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승의 역사 속 장소 이야기⑬] 고종이 머물렀던 러시아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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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그 이듬해까지 375일간 머물렀다.
덕분에 러시아 공사관은 완공 직후 그 첨탑을 서울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종이 추진한 개혁은 러시아 공사관처럼 외부의 시선을 고려한 것에 너무 치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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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2월 11일 새벽 고종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우리 역사에서 ‘아관파천’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이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그 이듬해까지 375일간 머물렀다.
러시아는 1888년 8월 20일 체결된 조러통상조약을 근거로 정동 일대의 땅을 확보하였다. 러시아 공사관 부지는 정동에서 새문안 길로 넘어가는 언덕 위에 자리하였다. 새문안 길 너머의 북쪽은 상림원의 녹지였고, 북동쪽은 덕수궁 선원전이었다. 동남쪽에는 미국 공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까지 정동 일대에 자리 잡은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은 한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정동 일대에 자리 잡은 영국 공사관의 경우에도 1890년 5월 부지 내의 한옥을 철거하고 건물을 신축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1896년 서양식으로 새로 건물을 지었다. 덕분에 러시아 공사관은 완공 직후 그 첨탑을 서울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러시아 공사관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달리 그 외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였다. 시작부터 재정적 문제로 착공이 지연되었고, 결국 설계 변경을 통해 겨우 완공할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공사였던 베베르의 보고에 따르면 최초 설계보다 구조를 단순화하여 경비를 최소화하였다. 유일하게 경비가 소요된 부분은 외부인이 주로 머무는 접견실에 대리석 벽난로를 설치하고, 나무로 마루를 까는 것 뿐이었다. 사실상 외부인에게 노출되는 부분만 예산을 들여 신경을 썼다는 의미였다. 베베르는 이마저도 불안하여 이 설계 변경을 세레진 사바찐이 했으며, 러시아 공사관을 러시아인이 건립하여 매우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첨부하였다.
이곳에서 고종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자와 한방에서 생활하였다. 당시 고종이 머물던 방을 살펴본 어느 외국인은 “르네상스식으로 장식한 실내의 벽은 꽃무늬 융단이 장식으로 걸려있고, 중앙에 일곱 가지가 난 촛불 샹들리에가 비춰주고 있었다. 동쪽 벽에 붙어 포장이 둘린 넓은 소파 모양의 용상이 마련되고, 그 용상 바로 앞에는 호피 한 장이 깔려 있었다. 그 용상 오른편에 찻잔이 놓인 삼각 받침대, 왼편에 돌사자의 장식 조각이, 그 뒤에 삼 층 조선장이 놓여 있었다. 용상 맞은바라기 서벽에 더블 침대, 그리고 남쪽 벽에 붙인 소파 세트가 임금님이 한 해 동안 기거한 거실의 전부였다.” (박형우 편, ‘에비슨이 지켜본 근대 한국 43년’(1993))라고 감상을 남겼다.
이전 고종이 생활하던 공간을 고려한다면 너무나도 협소하고 불편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여기서 미래를 도모하며 절치부심하였을 것이다. 이후 고종은 개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고종이 추진한 개혁은 러시아 공사관처럼 외부의 시선을 고려한 것에 너무 치중하였다. 결국 고종의 개혁은 사실상 중명전에서 멈추고 말았다.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soothhistory@nah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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