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꾼서 방송의 전설로…유재석과 송해 합치면 이 남자
방송인 유재석 씨와 고(故) 송해 선생을 섞으면 이 사람 아닐까. 미국의 전설적인 토크쇼 진행자, 딕 캐빗(86) 얘기다. 그의 이름을 딴 ‘딕 캐빗 쇼’는 1969년 닻을 올리며 1980년대까지 시대를 풍미했다. 미국 토크쇼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상징적 존재다.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을 초청해 진솔한 대화를 끌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캐빗이 인터뷰한 인물은 비틀스의 존 레넌(1940~1980)부터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 배우 캐서린 헵번(1907~2003)에 이른다.
캐빗은 그러나 ‘전설’이라는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을 법하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어서다. 그는 뉴요커 최신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유튜브라는 곳이 꽤 흥미롭다”고 털어놨다. 그가 직접 채널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유튜브에서 추억의 토크쇼 클립을 모아놓은 채널에서 그의 과거 방송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일종의 역주행인 셈이다. 그는 뉴요커에 “갑자기 젊은이들이 내가 70년대에 진행했던 쇼를 잘 봤다며 팬레터를 보내오기 시작해서 깜짝 놀랐다”며 “처음엔 ‘2022년에 그 옛날 방송을 대체 어디에서 본다는 건지, 이런 거짓말이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이 유튜브라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 말했다. 앞으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그의 존재감을 확장할 구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플랫폼이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캐빗은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정중하면서도 핵심을 짚어내는 태도를 유지했다. 뉴요커의 베테랑 기자 역시 그에게 “인터뷰를 잘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을 정도다.
그는 이 질문에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나도 진행을 할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일단, 초대손님과 방청객 모두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막상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 후엔 나름의 전개가 이루어진다는 거지. 물론, 철저히 여러 가지 준비를 해뒀을 때 말이다.” 준비한 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지만, 준비를 해두면 자연스럽게 진행이 된다는 백전노장의 말이었다.
캐빗의 시작은 다소 미약했다. 그는 네브래스카 주(州) 출신인데,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와 같은 화려한 쇼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자라며 방송인의 꿈을 키웠다. 예일대 출신인 그가 취업한 곳은 타임지. 기자나 에디터가 아니라, 고퍼(gofer), 심부름꾼이었다. 교정을 위한 대장이나 커피부터 담배까지 자잘한 것을 배달하며 그는 꿈을 위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
열심히 묵묵히만 일한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다양한 기회를 스스로 찾아냈다. 일하는 과정에서 기사를 열심히 읽은 것도 그중 하나다. 단순한 배달을 넘어 적극적으로 임한 것. 어느 날 한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읽고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다는 생각에 직접 찾아간 것이 대표적 일화다. 이런 식으로 그는 단역을 따내기 시작했고, 69년엔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인물을 인터뷰한 그가 인상 깊게 추억하는 셀럽은 누굴까. 캐빗의 답은 아래 인물이었다.
데이비드 보위(1947~2016).
캐빗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터뷰이였다”며 “질문을 던져도 다른 주파수로 답을 하는 것 같았고, 이상하고 괴상했으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게 바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 매력을 오롯이 전해온 게 백전노장 캐빗의 매력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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