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이 위험하다, 부상에 휘청이는 여자농구
[이준목 기자]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최근 선수들의 심각한 부상이 속출하며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지난 26일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2022-2023 여자프로농구' 삼성생명과 신한은행의 경기에서 이주연과 키아나 스미스(이상 삼성생명)가 연달아 큰 부상을 당하며 코트에서 물러났다. 두 선수 모두 들것에 실려나갈만큼 부상 상태가 가볍지 않아서 더 우려를 자아냈다.
이주연은 1쿼터 막판 공중볼 다툼을 벌이다가 넘어져 바닥과 충돌했다. 왼무릎을 부여잡고 바닥에 얼굴을 묻은채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흐느끼는 이주연의 모습에서 부상이 가볍지않다는 것을 모두가 직감했다. 정황상 십자인대 부상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주연은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이주연의 공백으로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가던 삼성생명은, 추격의 고삐를 당기던 3쿼터에 이번에는 주포 키아나 스미스까지 쓰러지는 악재가 발생했다. 키아나가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하던 과정에서 자신을 수비하던 김단비와 충돌하여 코트에 쓰러지며 두 선수 모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키아나는 쓰러지는 순간부터 무릎을 부여잡고 연달아 큰 소리로 비명을 내지르며 패닉에 빠진 모습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다행히 김단비는 스스로 몸을 일으켜 잠시 후 경기에 복귀했지만, 키아나는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들것에 실려서 코트를 떠났다. 키아나는 이날 15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분전하던 중이었다.
핵심선수들의 공백을 이기지 못한 삼성생명은 이날 우리은행에 60-72로 패배했다. 리그 1위를 달리는 우리은행은 파죽의 13연승 행진을 질주했다. 우리은행의 김단비는 22점 10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통산 7호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기후 패한 삼성생명도, 이긴 우리은행도 모두 표정은 밝지 못했다. 이주연과 키아나 스미스의 큰 부상을 가까이 목격한 양팀 선수들과 관중들 모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김단비는 "오늘 두 선수가 다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같은 운동선수의 입장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위 감독은 "정말 큰 부상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내며 쾌유를 기원했다.
삼성생명은 이날 한 경기로 1패 이상의 엄청난 타격을 받는게 불가피해졌다. 삼성생명은 현재 리그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미 우리은행전에서는 배혜윤이 무릎에 물이 차서 결장해야했고, 김나연과 최서연도 독감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유망주 윤예빈은 이미 시즌 개막 전 대표팀에 발탁되어 2022 FIBA(국제농구연맹) 여자농구월드컵에 참여했다가 왼쪽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악재를 맞이하며 다음 시즌에나 복귀가 가능하다.
여기에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꼽히던 이주연과 키아나를 한 경기에서 장기부상으로 잃게 된 것은 치명타다. 이주연은 올시즌을 앞두고 삼성생명과 5년짜리 FA 계약을 체결하며 윤예빈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꼽혔다. WNBA 출신의 키아나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제 1순위로 지명을 받으며 단숨에 삼성생명의 에이스 자리를 꿰찼던 주포였다. 하필이면 휴식기를 앞둔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벌어진 사태였기에 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팀 KB가 전반기 에이스 박지수 한 명이 이탈한 것만으로 하위권으로 추락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삼성생명의 전력누수는 그 이상이라고 할수 있다. 부상자들 대부분이 정확한 복귀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큰 부상이라, 삼성생명은 남은 시즌 순위 유지는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도 장담하기 어려운 최대 위기가 될수 있다. 임근배 감독은 "할 말이 없다. 솔직히 화가 나고 맥이 빠진다"며 허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삼성생명만이 아니라 여자농구는 계속된 선수들의 부상 속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자농구의 간판 스타인 박지수는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하며 대표팀에서도 하차했고, 시즌 초반 장기간의 결장을 감수한 끝에 최근에야 겨우 복귀했다. 선두팀 우리은행도 불과 5일 전에 2년차 유망주 김은선이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당하며 1년 이상 재활이 불가피하다는 비보를 접했기에, 삼성생명의 상황이 남일같지 않았다.
사실 부상 상황 자체는 대부분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불운이었다. 고의로 상대에게 해를 입히려하거나, 무리한 플레이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농구에서 일상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벌어진 돌발 상황이었기에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리그 일정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삼성생명만 해도 이주연과 키아나의 부상이 나온 우리은행전까지 최근 6일간 3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이 정도면 남자 프로팀들도 부담스러워 할만한 일정이다. 신체접촉이 잦고 격렬한 농구의 특성상, 체력적 부담이 높아지면 집중력도 하락하고 선수들이 부상을 당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진다.
가뜩이나 국내 여자농구는 선수층이 얇다. 주전 1-2명만 빠져도 팀전력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 외국인 선수제가 폐지된 현재 여자농구 환경상, 가뜩이나 팀간 전력불균형이 심한 편인데 주전급 선수가 장기간 이탈하게 되면 그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않다. 최고의 선수들와 경기력을 볼 수 없는 여자농구 팬들에게도 손해다.
더구나 선수들이 연이어 크게 다치는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선수들도 트라우마가 우려된다. 동료들이 아찔한 부상을 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쉽고,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몸싸움이나 허슬플레이를 펼치는데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박지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이제는 육체적인 부상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멘탈 관리 역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부상은 피할수 없는 그림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들어 연이어 선수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좋지않은 징후다. 선수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체력적-정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리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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