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컷] 민감한 성병·질염·갱년기… 집에서 키트로 진단한다

이해림 기자 2022. 12. 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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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정확도 95~100%지만 ‘임의 진단’
병원 가서 확진 받고 필요 시 치료 해야
성병에서 갱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과 증후군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자가진단키트가 판매 중이다. 몸 상태를 점검해, 병원에 가야할지 판단하는 데 참고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사진=헬스조선DB
질환은 생기기 전에 예방하거나, 최대한 빨리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는 게 최선이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다. 몸 상태가 나빠진지 오래돼 이상 증상이 생기고 나서야 병원에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이상 증상이 없는데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긴 일상이 바쁘다. 검사하려 피를 뽑는 것도 무섭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려 출시된 것이 일반인용 자가진단키트다. 성병, 방광염에서 여성 갱년기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혈액 채취 없이 소변·질 분비물·구강 점막으로 간편히 검사

자가진단키트를 활용한 검사는 기존 검사보다 심리적 신체적 부담이 적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는 원래 혈액을 채취해 이뤄졌다. 정맥에서 5~10cc 정도 피를 뽑거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채혈하는 식이다. 체외진단 의료기기 제조·판매 기업 인솔에서 제작한 ‘오라퀵 어드밴스 HIV-1/2’는 피 없이 구강 점막으로 HIV 양성을 감별한다. 키트에 동봉된 검사기구로 윗잇몸과 아랫잇몸을 1회씩 훑으면 검체가 채취된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게 무서운 사람들도 부담 없이 검사할 수 있다. 진단 정확도는 약 99.8% 이다.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와 성매개감염병(STI)·질염도 마찬가지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HPV·STI·질염 검사는 질에 질경을 삽입한 후, 면봉으로 질 점막에서 검체를 채취하는 게 보통이다. 검사 방식을 부담스러워하는 여성이 많았다. 반면, 분자진단검사 기업 티씨엠생명과학에서 제조한 ‘가인패드S’ ’가인패드H’는 질에 면봉을 삽입하는 대신 생리대형 패드를 팬티에 부착해 각각 STI·HPV 검사용 검체를 얻는다. 패드를 부착한 팬티를 4~8시간 착용하면 끝이지만 정확도는 약 98%다. 여성용 자가진단기기 개발 기업 체크엔케어의 ‘질편한 3in1 질염테스트기’는 소변 검사로 질염을 유발하는 가드넬라·칸디다·트리코모나스를, ‘질편한 방광염 테스트기’는 소변 속 백혈구·혈액·단백질·아질산염을 검출한다. 방광이나 요도에 균이 감염되면 소변에 혈액이나 단백질 등이 섞여나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각 검사 항목별 정확도는 기존 검사 대비 95~100%다. 두 제품 다 임신테스트기와 비슷하게 소변을 검사지에 적시면 검사 결과가 나온다.

질환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증후군인 갱년기를 진단하는 ‘세이플리 갱년기 테스트기’도 있다. 피를 뽑는 대신 소변을 검사지에 묻혀 난포자극호르몬(FSH)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약 98%의 정확도를 보인다. 폐경기를 맞이한 여성에서 난포자극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이용한 제품이다.

◇병원 안 가도, 집에서 간단히 ‘익명 검사’ 가능한 게 장점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든 빨리 치료를 시작할수록 경과가 좋다. 조기 진단이 중요하지만 HIV 검사는 유독 꺼리는 사람이 많다. HIV 는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들만 감염되는 바이러스’라는 편견으로 부풀려진 탓이다. HIV 자가진단키트 오라퀵은 이런 심리를 파고들었다. 인솔 관계자는 “HIV 감염 사실을 조기에 알고 치료를 시작하면 HIV가 에이즈까지 진행하지 않게 관리하며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며 “스스로 검사하는 자가진단키트 특성상 오라퀵은 검사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HIV 검사를 미룰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원하는 때에 스스로 검사할 수 있단 자가진단키트의 특성은 HPV·STI·질염 검사의 문턱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 대한부인종양학회 연구 결과에 의하면 18∼29세 여성의 49.9%가 HPV에 감염돼있지만, 산부인과 검사를 적극적으로 받는 사람은 적다. 포항대·고신대 간호학과 연구팀이 여대생 192명을 대상으로 HPV 감염 예방 행위 실천 의사를 조사하니, ‘성생활 시작 후 6개월 이내로 받는 경부세포 질도말 검사’에 대한 실천 의사가 가장 낮았다. 산부인과 검사 특성상 의료진을 대면하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란 게 연구팀의 분석이었다.

질염 자가진단키트를 출시한 체크엔케어 관계자는 “질염과 방광염은 여성의 감기라 불릴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는 등의 이유로 약 60~70%의 여성이 병원에 가지 않는다”며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하듯 질과 방광·요도의 균 감염 여부를 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면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설 수 있으리란 생각에 키트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키트로 ‘임의 진단’하고 병원 가서 확진·치료받기

감염 사실을 알고, 질환이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게 치료의 시작이다. 자가진단키트의 의의도 질환을 ‘임의 진단’ 해주는 것에 있다. 특히 질이나 방광·요도에 균이 감염된 경우 자각할 만한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염증이 악화되는 것이다. 이럴 때 자가진단키트를 통해 질·방광·요도의 균 감염 사실을 알게 된다면 치료를 시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도 바쁘거나 병원이 멀어서 또는 사회적 시선이 염려돼서 병원에 가지 못하던 중, 질염·방광염 진단키트를 사용하고 병원 방문을 결심했던 소비자 후기가 많다.

다만, 자가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내게 질환이 있는 건 아니다. 에이즈 원인균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오라퀵 테스트에서 양성이 나오면 본인이 에이즈 환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에이즈 환자는 HIV에 감염된 후 면역 결핍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을 일컫고, HIV에 감염돼도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에이즈가 발병하지 않고 약물을 통해 평생 관리하면서 살 수 있다. HPV 역시 감염이 확인됐다고 해서 무조건 자궁경부암이 진행 중인 건 아니다. 다양한 HPV 바이러스 중 자궁경부암 고위험군인 HPV 16,18, 32, 33등에 감염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암 발생을 예방할 목적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나머지 자가진단키트도 마찬가지다. 여성 갱년기 진단키트나 방광염 진단키트에서 양성이 나왔다면 높은 확률로 여성 갱년기나 방광염이 의심되지만, 확진과 치료는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 세이플리 여성 갱년기 진단키트에도 “이 진단키트는 폐경 여부를 보조적으로 진단하는 키트로서 폐경 등의 최종진단은 반드시 전문의의 진단을 따라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명시돼있다. 자가진단키트는 본인의 몸 상태를 점검해, 병원에 가야 할 상태인지 판단하는 데 참고할 목적으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체크엔케어 관계자는 이를 두고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여 임신여부를 임의로 파악한 후,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로 임신을 확정하는 것과 같은 흐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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