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쓰인 한국작가의 역사소설... "가교역할 하고파"

박정우 2022. 12. 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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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라진 소녀들의 숲> 저자 허주은

[박정우 기자]

허주은은 한국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갔다. 한국과 캐나다 어디에서 속하지 못했던 허주은의 세계는 마치 홀로 떠 있는 외딴섬과 같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캐나다에서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지만 일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거절과 거절 속에서 허주은은 그저 썼다. 실망하면서도 썼고, 좌절하면서도 썼다.

새로운 기회는 '역사'에서 찾아왔다. 허주은은 한국 역사를 접하고 난 후 오랫동안 고민했던 자신의 뿌리를 찾은 것만 같았고, 결국 그 뿌리에 기반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역사와 미스터리가 결합한 이 생소하고 신선한 작품에 서구사회가 반응했다. 2년 연속 에드거 엘런 포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고, 올해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기대되는 작가에 선정되었다. 이런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최근 <사라진 소녀들의 숲>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사람이 좌절을 거듭한 끝에 해외에서 영어로 한국 역사 소설을 썼고,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를 받으며, 다시 한국어로 만들어졌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이곳으로 왔다. 지난 12월 21일 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허주은을 만났다.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를 한국어로 풀었다. 

"한국 역사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아"
 
 허주은 작가 프로필 사진
ⓒ julie Anna tang
 
- 3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때는 한국인이란 정체성도 없었을 텐데 해외에서 한국의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캐나다에 왔을 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없었고, 한국 문화에 대한 노출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뿌리에 대해서 잊고 살기도 했고, 굳이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천주교 박해 사건을 소재로 한 한무숙 선생의 <만남>이란 책을 접한 뒤에 한국 역사에 그야말로 빠져들었습니다. 저에게 한국 역사란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어요. 역사를 알면 알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이런 모습이 이런 문화에서 기인했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전까지 저는 소속 없이 외딴섬에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어요. 한국의 역사를 알고 난 후 비로소 나의 정체성을 찾은 것만 같았죠.

우리가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말하고 싶고, 알리고 싶고, 표현하고 싶잖아요. 저에게 한국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흥분되고 기뻤고 좋았어요. 그런 점에서 저에겐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한국의 역사를 알리는 방법은 소설 밖에 없었으니까요."

- 그간 해외에서 출간한 세 편의 소설이 모두 한국 역사와 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작가님의 소설이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는 점도 그렇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도 좀 의아했습니다. 아무래도 서구사회에서는 이 배경이 생소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인기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던 게 주요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역사 소설도 있고, 미스터리 소설도 있지만 역사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소설은 드물었으니까요. 거기서 오는 재미와 독특한 장르적 요소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 그럼 판타지나 장르에만 치중해서 썼다면 좀 더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랬을 수도 있겠죠.(웃음) 다만 이런 장르로 책을 계속 출간하면서 작가 허주은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되는 것 같아요. 저의 첫 번째 책을 재미있게 봐주신 독자분들이 두 번째 책도 봐주시고, 혹은 최근에 저의 작품을 접한 분께서 어떤 매력을 느끼면서 전작도 봐주는 식으로 독자층이 계속 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 또 지금까지 출간된 세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10대 소녀인데요. 이것도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현실에서 해결할 수 없던 문제를 소설로 녹여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살면서 가장 힘겨웠던 시기가 10대였어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누가 내 친구인지, 나의 모국, 나의 고향은 어디인지 하는 질문과 고민이 가득한 시절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방황했던 저와는 달리 어떤 사건을 해결하고 풀어가면서 성장하고, 또 끝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것 같습니다."

-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사라진 소녀들의 숲>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역사 소설인 동시에 미스터리물, 추리물의 형식입니다. 또 자매들 간의 가족애와 화해도 담고 있죠. 이 다양한 요소들이 산만해지지 않고 잘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인데요. 역사, 추리, 가족을 결합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역사는 곧 미스터리라고 봐요. 그래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일은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맞닥뜨릴 때 독자들이 역사를 더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제 책이 역사서가 아닌 만큼 소설적 재미를 줄 필요도 있는데요. 성격과 성향이 반대인 자매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데서 오는 특별한 재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저에게도 동생이 있는데 성격이 굉장히 다릅니다. 함께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저는 지도를 펼치면서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가 맞는 길이지?' 고민하는 편이라면 제 동생은 '지도를 왜 봐? 모든 길이 다 여행인데?' 이런 성격이에요. 저는 경험과 규칙을, 동생은 직관을 따르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경험을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두 주인공인 민환이와 매월이에 녹여내면서 훨씬 내용이 풍부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사라진 소녀들의 숲> 표지 이미지
ⓒ 미디어창비
 
"역사 공부 계속할 계획"

-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든다고 할까요. 몰입감을 주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역사 소설인 만큼 공부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다니면서 조사하는 편이에요. 제가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지지 않으면 쓰기 힘들어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이번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제주도도 실제로 많이 다니면서 곳곳을 머릿속에 새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면 캐릭터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고, 그러면 작품에서도 주인공이 한곳에 내내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제가 장면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으면 독자들도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의 몰입감은 그런 요소에서 온다고 봐요."

- 그래서 그런지 영화로 제작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앗! 그렇지 않아도 최근 출판사를 통해 영상화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웃음) 정말로 제 소설이 영상으로 만들어져서 볼 수 있다면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일 것 같아요."

-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주인공인 민환이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잘 구축한 것도 이 소설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를테면 민환이가 추리도 잘하고, 명석한 와중에 무예까지 깊었다면 재미가 좀 반감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민환이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민환이는 어린 시절의 저를 많이 투영한 인물이에요. 제가 소위 K-장녀이기도 하고,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좀 겁 많은 탐정 스타일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민환이에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을 주되, 겁도 많고, 신체적으로는 평범하게 만들면 독자들 입장에선 좀 더 손에 땀을 쥐면서 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요?
"역사 공부를 할 계획입니다. 저에게는 소설을 쓰는 게 곧 역사를 공부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계속해서 역사 소설을 쓰면서 살고 싶어요. 최근에 집필을 완료한 작품도 곧 출간될 예정입니다. 연산군 시대에 언니를 궁에 빼앗긴 동생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 어떤 작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서구사회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소설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서구의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리고, 좀 더 많은 사람이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동시에 이산 문학 독자들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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