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빈자리 메운 박용택, 신의 한 수 된 선택
[이준목 기자]
'감독대행' 박용택이 이승엽(두산 베어스)의 빈 자리를 메우며 고군분투했다. 12월 26일 방송된 JTBC 스포츠예능 <최강야구>에서는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최강 몬스터즈'와 프로팀인 NC 다이노스 2군과의 1차전 대결이 펼쳐졌다.
몬스터즈는 초대 감독이던 이승엽이 프로야구 두산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팀내 최고참인 박용택이 임시로 감독대행을 맡게된 상황. 박용택은 지난주 방송된 첫 경기인 부산고와의 2차전을 승리하며 감독대행 데뷔전을 기분좋게 출발했다.
▲ JTBC 스포츠예능 <최강야구> 한 장면. |
ⓒ JTBC |
두 번째 상대는 몬스터즈가 만난 첫 프로팀이자 역대 최강의 상대라고 할 수 있는 NC 다이노스 2군이었다. 부산고 전에서 전임 이승엽과는 전혀 다른 선발 라인업으로 승리를 거둔 박용택 감독 대행은 NC를 상대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파격 라인업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중심타선에 배치되던 이택근을 톱타자로, 수비형 선수인 김문호를 4번에 놓는가하면, 주전 2루수였던 정근우는 지난 경기 중견수에 이어 이번엔 3루와 3번 타자에 배치됐다. 1차전 선발로는 '파이어볼러' 이대은이 낙점됐다. '알바생' 지석훈은 멤버들의 텃세와 구박 속에서도 NC 출신이라는 장점을 고려하여 장시원 PD의 부름을 다시 받아 유격수로 출전했다.
이에 맞서는 NC는 경기를 앞두고 1군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을 다수 선발 라인업에 포진시킨 사실이 드러나며 몬스터즈 선수들의 원성을 샀다. 해설위원겸 몬스터즈 투수코치인 김선우가 이를 추궁하자, 계속 딴청을 피우던 공필성 NC 2군 감독은 "왜 하필 우리가 프로팀중 처음이냐, 지면 망신이다"라며 결국 본심을 드러내 웃음을 자아냈다.
몬스터즈는 경기초반 전력상 열세라는 예상을 뒤집고 선전했다. 1회부터 NC 선발 이준혁을 상대로 3번타자 정근우가 2루타로 포문을 연데 이어, 4번 김문호의 타구를 NC 3루수가 놓치는 실책이 더해지며 먼저 기분좋은 선취점을 뽑는 데 성공했다. 선발 이대은도 1이닝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정리하며 경기 초반 분위기를 리드했다.
몬스터즈는 2회에도 추가 득점의 기회를 잡았다. 2사 1루에서 서동욱의 장타가 터졌고, 3루 베이스코치로 있던 박용택 대행은 팔을 돌리며 주자 이홍구에게 홈까지 쇄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홍구의 느린 주력 때문에 3루와 홈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리고 말았고 그대로 아웃당하며 몬스터즈는 허무하게 절호의 득점찬스를 날리고 말았다. 몬스터즈 선수단은 박용택의 주루판단 미스에 야유를 보냈다. 초반 몬스터즈 쪽으로 향하던 경기흐름이 뒤바뀌는 전환점이었다.
이대은은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순이 한 바퀴 돌고난 4회들어 급격한 위기를 맞이했다. 제구력 난조를 드러낸 이대은은 발이 빠른 선두주자 오태양을 볼넷으로 출루시키며 흔들렸다. 오태양은 몬스터즈의 거듭된 견제를 뚫고 진루타와 도루에 힘입어 3루까지 진루했다. 또다시 볼넷을 내주며 1사 1.3루의 위기를 맞이한 이대은은, 결국 사실상의 1군 선수인 오영수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이대은의 갑작스러운 난조에 투수교체를 준비하지 않았던 몬스터즈 벤치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용택 대행은 다급하게 구원투수들에게 몸을 풀 것을 지시했지만 당장 교체는 불가능했다. 구위가 흔들린 이대은은 몸에 맞는 볼과 적시타로 결국 4회에만 5실점이나 허용하는 빅이닝을 내주고 말았다. 이대은은 이닝을 마치고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못하며 자책했다.
2차전도 고려해야했던 몬스터즈는 이대은을 5회까지 마운드에 올렸다. 다행히 이대은은 구위를 어느 정도 회복하며 추가실점없이 5이닝을 채웠고, 6회부터 송승준-오주원-심수창의 계투진을 투입하여 NC 타선을 봉쇄했다.
