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 테슬라 왕국…잇단 악재에도 "여전히 비싼 주식"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사상 최대에서 사상 최악으로’. 2003년 전기차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던 게임 체인저 테슬라 왕국이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 반도체 칩 부족과 공급난이라는 전례없는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 성장세를 구가한 테슬라가 올 들어 추락을 거듭한 끝에 ‘역사상 최악’의 주가 하락을 보인 기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테슬라에 대한 시장의 팬덤이 빠르게 식으면서 한때 1조달러를 훌쩍 넘어섰던 몸값은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본업 부진에 일론 머스크 ‘오너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테슬라의 미래는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테슬라 위기설…왜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2일자(현지시간) 인터내셔널판 1면 기사에서 테슬라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지배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던졌다. 테슬라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이후 불거진 오너 리스크 외에도 근본적인 경쟁력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었다.
위기 상황은 단일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올해 테슬라의 중국 내 판매(지난달 말 기준)는 전년 동기 대비 59% 증가했다. 높은 성장세로 보이지만 테슬라의 최대 경쟁사인 토종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는 무려 3배나 껑충 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테슬라를 누르고 선두자리를 꿰찬 데 이어 올해는 2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고 있다. 예상보다 부진한 판매에 재고가 쌓이면서 테슬라 상하이 공장은 20% 규모의 감산에 들어갔다. ‘노 디스카운트’의 상징인 테슬라는 지난 10월 모델3와 모델Y 중국 내 판가를 5~9% 인하하는 프로모션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테슬라가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현지 토종업체들에 밀려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고 NYT는 평가했다.
유럽과 미국 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테슬라는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빠르게 세를 늘리고 있는 폭스바겐에 시장 선두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유럽 전기차 통계 사이트인 EU-EVs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올 3분기 유럽 시장 점유율은 16.48%로 테슬라(16.94%) 추월을 목전에 두고 있다. 같은 기간 현대차 7.15%, 아우디 5.54%, BMW 5.47%, 메르세데스-벤츠 5.15%로 격차를 좁히며 3~6위를 다투고 있다. 미국에서는 포드, 제너럴모터스(GM), 현대차가 빠르게 테슬라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내년 신차를 출시하는 GM의 고급차 브랜드 캐딜락, 닛산까지 가세하면서 테슬라의 점유율 수성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판매 부진이 예상되자 테슬라는 재고 소진을 위해 오는 31일까지 모델3와 모델Y의 할인폭을 최대 2배 확대했다. 하지만 미 경제전문매체 CNBC는 이에 대해 "테슬라의 인기모델에 대한 할인은 소비자 수요가 약해지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라고 분석했다.
테슬라 고성장의 동력이었던 신차 전략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테슬라는 2016년 모델3, 2020년 모델Y를 출시한 이후 신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 준비 중인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은 생산 일정이 수차례 지연되면서 출시는 내년 말까지 미뤄졌다. 2019년 테슬라가 사이버트럭을 언론에 처음 공개할 당시 밝힌 출시 일정(2021년)과 비교하면 2년 이상 늦어졌다. 전기 픽업트럭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신제품의 주요 성능을 변경하는 등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출시 지연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외신들은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은 포드와 리비안, GM의 경쟁 모델보다 출시가 늦을 것이라며 신차 출시에 열을 올리는 업계 싸움에서 테슬라가 크게 뒤처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했다.
원조국서 번지는 '탈(脫)테슬라' 움직임
자동차 산업의 원조국인 독일 내에서 머스크에 대한 반감이 탈(脫)테슬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머스크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의 트위터 계정을 정지시킨 사건을 ‘언론 탄압’으로 맹비난하며 불매운동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폴스가 이달 첫주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트위터 인수는 테슬라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앞으로 테슬라 차량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탈테슬라 움직임은 수요 감소에도 영향을 미쳤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테슬라 생산 공장에서 지난주(12~18일) 생산대수는 3000대로, 당초 설정한 목표대수에 한참 못 미쳤다.
주가는 2년 전으로…후진하는 테슬라
고공행진하던 테슬라 주가는 올 들어 큰 폭으로 반락하면서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25일 미 나스닥 시장에 상장된 테슬라 주가는 전장 대비 1.76% 하락한 123.15달러로 마감하며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주가는 지난 10월 말 이후 폭락세를 가속화하며 두 달새 반토막 이상 났다. 주가 하락에 1조달러를 훌쩍 웃돌던 시가총액은 현재 3889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미 월가에서는 "테슬라의 주가 급락은 2030년까지 연간 2000만대의 판매 실적을 달성하겠다는 머스크의 공약을 투자자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머스크가 스스로 비싸게 샀다고 인정한 트위터 인수에도 몰두하고 있다는 점도 주가 폭락세를 부추긴다. 트위터 인수 이후 머스크의 관심 분산과 테슬라 보유 지분 대량 매도에 따른 우려감이 반영되면서 테슬라 브랜드 가치는 실시간으로 떨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머스크의 계속되는 정치적 발언과 트위터 인수 후 진행한 과격한 구조조정, 충동적이고 독선적인 경영 방식이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꼽았다. 컨설팅회사 액센추어의 악셀 슈미트 시니어 매니징 디렉터는 트위터 인수 후 이어지고 있는 머스크의 ‘딴짓’을 꼬집으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파트타임 잡’이 아니다"고 맹비난했다.
"내년 더 떨어진다"…월가 추가 하락에 베팅
각종 악재에 테슬라 주가 하락은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실제 가치에 비해 몸값이 너무 높게 올랐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테슬라의 목표 주가를 305달러에서 235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시트론리서치의 창업자인 앤드루 레프트는 "테슬라는 아직도 비싼 주식이다. 아직 (하락은) 끝나지 않았다"며 추가 하락을 예상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세트에 따르면 테슬라의 지난 12개월간 주가수익비율(P/E)은 46.7배로 지난해 4월 1196배보다는 많이 내려왔으나, 여전히 S&P500 평균 18.1배를 크게 초과하는 수준이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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