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방역장성' 허문다, 입국자 격리 폐지…"개인이 알아서 방역"
중국이 다음 달 8일부터 코로나19 방역 수준을 1급에서 2급으로 낮추면서 2020년 1월 이후 천일 넘게 유지한 ‘코로나 방역 장성’을 허문다. 26일 밤 국가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가 “2023년 1월 8일부터 코로나19를 ‘전염병 예방법’이 규정한 1급 방역에서 해제”하고 출입국 관리를 대폭 완화한다고 공지하면서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출국 48시간 전 핵산검사 당시 음성이 확인되면 현지 중국 대사관의 건강코드 신청 없이 중국 입국이 가능해진다. 중국 입국 시 세관 출입국 건강신고서에 결과를 기재하면 검역이 완료된다. 입국자 격리 조치도 전면 폐지된다. 중국은 지난 3년간 최장 4주 이상에서 최근에는 5일 시설 격리와 3일 자가 격리를 엄격히 지켜왔다.
중국은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제한해 온 자국민 여권 발급도 내달 8일부터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기로 했다. 해외여행 정상화 조치의 일환이다. 관광 및 비즈니스를 위해 중국 본토 거주자가 홍콩에 갈 때 필요한 허가증의 처리도 내달 8일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외국인의 일반 비자 연장, 재발급 신청의 접수 및 심사ㆍ승인 역시 내달 8일부터 재개된다고 중국 국가이민관리국이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중국은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국인에 대한 여행 목적 입국 비자 발급을 사실상 중단하고 자국민에 대해서는 단순 여행 등 목적을 위한 여권 발급을 제한해 왔다.
중국은 국제 항공편의 각종 제한 조치도 없애고 세계 전염병 추세와 서비스 보장 능력에 따라 중국 국민의 해외여행을 순차적으로 재개한다고 명시했다. 한·중 간에도 현재 65편 수준인 주당 왕래 항공편을 100편(한·중 항공사 각 50편씩)으로 늘리기로 합의가 이뤄진 가운데, 내년 1월부터 신규 노선 취항이 속속 이뤄질 전망이다. 그간 중국은 ‘하나의 항공사는 한 국가의 한 개 노선을 한 주에 1회에 한해 운항’하도록 제한한 ‘다섯 개의 하나(五個一)’와 탑승률 제한을 지켜왔다.
중국 내 방역도 완화된다. 일반인에 대한 PCR 검사는 모두 폐지하고 필요에 따라 PCR 검사를 시행하도록 했다. 27일 위건위가 후속 발표한 세칙에 따르면 코로나 유행 기간 양로기구나 사회 복지기구 등 취약 계층이 집중된 장소의 근무자는 매주 두 차례 PCR 검사를, 수용자는 매주 두 차례 항원 혹은 PCR 검사를 받도록 규정했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이라는 명칭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로써 지난 2020년 1월 20일 위건위가 코로나19에 ‘2급 전염병 1급 방역’을 결정한 뒤 1085일 동안(2020.1.20~2023.1.8) 유지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 도시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 밀접·간접 접촉자의 집단 격리, 무차별 도시 봉쇄로 서구 언론이 ‘드라코니안(Draconian·무자비한) 방역’으로 묘사했던 중국식 방역이 역사로 남게됐다. 이날 베이징 시민 가오(高)씨는 중앙일보에 “3년 동안 계속됐던 문화대혁명이 끝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위건위 발표에 앞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현재 우리나라(중국) 코로나19 예방과 통제는 새로운 상황, 새로운 임무에 직면했다”며 “인민 대중이 스스로 건강 지식을 학습해 수천수만의 문명적이고 건강한 작은(小) 환경으로 이뤄진 방역의 사회 대(大)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52년 한국전쟁 당시 중국이 이른바 ‘세균전’을 막겠다면서 조직했던 애국위생운동 전개 70주년을 기념하는 지시를 통해서다. 코로나 방역을 국가 대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발언이다. 이날 밤 위건위가 2등급으로 방역 수위를 낮추는 통지문에서도 “‘매 개인이 모두 자기 건강의 우선 책임자’라는 이념을 널리 선전하고 고취하라”고 강조했다.
이번 중국의 방역 등급 조정을 놓고 ‘위드 코로나’가 아닌 사실상 ‘코로나 투항’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홍콩 출신인 사이먼 선(沈旭暉) 국제정치학자는 “세대별 최신 백신 접종률을 일정 수준으로 높이고, 고위험군에게는 필수 예방접종을 마치고, 응급 의약품을 준비하며, 투명하고 개방적인 토론 등을 거친 서구의 ‘위드 코로나’와 달리 중국은 준비 없이 진공 상태에서 이른바 ‘다이내믹 제로(動態淸零·동적 제로화)’를 포기한 ‘투항’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의 26일 발언 역시 실질적인 지시나 방역 완화에 따른 예방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루시(陸曦) 싱가포르 국립대 리광요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정치적 동원 형식으로 민중 스스로 개인의 방역을 책임지라고만 했다”며 “중앙정부는 의료 물자에서 인원까지 모두 실질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상실했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말했다.
향후 중국은 경제와 방역 2중 경착륙이라는 충격파를 막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경제는 이미 11월 소매 판매가 지난해 동기 대비 5.9% 감소하며 내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올해 분기별 성장률도 지난 1~3분기 4.8%→0.4%→3.9%에 불과하다. 연간 목표치 5.5%에 크게 못 미치는 연간 3% 내외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한편 중국의 급격한 방역 전환에 세계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이미 4억 명 이상의 대규모 감염이 진행 중인 중국이 개방 정책을 공식화함에 따라 새로운 변이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내년 1월 22일 춘절(중국 설)을 계기로 농촌에서 감염 확산을 현재의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1차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미 서구 제약사의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접종을 위해 마카오와 홍콩을 찾는 중국인이 폭증하는 가운데 중국 방역 당국이 자국산 백신 고수 정책을 바꿀지 여부도 주목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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