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 빌라왕 나온다...피해자들 "1년 전 선례 있어"

류승연 2022. 12. 2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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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억 체납 탓에 보증금 못 들려 받을 수도" 대책 촉구한 '빌라왕' 피해자들

[류승연 기자]

 
 23일 오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건축업자 A(61)씨 등 5명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이날 밝혔다. A씨 등은 지난해 3월부터 지난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327채의 전세 보증금 26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22.12.23
ⓒ 연합뉴스
 
"(부동산을) 직접 매수할지 전세금을 날려버릴지는 세입자분 선택입니다"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한 부동산에 몇년째 전세로 살고 있던 A씨는 지난 8월 집주인 김아무개씨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A씨가 살고 있던 집이 곧 공매로 넘어간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김씨는 자신이 이미 60여억원어치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다며, A씨가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경매 구조상 집이 팔리면, 나라가 먼저 밀린 세금을 징수한 나머지에서 임차인이 보증금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A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계약 당시엔 '보험 가입이 가능한 집'이라고 해 계약했지만 나중에 HUG를 통해 확인해보니 가입이 어려운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진 A씨는 부동산 강제경매를 신청했고 경매는 4개월째 진행 중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빌라왕 사태'의 피해 사례 중 하나다. 김씨는 서울·수도권에서 부동산 1139채를 사들인 후 전세 계약을 맺고 있던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사망했다. 이로 인한 피해자는 약 1100여명에 이른다.

"62억 체납 탓에 보증금 못 들려 받을 수도" 

김씨에 의해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27일 오전 세종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피해자 구제를 촉구했다. 

이날 피해자들은 특히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이 '무잉여기각'으로 전세금 모두를 잃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신설해달라고 요구했다. 무잉여기각이란, 부동산 순위상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에게 돌아갈 잉여금이 있어야 경매를 진행하는 원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배당액이 없을 때는 법원이 직권으로 경매를 취소시킨다.

현재 피해자 약 1100여명 중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614명. 보증보험이 없는 피해자도 약 절반에 이르는 상황이다. 대위변제(HUG가 세입자에게 먼저 보증금을 돌려주고 나중에 임대인에게 회수)를 받을 수 없는 피해자들로선 직접 경매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김씨의 체납액이 62억원에 이르는 탓에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나올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시장 상황마저 좋지 않아, 경·공매를 진행해도 피해자들은 보증금 값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울며 겨자먹기로 직접 부동산 매수에 나선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 임차인이 경매시장에서 부동산을 직접 매수할 때는 낙찰가에서 이미 낸 보증금을 뺀 나머지만 추가로 납부하도록 하는 '보증금 상계'가 인정된다.

하지만 공매에선 상계가 불가능하다. 낙찰가 만큼의 돈이 있어야 매수할 수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은 제도를 보완해 임차인에게 낙찰받을 권리를 지켜달라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은 또 임차인이 거주하던 부동산을 어쩔 수 없이 낙찰받게 되는 만큼, 생애최초 주택구입 혜택을 인정해달라거나 전세자금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할 때 낮은 이율을 적용해달라는 등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선 보증보험은 가입했으나 '빌라왕' 김씨 사망으로 대위변제에 절차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나 김씨의 법인과 계약을 맺은 피해자 등 각기 다른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제2, 제3의 빌라왕 더 있다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청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근절을 위한 관계 기관 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2022.12.18
ⓒ 연합뉴스
 
한편 정부는 최근 전세 사기를 당한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대출 지원이나 긴급 거처 제공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전세피해지원센터도 확대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빌라왕 사태의 여파는 잦아들지 않는 모양새다. 빌라왕 사태와 유사한, 소위 제2, 제3 빌라왕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날 피해자들은 인천에서 빌라·오피스텔 수십 채를 보유하다 숨진 송아무개씨와 지난 2021년 240가구를 대상으로 전세 사기를 저지른 뒤 숨진 정아무개씨 사례를 공개했다.

기자회견을 주도한 배소현 빌라왕 피해자 단체 대표는 "HUG에도 임대인 사망이 저희가 절대 선례가 아니라고 계속 말씀을 드렸다"며 "임대인 사망 선례가 저희보다 1년도 전부터 있었는데도 (HUG)는 메뉴얼을 만들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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