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美 IRA 반격 나선다
수입차 업체 불리해질듯
[아시아경제 유현석 기자] 정부가 내년 전기차 보조금 적용 대상을 국산 완성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동차나 배터리업계에서도 미국 생산설비 투자에 속도를 조절하는 분위기가 흐르면서 미국 중심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내년 전기차 보조금과 관련해 구두 설명회를 진행했다. 설명회에서는 내년 보조금 규모와 조건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올해 1대당 최대 700만원까지 지급했던 전기차 보조금을 소폭 줄이기로 했다. 여기에 새로운 조건으로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직영 AS센터 운영 여부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AS센터가 없는 업체의 전기차에는 전비와 주행거리에 할당된 최대 500만원 보조금의 최대 50%를 삭감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국내 완성차 대비 수입차 업체가 AS센터가 적은 만큼 전기차 판매에 있어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보조금 금액도 일부 조정이 있고 국내 정비 인프라와 관련해 내용을 추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방향은 국산차에 유리한 쪽으로 규정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플레 감축법과 국내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인플레 감축법으로 자국 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국내산과 수입산에 차별 없이 동등하게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해외 기업에 수혜를 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기업들도 인플레 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해왔던 미국 진출을 늦추거나 직접적으로 의견을 내며 우려를 내보이고 있는 상태다.
로버트 후드 현대차 정부 업무 담당 부사장은 인플레 감축법으로 피해가 커지면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투자의 경제성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0월에는 미국 남부 조지아 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진행했다. HMGMA는 연간 30만 대의 전기차를 양산할 수 있는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다.
그는 "공장을 유치한 조지아주에서 인센티브를 받는 대신 고용 및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게 된다"며 "인플레 감축법으로 우리 성장에 계속 피해를 보게 된다면 우리가 어디로 갈지 진지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분명 멕시코는 인건비와 생산비 등 모든 것이 훨씬 저렴하다"며 "회사가 그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기로 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미국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던 배터리 업체들도 일부 투자에 대해 속도 조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글로벌 금리 인상 등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 3월 애리조나주 퀸크리크에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11GWh 규모의 원통형 배터리 신규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관련 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힌 이후 반년 넘게 진전되지 않고 있다.
SK온도 최근 2조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금 대부분을 모회사를 통해 조달하며 외부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투자금을 미국 등 해외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데 쓸 계획인데 실탄 마련이 어려워질수록 투자가 미뤄질 수 있다.
다만 업계는 정부와 업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자국 산업을 적절히 지키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업체들의 움직임이 추후 FTA(자유무역협정)에 걸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충분히 상황을 살펴보면서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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