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김수연 “눈에 선한 음악, 감사하며 준비했죠”
2021 몬트리올콩쿠르 피아노 동양인 최초 우승
"언제 어디서든 청중에게 받은 사랑 환원하고파"
“‘눈에 선하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보이는 듯 들리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직관적이고 전달력이 큰 소리를 내야 합니다. 제목을 붙여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림을 내세웠죠. 소중한 기회를 최대한 즐겨보고 싶습니다. 체력적으로도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2023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김수연(28)의 말이다. 매년 30세 이하 기악분야의 연주자 중 1인을 선정하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는 2013년 시작됐다. 콩쿠르 수상에 그치지 않고 경력을 이어가며 관객과 소통, 자신만의 음악세계 추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자유로운 기획으로 한해 4~5회 음악회를 열 수 있어 새로운 음악가와의 협업과 네트워크 확장이 가능하다. 그동안 피아니스트 김다솔·선우예권·박종해,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조진주·양인모·이지윤·김동현, 첼리스트 문태국,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등 10명의 연주자가 상주음악가로 공연했다.
김수연은 2023년 한 해 동안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다섯 차례 무대를 갖게 된다. 주제는 ‘화음(畵音):그림과 음악’이다. 그림의 기법과 연관을 지어 1월 5일 ‘스케치’를 시작으로 4월 27일 ‘블렌딩’, 8월 31일 ‘명암’, 9월 7일 ‘필리아’, 12월 7일 ‘콜라주 파티’로 이어진다.
“‘그리다’가 키워드예요. 현재진행형인 단어죠. 제 성격이 미리 계획한 대로 하는 성격인데 바꾸고 싶었어요. 현재의 순간에 집중해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고 청중과 교감했으면 합니다.”
27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수연은 쇼팽 ‘대 폴로네즈’ Op.22에서 안단테 스피아나토 부분을 제외하고 연주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고음 속에서 건강한 긍정이 느껴졌다. 빠른 악구에서도 포근하게 감싸는 벨벳 같은 감촉은 김수연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과일을 바로 잘랐을 때의 촉촉함과 신선함이 느껴진 연주였다.
김수연은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이모가 사주신 피아노 장난감을 유난히 좋아했던 게 시작이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들은 ‘음악을 시켜보라’고 권유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광화문 금호아트홀 무대에 처음 섰다. 30분 정도의 짧은 연주였지만 “친구들 얼굴이 객석에 보여서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라이프치히 음악 캠프에 참가하며 유럽의 유구한 문화와 역사를 느꼈고 파벨 길릴로프 선생님과 연이 닿아 19세 때 잘츠부르크로 유학을 갔다.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이 자신의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는 김수연은 “혼자 살아가며 자신을 알아가고 몰랐던 성격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고 유학 시절을 돌이켰다.
스승 길릴로프는 김수연을 “무대 위에서 청중을 사로잡고 청중과 연결돼있는 피아니스트”라고 말한다. 김수연은 “청중들이 집중해서 들어주시면 그 마음을 받아 연주에 힘이 된다”며 “몇 초 사이에 마법이 일어나는 보석 같은 순간”이라고 했다.
김수연에게 2021년은 수확의 해였다.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고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유일한 여성 및 한국인 준결선 진출자였고 쇼팽 콩쿠르에서도 준결선에 진출했다. 몬트리올 콩쿠르가 온라인으로 전환돼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동시 참가하며 화제가 됐다. 빈에서 몬트리올 첫 라운드 녹음을 마치고 벨기에로 건너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여하면서 몬트리올 파이널을 브뤼셀에서 녹음하는 강행군이었다.
“길릴로프 선생님이 두 개 다 할 수 있다고 독려하셨어요.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려면 앞으로 그보다 더한 일들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 말씀에 힘을 얻었어요.”
다음달 5일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로 열리는 첫 번째 무대 ‘스케치’는 김수연의 인생 모토인 ‘감사’를 담아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마이라 헤스 편곡 바흐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이 첫곡인 이유다. 이어서 바흐 프랑스 모음곡 5번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을 담은 모차르트 아다지오 K540, 어둡지만 오르간 영향으로 장엄하고 후회와 탄식 속에서 슬픔을 이기는 의지가 느껴진다는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를 연주한다. 인터미션 뒤에는 2개의 녹턴 Op.48과 피아노 소나타 3번 등 쇼팽 작품들을 펼친다.
“어릴 적부터 쇼팽 음악이 자연스럽게 다가왔어요. 내향적인 저와 잘 맞는 게 있지 않았을까요. 연주할 때 쇼팽의 작품이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주는 느낌입니다.”
이어지는 4월 27일의 ‘블렌딩’에서는 환상곡 풍 소나타인 베토벤 소나타 13번, 소나타 풍 환상곡인 리스트 ‘단테를 읽고’, 슈베르트 소나타 D894 ‘환상곡’을 연주한다. 형식적인 소나타와 틀을 깬 환상곡을 대비시킨 무대다.
8월 31일 ‘명암’에서는 멘델스존 무언가 사이에 테너 김세일의 볼프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가곡을 배치했다. “노래가 가진 힘이 부럽다”는 김수연이 진솔하고 솔직한 음악을 노래와 함께 펼친다.
9월 7일 ‘필리아’에서는 모차르트 작품들을 조명한다. ‘필리아’를 “다른 이를 동등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한 김수연은 “모차르트가 다른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마음을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수연의 데뷔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몬트리올 콩쿠르 스폰서인 피아노 회사 스타인웨이앤선즈 레이블에서 발매되는 음반에도 모차르트 곡들을 담았다. “피아니스트에게 모차르트는 어려운 작곡가”라는 김수연은 “세월이 가며 음악에 젖어들면서 공부하고 경험했던 걸 담아내는 의미가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교회 같은 소노 루미누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음향이 빼어나 기대된다”고 말했다.
12월 7일 ‘콜라주 파티’는 현악 4중주단인 다넬 콰르텟과 함께한다. 이들의 장기인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와 “기쁨과 긍정의 에너지를 드리고 싶다”고 한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 Op.81을 연주한다.
이날 김수연은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여러 공간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그이기에 ‘청중과 연결된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음악가이기에 감사합니다.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여러 공간에서 여러분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어느 도시를 가든 소중한 만남과 인연에 감사합니다. 제 연주를 듣고 감사하다는 청중을 만나면 과분하고 혜택받았고 행복이라고 느낍니다. 어떤 공간에서 언제 연주하든 이렇게 받은 사랑을 환원하고 싶습니다. 좋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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