하지만 몬스터즈의 타선은 1회 선취점 이후 끝내 터지지 않았다. 공필성 감독은 마지막까지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와 투수교체로 방심없이 필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몬스터즈는 마지막 9회 중심타선 3-5번이 NC 마무리 한재승에게 삼자범퇴로 맥없이 물러나며 결국 1-5로 뼈아픈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대행 체제로 첫 패배를 겪은 박용택은 감독실로 돌아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용택은 "아쉽다. 투수운용을 잘하지 못했고, 3루베이스 코치로서도 실수가 있었다"고 경기 상황을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감독에서 코치까지, 많은 것들을 신경쓰기 어려웠다. 100% 전부 나 때문에 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다.
몬스터즈 선수들도 "프로와의 경기에서 지니까 아마추어 때와는 또다른 감정"이라며 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근우는 "불안하다. 방송폐지될까봐"라고 고백했다. 30경기 7할승률을 공약했던 몬스터즈는 23경기를 치른 현재 17승6패, 승률 7할 7푼이 됐다. 남은 경기에서 4승 이상을 거둬야만 프로그램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승률의 압박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박용택 대행과 선수들은 "내일은 웃음기 빼고 진지하게 가겠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설욕을 다짐했다.
과도기 맞이한 '최강야구'
<최강야구>는 현재 과도기를 맞이하고 있다. 방송이 어느덧 6개월을 넘기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시점에 초대 감독이던 이승엽이 프로구단 두산 베어스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중의 레전드이자, 은퇴 선수들로 구성된 몬스터즈의 정신적 지주겸 간판 역할을 수행하던 이승엽의 공백은 <최강야구> 제작진으로서는 무척 아쉬웠을 것이다.
어수선한 몬스터즈에서 임시로 이승엽의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박용택이었다. 감독대행을 맡은 박용택은 선수, 코치, 감독의 역할을 전천후로 넘나들며 예능과 야구에 걸쳐 지난 2주간 <최강야구>의 실질적인 진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졸지에 맡게된 감독대행 자리 때문에 온갖 구박과 고생을 뒤집어쓰며 '고통받는 박용택'의 모습이 현재 <최강야구>의 킬링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전임인 이승엽이 '믿음의 야구'로 표현되는 덕장이자 푸근한 맏형이었다면, 박용택은 철이 없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동생같은 형'에 더 가깝다. 박용택은 현역 프로 선수 시절에도 우러러보는 슈퍼스타라기보다는, 가까이서 편안하게 대할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한 매력이 최대 장점이었다.
<최강야구>에 있어서도 박용택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놓고보면, 여전히 애증의 존재에 가깝다. 이승엽 감독시절, 결정적인 찬스를 번번이 날려먹으면서 변함없이 중심타선에 중용되며 후배들에게도 원성과 구박을 듣기 일쑤였다. 또한 모처럼 만원 관중 앞에서의 경기에 들떠서 사전 훈련에 오버하다가 허벅지 부상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LG 후배였던 심수창과 함께 몬스터즈에서 유독 짠내나는 에피소드들이 속출하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최강야구> 제작진은 이러한 박용택의 캐릭터를 예능적으로 적극 활용하며 분량을 쏠쏠하게 뽑아내고 있다. 특히 임시 감독대행으로 박용택을 선택한 것은 의외로 신의 한수가 됐다.
편안한 분위기속에서도 나름의 권위가 있었던 이승엽 감독 시절과는 달리, 박용택 대행 체제에서는 감독이 뭔가 말만 하면 선수들이 온갖 딴죽을 걸고 만담이 쏟아지면서 벌어지는 난장판 케미가 새로운 백미다. 또한 인력이 부족한 몬스터즈 선수단 사정상, 박용택이 하나에서 열까지 수행해야할 역할이 넘쳐난다. 감독은 물론이고 베이스코치 역할, 투수교체 타이밍, 수비 시프트, 선수들의 멘탈관리까지 넘나들며 점점 '멘붕'에 빠져가는 초보 감독의 애환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박용택의 '어설픔'과 '만만함'이야말로 오히려 <최강야구>만의 도전과 성장 서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여전히 야구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의욕은 넘치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중년의 은퇴 선수들이 자신의 한계에 극복하고 고군분투하며 초심을 찾아가는 내용이 <최강야구>의 매력이라고 했을 때, 현재 몬스터즈에서 이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인물이 박용택이라고 할수 있다.
현재 몬스터즈는 2대 사령탑으로 김성근 전 감독의 부임과, 또다른 레전드 타자 이대호의 합류를 예고한 상태다. 박용택은 방영 6개월을 넘기며 감독교체와 선수단 변화의 과도기의 맞이한 몬스터즈에서, 예능과 야구 사이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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