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비로봉에서 칼바람 대신 봄기운을 느끼다

이보환 2022. 12. 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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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동아리 '소백아'와 송년 산행을 함께 한 날

[이보환 기자]

▲ 소백산 비로봉 정상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이 줄지어 서있다.
ⓒ 이보환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인 24일 '소백아(소백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송년산행에 동참했다. 일정이 있던 터라 불참을 고민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다행이 계획된 일정도 연기되어 포근한 눈꽃 산행을 경험했다. 조선 중종 때의 천문지리학자 남사고 선생은 소백산을 극찬했다. "허리 위로는 돌이 없고, 멀리서 보면 웅대하면서도 살기가 없으며, 떠가는 구름과 같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형상이라서 많은 사람을 살릴 산이다"라고 했다.

소백산(小白山)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 일대에 걸쳐 있다. 본래 있는 산을 후손들 편의대로 나누는 것이 우습기도 한데, 수년 전에는 '소백산면'이라는 행정명칭이 가능한지를 놓고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이 일대 격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자연 지명을 한 자치단체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례를 만들었다.

매서운 겨울이지만, 사람들은 모여든다

소백산의 '백산'은 '희다', '높다', '거룩하다' 등을 뜻한다. 영험한 산이다. '소백'이라고 하니까 만만하게 보고 올랐다가는 큰코 다친다. 특히 겨울 산행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비로봉 일대의 칼바람은 유명하다. 해맞이 갔던 산꾼들이 동상 걸리기 십상이다. 방한용품과 여벌의 옷, 아이젠, 스패츠, 따뜻한 물 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전 혼쭐난 경험이 있기에 새벽부터 일어나 빠진 물품은 없는지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여러 구간이 있지만 오늘은 천동에서 오르는 구간을 선택했다. 천동에서 비로봉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우리들 이야기로는 '천비천' 산행이다.
 
▲ 눈천지 소백산 천동~비로봉 구간에는 눈길이다. 아아젠과 스패츠, 방한장갑과 모자 등이 필수품이다.
ⓒ 이보환
천동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꽉 찼다. 주차요원의 안내 덕분에 질서정연하다. 천동과 다리안은 야영장이 잘 갖춰져 캠핑족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봄에는 푸른빛과 아직 녹지 않은 얼음 속 흐르는 물소리를 감상할 수 있고, 여름에는 차디찬 계곡물에 태양을 피해갈 수 있으며, 가을에는 알록달록 물든 오색 숲이 찬란하다. 다 익은 가을 이른 아침이면 떨어지는 밤송이를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캠퍼의 방문이 뜸한 매서운 겨울, 소백산의 설경이 사람들을 모은다. 천동에서 비로봉까지 구간은 천동다리안 주차장-천동탐방지원센터-천동쉼터-주목군락지-천동삼거리-비로봉까지 6.8㎞다. 오늘의 목표는 해발 1439m 비로봉.

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는 포장된 길이다. 다리안 계곡의 웅장한 물소리를 삼켜버린 얼음이 바위처럼 단단하다. 눈 덮힌 계곡의 절경에 앞서 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자주 멈춘다. 센터에 도착하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본격적인 산행을 준비한다. 

천동쉼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이른바 고속도로가 뚫려 있다. 그래도 은근히 경사가 있는 데다 2시간은 족히 가야 한다. 뽀드득 뽀드득 눈밟는 소리가 힘든 것을 덜어준다. 천천히 호흡조절을 하며 깔딱고개를 넘는다. 입김이 눈썹과 머리에 내려 앉아 영락없는 산신령이다.
 
▲ 상고대 낮과 밤의 기온차이 때문에 생기는 서리꽃. 파란 하늘과 하얀 상고대가 멋진 풍경을 만들어준다.
ⓒ 이보환
산타 옷을 입은 사람들의 하산

천동쉼터를 지나면 너덜길인데 오늘은 매끈하다. 울퉁불퉁 돌길이지만 눈이 쌓여 폭신한 비단길로 변했다. 이런 날이 아이젠을 찬 발의 피곤함도 가장 적다. 눈이 너무 많으면 걸음 떼기가 힘들고, 녹을 때는 아이젠에 흙과 나뭇잎이 달라붙어 성가시다.

크리스마스 이브, 트리가 온천지에 가득하다. 인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연신 멈춰 스마트폰을 만진다. 한줄로 걸어야하는 좁은 길이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뒤에서 기다리고, 사진까지 서로 찍어준다. 그 틈에 산타할아버지 모자를 쓴 등산객들이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내려온다.

루돌프 대신 아이젠을 한 산타할아버지 등장에 모든 사람들이 환호한다. 기발한 생각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산타 복장을 한 젊은 여성이 나타난다. 앞서 간 이들과의 관계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일행이 아니라고 한다. 이제는 산행도 건강에 즐거움까지 보태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도가 높아졌음에도 춥지 않다. 눈부신 태양은 나무에 쌓인 눈덩이를 사르르 녹여준다. 목덜미에 떨어진 눈덩이는 정신을 번쩍들게 한다.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파란하늘과 하얀 눈이 찰떡궁합이다. 파랗고 하얀 풍경에 거친 숨소리가 행복한 웃음으로 바뀐다.

주목군락지가 다가오면서 설경은 더없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햇볕에 반짝이는 상고대에 마음을 홀리고 눈 쌓인 주목의 위엄에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들린다.

신선이 된듯한 발걸음으로 주목 군락지를 벗어나 천동삼거리에 서니 건너편 연화봉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산세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보통 겨울이면 이곳에서 준비한 옷부터 방한용품은 모두 장착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은 맨손도 시리지 않다.

데크 난간위에 누군가 눈으로 만들어 놓은 오리가 앙증맞다. 처음 보는 눈오리가 신기하다. 죽령에서 출발한 일행이 도착했다. 자주 만나지만 산에서 보면 더 반갑다. 포옹으로 인사하고 함께 비로봉으로 향한다.

영하 7도의 포근함

평상시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부는데 오늘은 조용하다. 영하 7도라고 하지만 포근함이 느껴진다. 칼바람에 밀려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발을 떼어도 계단에서 자꾸 멀어지는 곳이 맞는가 싶다.

겨울 비로봉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 것도 처음 본다. 정상 인증을 하기위해 줄을 선 사람들,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이들, 커피와 과일을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남녀.

우리도 천동삼거리에서 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는다. 늦게 올라온 회원이 건네준 커피도 한 잔씩 마신다. 오다가다 만난 안동산악회 멤버에게도 귤을 하나 건넨다. 산에서는 모두 친구이고 형제다. 2022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산행, 겨울이지만 봄같은 하루였다.
 
▲ 천동~비로봉 이정표 천동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편도 6.8키로미터다. 걷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시간 전후면 오를 수 있다.
ⓒ 이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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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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