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콜센터상담사들은 그 이상의 노동을 한다
하루에 기본 8시간 꼬박 수많은 사람들을 응대해야 하는 콜센터 근무자를 위해 지난 2018년 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 이 시행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감정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들을 위한 고용주의 조치를 공지한 법률이다. 법이 시행된 지 4년, 실제 현장은 어떨까. 지난 11월 25일 콜센터 노동자인 K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자말>
[안겸비 기자]
▲ 콜센터 노동자는 온갖 갑질과 성희롱 노출 등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
ⓒ unsplash |
K씨 같은 콜센터 상담사들은 소리 지르고 욕하는 사람들보다, 상담사를 어떻게 괴롭혀야 자기가 이득을 볼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단순히 폭언, 성적 농담을 넘어선 교묘한 괴롭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콜센터에서 맨 위에 있는 사람들을 매니저라고 부르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시 고객이 될 때가 더 힘들어요. 그런 사람들은 절대 소리 지르지 않아요. 악성 고객으로 분류되지 않는 선에서, 상담사를 괴롭혀서 적립금 같은 걸 받아내는 거예요."
그러나 여기서 받은 스트레스에 매여 있으면 안 된다. 콜을 받지 않는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 콜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K씨는 항상 마음에 화가 쌓여 있는 기분이다.
"이게 계속 쌓이고 쌓이다 보니 나중에 한꺼번에 감정이 터지더라고요. 당시에 나를 상처받게 했던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고 내가 내 스스로를 통제했다 보니 그게 힘들어서인 것 같아요."
▲ ‘멈춰! 반노동 엎어! 불평등 - 2022세계노동절 대회’가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광장 부근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모습. 당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보편적 노동권 보장과 질 좋은 일자리를,기후위기 산업전환 시기에 걸맞는 정부의 역할 강화와 책임’을 요구했다. 참가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건강권 보장' 등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 권우성 |
K씨처럼 고객 응대를 주업무로 하는 노동자들을 흔히 '감정 노동자'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은 1983년 알리 러셀 혹실드 사회학과 교수가 처음 언급한 개념으로, 직장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여 이를 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감정'에서만 끝나지는 않는다. K씨는 콜센터 일을 하는 중에 방광염에 걸려 고생했던 적이 있다.
"콜 수나 QA(상담사들의 통화 품질 평가표)에 따라 상담사별 개인 실적이 나오거든요. 실적을 많이 내려면 말 그대로 쉬지 않고 해야 하는데, 그러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죠. 그런 생활을 지속하다 보니 결국 (방광염이) 걸렸어요."
이처럼 신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감정노동자는 K씨뿐만이 아니다. 2021년 공공운수노조가 콜센터 노동자 139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응답자들이 귀(41.4%), 소화기계(37.5%), 호흡기계(34.1%) 신경정신계(29.9%), 비뇨기계(28.6%), 성대(27.2%) 등 다양한 질병을 겪고 있다고 답하였다. 콜센터 상담사는 감정노동의 대표적 직업이지만, 오랜 시간 앉아있고 고정된 자세로 손과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육체노동 또한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현재 콜센터를 둘러싼 이슈 대부분이 고객의 갑질이나 폭언 등 '감정 노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존 언론에서 다루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감정 노동'과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콜센터 노동자'를 검색하자 지난 1년간 총 217건의 관련기사가 보도되었고, 그 중에서 '감정노동'에 대한 기사는 총 92개로, 약 42%의 기사가 콜센터 노동자의 '감정 노동'에 집중하여 쓰여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콜센터 상담사들의 일은 감정노동 뿐 아니라 육체노동, 정신노동까지 수반한다. K씨는 현재 근무지인 홈쇼핑 콜센터에 들어오기 전에 일했던 한 가전제품 회사에서의 콜 내용을 말했다.
"가전제품 회사의 콜센터를 한 적이 있는데, 주로 제품 고장에 대해 상담하는 거였어요. 그러나 보니 제품의 구조나 원리 같은 걸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하고 콜을 받았었죠."
짧은 시간 내에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 알려줘야 하는 콜센터 특성상, 상담사들은 각종 정보를 스스로 공부해서 제공하는 정신노동도 겸하고 있는 것이다.
10년간 콜센터 노동자를 연구한 김관욱 문화인류학자의 저서 <사람입니다, 고객님 (창비 출판사)>에서는 콜센터에 대한 핵심 논의가 감정노동에 집중되는 이유를 두고 한국 소비자들이 "상담사가 저학력에 저임금, 그리고 대개 여성이라는 현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학력이나 경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이 상담사들보다 '갑'의 위치에 있다고 느끼기 쉬우며 이는 상담사들을 '쉽게 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현실은 고객의 갑질, 폭언에 의한 감정노동을 부각하고, 상담사들이 하고 있는 이외의 노동은 지워지게 한다. 감정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그저 동등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K씨의 말이다.
▲ ‘멈춰! 반노동 엎어! 불평등 - 2022세계노동절 대회’가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광장 부근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모습. 집회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이 ‘콜센터 노동자 건강권 보장하라’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가는 지나친 관리와 통제 중단하라’ 등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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