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점심시간] 업무용 도시락 먹고 '우주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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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박은정 기자]
얼마 전 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장시간 심사가 요구되는 일이라 심사위원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해야 했다. 시간적인 효율과 편의를 고려해 도시락을 준비했다.
오전 심사가 끝나고 점심 도시락을 나누어 드릴 때였다. 일순간 분위기가 살짝 바뀐 느낌이랄까. 평가 동안의 심각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맛깔스럽게 담겨 있는 도시락 앞에서 심사위원들 표정이 아이처럼 밝아졌다.
반면 나는 지쳐 있었고, 긴장도 컸다. 내 업무의 대부분은 누군가가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번거로운 절차를 대신 처리하거나 발생하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지원의 역할이다.
심사위원들이 볼 수 있게 자료를 만들고, 참석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대기 시간을 조율하고, 순서를 안내하면서 자료를 화면에 띄워 행사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바삐 움직여야 한다.
▲ 점심 도시락 집밥같이 정갈했던 업무용 도시락 |
ⓒ 박은정 |
내 일의 주요 속성이 지원이다 보니 남들 눈에 드러나는 때는 문제가 생겼을 때다. 잘 하는 것은 기본이라 주목 받거나 칭찬 들을 일이 없다. 분명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바쁘고 긴장되는 것에 비해 드러나지 않는다. 가끔은 인정받고 싶은 기분이 된다.
직장인이 기대할 수 있는 인정이란 승진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긴 시간 제자리걸음인 나를 떠올려 보면, '오늘 하루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라는 다짐에도 종종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픔이 밀려들 때도 있다.
지난 몇 개월이 그랬다. 새 업무를 맡았고 배우는 동안 중요한 행사들이 줄을 지었다. 이번 행사는 그 과정의 마지막 단계였다. 입맛은 없었지만 일정이 길어 뭐라도 먹어둬야 했다. 심사위원들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준 다음, 사무실로 돌아와 나도 내 몫의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와. 채소를 잘게 다져 단단하게 말아 한입 크기로 부쳐낸 계란말이, 매콤하고 새콤한 오징어 미나리무침, 견과류를 넣어 고소함을 더한 멸치볶음, 달짝지근한 불고기와 진한 된장 국 등 손이 가는 반찬들이 정사각 일회용기에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그동안 여러 행사용 도시락을 먹어 봤지만, 가장 괜찮았다고나 할까.
도시락을 먹은 후, 오후 일정을 위해 대기실 정비와 확인을 하러 이동했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 다방 커피를 타서 홀짝거릴 때였다. 도시락과 심사라는 상황 때문이었을까?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20대에 구직 준비를 하면서 단기계약직으로 일한 시기가 있었다. 구내식당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이라 주 5일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회사 근처에는 식당이 많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월급으로 매일 점심을 사 먹는 일은 무리였다.
비슷한 처지로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도시락을 싸 오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왔다. 흔쾌히 그러자 하고 도시락을 싸 와 먹었다. 하지만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사무실은 열린 공용 공간, 창문 없는 회의실에서는 밥을 먹으면 냄새가 남았다.
종종 사내 도서관에 다녔는데, 도서관 관리며 대출과 반납을 처리하는 언니도 알고 보니 나와 같은 단기계약직임을 알게 되었다. 언니도 도시락을 싸 온다고 해서 우리는 도서관에서 점심을 해결하게 됐다.
그때의 도시락은 이번에 행사용으로 준비한 도시락과 달리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점심시간이 주는 기쁨은 컸다. 내 힘겨움을 응원받는 학창 시절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 달랐던 그때의 도시락. 치열한 하루를 버티기 위해 스스로 싼 도시락을 나눠먹으며 서로를 위로하던 친구들, 그 다정했던 사람들이 떠오르자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당시 내가 했던 일도 권한과 역할 범위의 차이만 있을 뿐, 지금처럼 누군가의 업무를 돕는 보조 역할이었다. 자료들을 입력하고, 문서를 만들고, 자잘한 지원적 성격의 사무를 보았다. 반복적이고 지난한 성격의 업무였지만 매일 성실히 일했다.
나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는 단순한 업무를 하는 단기계약직에 불과했다. 하지만 꿈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 경력을 쌓으면서 월급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도시락을 싸 들고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준비하며 점심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고, 하루를 살아냈다. 웃을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뒤에서 숨은 보조 역할을 했지만, 그런 나를 응원했고, 꿈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을 내 안에 둔다면
그때로부터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 나는 당시 꿈꿨던 삶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20대의 내가 부러워했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도시락을 싸다니지 않아도 되고, 누구에게든 밥 한 끼 정도는 편히 사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여전히 동네 작은 도서관이나 사내 도서관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책들을 빌려 보지만, 보고 싶은 책을 언제든지 사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때와 비교해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머뭇거리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불안>과 <일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말했듯이,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믿음'은 현대인의 강박관념이 되었다. 닫힌 기회의 문, 치열한 경쟁은 취업이라는 관문을 뚫기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한정된 승진 기회는 노력과 보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인정받지 못한 자아는 좌절되며, 먹고 살기 위해 자아실현과 동떨어진 일을 하러 직장에 출근하는 일상은 어딘가 실패한 느낌을 준다. 얼마 전 후배들이 승진하는 걸 보며 한동안 마음이 흔들렸다.
그랬다. 지난 15년간 일해 오며, 어느새 스스로를 주목받는 업무 뒤에서 그 일을 지원하는 업무를 기준으로 나의 성장을 한계 지었다. 내 일의 속성으로 나의 직장생활과 삶의 가치를 규정하고 있었다.
▲ <알쓸인잡>에서 심채경 박사. |
ⓒ tvN |
그러던 중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가 했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던 <알쓸인잡>에서다. 꿈꾸었던 천문학과에 가서 뛰어난 사람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그 일을 열심히 했다는 심 박사는 '자신을 조금 더 관대하게 보길, 무엇보다 가치 판단을 바깥이 아닌 자신 안에 두라'라는 말을 해 주었다.
소박한 도시락을 싸다니면서도 불안보다 희망을 꿈꾸었던 나의 20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할까? 실망스럽다고 할까? 잘 살고 있다고 할까? 이미 그 대답을 나는 안다. 심 박사의 말대로 가치 판단을 내 안에 두고나니 굽은 어깨가 조금은 펴지는 듯한 기분이다. 나의 숨은 역할이, 지난 몇 달 간의 바쁜 종종 걸음이 누군가의 일생일대 중요한 일을 순조롭게 굴러가게 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치열했지만 늘 희망을 품고 성실하게 살았던 나의 20대가 선물해 준 지금이다. 여전히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그런 나의 삶이 꽤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오늘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한 해를 잘 살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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