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벗어난 순둥순둥한 수정 씨

전정희 2022. 12. 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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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칼럼 - 이미선]
언제나 밝던 그녀 "약사 이모 나 집으로 가요~"
동료 어려운 일 앞장서 도와주던 순둥이

착하고 순둥순둥한 수정(가명) 씨. 지난여름 미아리텍사스 성매매 집창촌에서 몇 년간의 생활을 접고 그녀가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약사 이모, 나 집으로 가요.”

얼마 전부터 그녀가 생활용품을 한두 개씩 나에겐 주었고, 그리 비싼 것들이 아니어서부담 없이 받았다. 행주 새것, 섬유 유연제, 주방세제 등등.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고향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난히 여름을 타고, 땀이 많은 그녀인데 이 여름을 어찌 날른지…몹시 걱정되었다.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 골목. 수정 씨가 떠나간 뒤 찍은 영하의 골목 풍경이다. 멀리 내부순환도로가 보인다. 사진=이미선

나의 이런 마음을 읽었는지 “이모, 너무 걱정하지 마, 이모 전화번호 있으니까 아프거나 힘들면 전화로 상담하고 물어볼 테니까. 하하하”

호탕한 웃음으로 넘기는 그녀는 이곳에서의 일을 참으로 힘들어했다. 몇 년 전 몹시 더웠던 여름. 그녀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약국으로 들어온 그녀는 피부가 차가웠고 구역질과 두통을 호소했다. 일사병 증상이었다. 그녀에게 일사병인 듯하니 바로 병원 가기를 권하였고 그녀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하였으나 연락처가 없으니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며칠 뒤 핼쑥한 그녀가 왔다. 가슴이 턱하고 내려앉았고, 파리한 그녀의 손에 내 손을 대니 아직도 차가웠다. 며칠 입원을 하였고 지금 퇴원하는 길이라고… 일을 계속 쉴 수가 없어서….그동안 이런저런 사연과 까닭으로 이곳으로 들어온 그녀들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  ‘그렇게 힘들면 좀 쉬는 게 어떠냐’ 그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안아주고 도와주고 싶었다. 약사인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 여름철 체력 저하에 복용하는 한약 제제 약간과 좋은 영양제 한 통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거절하는 수정 씨의 손안에 들려주었다.

“일하려면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몸이 움직일 수 있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우야 든 둥 살아야 한다”라고.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고 달래고 살짝 협박(?)도 하면서 오랫동안 그녀를 보고 지냈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서 신망이 두터웠는지 그녀는 이런저런 가게 심부름을 많이 하였고 마트 가는 일, 은행 다녀오는 일들을 도맡아 하였기에 늘 외출이 많은 그녀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내내 그녀의 발걸음은 늘 바빠 보였다. 몹시 더운 여름날에도 엄청난 양의 땀을 흘리며 오가는 수정 씨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더운 여름날 동료 심부름을 마치고 헉헉거리면서 돌아오는 그녀를 붙잡아 약국으로 들이고는저간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숨 쉴 틈도 없이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크게 숨을 쉬고 난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사 이모가 뭘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내가 바보처럼 이용당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죠?”

“이렇게 더운 날 거리에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 사람이 한낮의 찜통더위를 어떻게 감당하려구.”

양손에 들린 커다란 쇼핑백 안에는 음료수와 아이스커피 등등 무거운 것들이 가득하였다.

“이모. 내가 힘이 드는 거는 맞는데 이렇게라도 해서 친구들의 외로움을 채워주고 싶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가위바위보를 한다든가, 사다리 타기를 한다든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걍 내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 내가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친구들이니까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지요.”

수정 씨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그렇게 표현하면서 살고 있었다.

“이모, 뭐 어때요. 내가 조금 손해 보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은 거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마는 시인의 절창이 아니어도 각자의 삶에는 그만큼의 언덕과 계곡이 있음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언덕과 계곡의 소유자가 건너고 넘어갈 만큼, 딱 그만큼 주심을 알고 있다.

수정 씨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 계곡과 언덕을 함께 손잡고 잘 넘어가기를. 수정 씨의 날개가 넓게 펴져서 그녀의 시린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잘 내려앉기를.

약사 이미선 
1961년 생.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서 태어나 현재 하월곡동 88번지에서 26년 째 '건강한 약국' 약사로 일하고 있다. '하월곡동 88번지'는 소위 '미아리텍사스촌'으로 불리던 집창촌이다. 이 약사는 이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약사 이모'로 불린다. 그들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하여 주민 상담, 지역 후원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ms64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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