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서 550조 금융그룹 10년 설계자로…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이석준 내정자는 누구
국무조정실장 거친 尹 대선 캠프 인사
NH농협금융지주는 2022년 12월 12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차기 회장 후보로 이석준 내정자를 단독 추천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4일부터 회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 농협금융 임추위는 심층 면접 후 만장일치로 이 내정자를 최종 후보에 낙점했다. 새해 1월부터 2년간 국내 5대 금융그룹인 NH농협금융을 이끌게 된다. 손병환 현 회장 임기는 2022년 말까지다. 임추위는 “이 내정자는 예산,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 경험을 했다. 금융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협금융의 새로운 10년을 설계할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내정자는 부산 동아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과 예산실장,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쳐 기획재정부 제2차관,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2016년에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공직 시절 업무 능력이 탁월하고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 ‘브라이트(bright) 관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대선 캠프에 참여한 핵심 인사기도 하다. 주요 정책 설계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정책 밑그림을 그려왔다. 윤 대통령 당선 후에도 당선인 특별고문, 국민통합위원회 경제·계층분과위원장으로 일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사실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 인선 작업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금융권에서는 손병환 회장이 연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손 회장이 1962년생으로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보다 젊은 데다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등 뚜렷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은 2022년 1~3분기 누적 1조9717억원 순이익을 내면서 2022년 연간 순이익이 2021년(2조2919억원)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손 회장은 2020년 3월 NH농협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9개월 만에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올라섰다. 2012년 농협중앙회가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을 분리하면서 농협금융이 출범한 이래 사실상 첫 내부 출신 회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손 회장에 대한 내부 직원 신망이 두터웠고 연임 기대도 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최근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조용병 현 회장에서 진옥동 신한은행장으로 교체되는 등 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NH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가진 농협중앙회가 새 정부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관료 출신 회장 선임에 힘을 실었다는 후문이다.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의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황에서 정부, 여당과의 협력을 위해 무게추가 이석준 내정자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대 농협금융 인사를 보더라도 초대 신충식 회장, 손병환 회장을 제외하면 신동규, 임종룡, 김용환, 김광수 등 대부분 전임 회장들이 경제 관료 출신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은 오래전부터 정치권 입김이 셌던 만큼 이번에도 관료 출신이 수장으로 낙점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국회 예산 확보, 농협법 개정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새 정부, 정치권과 소통이 활발한 인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농협은행 의존도 낮춰야
논란 끝에 NH농협금융지주 수장에 오른 이 내정자는 여느 때보다 어깨가 무겁다. 당장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찮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단일 주주인 비상장사다. 상장사가 아니다 보니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다. 농협중앙회의 유상증자에 의존하는 구조라 다른 금융그룹과 달리 인수합병(M&A)을 통한 금융 포트폴리오 다양화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농협중앙회에 큰 기대를 걸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농협중앙회는 부채가 13조원에 달해 농협금융 증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힘들다.
신한, KB, 우리, 하나금융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5대 금융그룹이지만 이익 구조가 NH농협은행에 편중된 점도 변수다.
농협금융 순이익에서 농협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할 정도다. 2022년 3분기 기준 농협금융 비은행 부문의 당기순이익은 5698억원으로 농협은행 당기순이익(1조4599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50~60% 수준인 신한, KB금융 등 다른 금융그룹에 비해 은행 의존도가 높다.
NH농협은행은 2021년 당기순이익 1조5556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2년 9월 누적 순이익도 1조4599억원으로 2021년 연간 순이익에 육박할 정도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총자산이익률(ROA), 순이자마진(NIM) 등 수익성 지표가 개선된 덕분이다. 2022년 9월 기준 NH농협은행의 ROA는 0.57%로 2년 전(0.49%) 대비 0.08%포인트 늘었다. ROE는 10.81%로 2020년(9.21%)보다 1.6%포인트 증가했다. 선제적 여신 관리로 탄탄한 자산 건전성도 확보했다. 경기 하강에 대비한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대손 충당금 적립률은 2022년 9월 말 기준 314.54%로, 국내 5대 은행 중 단연 1위다.
이에 비해 증권, 보험 등 비은행 계열사 실적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NH투자증권의 경우 2022년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233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5% 감소했다. 3분기만 놓고 보면 1년 새 94.4% 감소한 119억원에 그쳤다. 브로커리지(위탁 매매) 수익 악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IB 수수료, 관련 이자 수익 등이 급감했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수수료 이익과 이자 이익 모두 급감하면서 NH투자증권의 3분기 순이익이 시장 예상치에 못 미쳤다”고 분석했다. NH농협손해보험의 3분기 누적 순이익도 831억원으로 전년 동기(876억원) 대비 감소했다. 이 때문에 이석준 신임 회장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우량 기업 M&A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해외 진출 성과도 변수다. 농협금융은 2030년까지 전 세계 11개국에 27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글로벌 부문에서 총자산 22조원, 당기순이익 3240억원을 달성한다는 중장기 경영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써왔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미미하다. 2021년 말 기준 농협금융의 글로벌 사업 부문 자산은 2조원을 밑돈다.
‘관치 금융’ 논란을 헤쳐 가는 것도 변수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최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금융권 모피아 낙하산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10만 조합원 단결대오로 낙하산 저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석준 회장 내정자가 각종 논란을 딛고 NH농협금융지주 성장세를 이끌지가 금융권 관전 포인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