까? 어차피 실수투성이인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알량한 제 자신을 내려놓겠습니다. 엄청난 물들이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나왔다. 몸 안의 모든 세포가 “에라 모르겠다”며 끌어안고 있던 불순물을 다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만 73세의 멀쩡한 노친네는 오줌을 쌌다.
웃기는 얘기를 하려 한다. 보니까, 밤에 새 간호사가 오고 아침이면 또 다른 간호사가 온다. 그 간호사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무슨 일이죠. 당신 정말 73세 맞아요? 아름다우세요. 40세 같습니다(What’s matter with you? You are really 73? You are beautiful, and looks likes age 40)!” 그들은 고단하고 피곤해 보였다. 오후 2시경 점심을 먹었냐고 물어보면, “아직 먹지 못했어”라고 답한다. 그럴 틈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죽을 둥 살 둥 하는 환자라지만 다른 사람들을 굶겨가며 치료받을 이유는 없어서, 당장 밥부터 먹고 오라고 그들을 구내식당으로 몰아세우곤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들 마음은 인종 나이 직업을 불문하고 한결같아 보였다. 실제로 동양 여자들은 서양 여자들보다는 어려 보인다. 그런데 병실은 대낮처럼 밝지도 않았고, 세수는커녕 양치질도 며칠씩이나 못한 할머니 환자가 머리를 산발하고 병원 침대에 나자빠져 있는데 예쁘다니. 내 큰 딸이 올여름 50세가 된다.
만일 내가 내 나이보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인다면, 첫째는 부모님에게서 온 유전자 때문이고 둘째로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2008년부터 사용해 온 레몬 화장수 덕분일 터. 텍사스의 샌안토니오에 살 당시, 한 멋쟁이 권사님이 싱싱한 레몬과 100% 식물성 글리세린, 알코올이 40%인 보드카를 사 와서 레몬 화장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날 배우고 이날까지, 나는 그것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약 20달러 돈으로 8~9개월쯤을 사용할 수 있으니, 요샛말로 가성비가 갑이다. 샤워하거나 세수를 한 후 피부에 발라주고 토닥여 준다. 이 레몬 화장수를 나눠주고 제조법을 가르쳐준 사람 수만 세도 인종과 나이 불문 부지기수다.
2021년 2월 2일에 거의 시체 상태로 엠블런스에 실려 와 4일 밤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뵙고 다시 살아나 퇴원을 앞둔 2월 7일 저녁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내게 그 레몬 화장수를 만드는 방법을 적어 달라고 했다. “필기할 상황은 아니니 내가 말 하는 대로 받아 적으라”하고 재료 준비부터 레몬 씻는 법, 큰 유리병에 모두 담아 15일 후 냉장고에 보관하고 덜어서 사용하는 법까지 세세히 일러줬다. 이후 퇴원 수속 서류에 사인했다.
“여러분, 저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고 축복해주실 겁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도록 유의하세요(Thank you for take care of me, every one. Our lord will be with you, and bless you. Take care of yourself, to be secure from Covid19)!”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시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으시지만 언제나 함께하시고 보살피신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신다. 모두, 건강하고 넉넉하고 행복한 2023년 새해 되세요!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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