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읽다]'서울-부산 20분'…하이퍼루프 어디까지 왔나
미래 첨단 육상 운송 수단으로 꼽혀, 일론 머스크 등 세계적 연구 경쟁 치열
한국도 9년간 1조원 투자해 연구, 조만간 시험로 건설 등 박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2039년의 어느 날. 새내기 직장인 김한솔씨(27·가상인물)는 서울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출근은 부산 고향집에서 한다. 얼마 전 개통한 서울~부산 간 하이퍼루프(Hyperloop·아음속 캡슐 트레인) 노선 덕분이다. 부산역에서 15분이면 서울역에 도착해 굳이 이사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형 고속철도(KTX)가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면 하이퍼루프는 한 시간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전국 곳곳에 하이퍼루프가 뚫리면 수도권에만 돈과 사람이 몰리는 집중 현상도 이젠 옛말이 된다. 수도권 부동산 투기나 저출산 해소, 지역 불균형·지방 소멸 문제 등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하이퍼루프는 시속 1200㎞로 인류를 순식간에 미래 세계로 안내할 초고속 신개념 육상 교통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주요 기술 강국과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으로 자웅을 겨루고 있는 차세대 친환경 미래 이동 수단이다. 하이퍼루프 기술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자.
진공에선 저항이 없다
로켓·미사일·항공기는 물론 자동차, 고속철도 등 기존의 모든 육상 수송 수단들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서 역발상으로 떠오른 것이 하이퍼루프 기술이다. 진공 상태라면 공기 저항을 걱정할 필요 없이 초고속을 구현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발전된 개념이다. 2009년 우리나라 철도기술연구원(KRRI)이 개념 연구를 시작했고 2013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제안해 널리 알려졌다. 진공 혹은 진공에 가까운 상태인 튜브 형태의 통로에서 캡슐 또는 포드라고 불리는 열차를 공중에 띄운 상태로 시속 1200㎞ 이상의 빠른 속도로 달리게 하는 기술이다. 포드에는 25~40명의 승객과 화물을 태울 수 있으며 태양열을 통한 에너지 조달도 가능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자기장 또는 공기압(에어 베어링)을 이용해 포드를 부양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바퀴 때문에 생기는 마찰력을 없애기 위해서다. 진공 튜브 기술도 필수다. 내부를 진공 또는 대기압의 1000분의 1 수준으로 유지해 공기 마찰을 최소화해야 에너지 손실을 줄이고 제 속도를 낼 수 있다.
포드의 속도를 계속 빠른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전자기적 추진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모터로 추진력을 얻는 일반 열차와 달리 레일건과 비슷한 원리로 전자력을 통해 간헐적으로 추진력을 주는 방식이다. 속도가 아음속 수준이라 안정적이고 적절한 작동을 위해 외부와 통신을 유지해주는 기술도 필수다. 그렇다면 하이퍼루프 내의 화물과 승객은 안전할까? 이창영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 하이퍼루프 연구소 박사는 "초음속 비행기도 내부 조종사는 안전하며 여객기가 시속 700~800㎞로 날아가도 문제가 없지 않냐"며 "관성의 법칙에 따라 급출발, 급정거만 하지 않으면 가속·감속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인간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약 0.25~0.30G인데 하이퍼루프의 경우 약 0.15~0.20G로 예상된다. KTX(0.1G)보다 약간 더 강한 정도다.
하이퍼루프는 또 자체 태양광 발전을 이용하고 효율이 높다. 때문에 기존 고속철도보다 에너지 소모량이 30%에 불과하고 항공기 대비 8%에 그친다. 소음도 적고 건설 비용도 고속철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최소화하고 소음 공해를 줄일 수 있어 ‘탄소 중립’ 시대에 적합한 교통 수단이라는 평가다.
치열한 개발 경쟁
해외에선 영국의 부호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그룹, 머스크의 ‘더 보링 컴퍼니’, 안드레스 드 레온의 하이퍼루프 TT 등이 투자와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최초로 하이퍼루프를 제안했던 머스크는 올 하반기부터 실물 크기 하이퍼루프 시험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소식은 없는 상태다. 2017년부터 하이퍼루프 포드 경연을 주최하면서 주어진 트랙에서 최적의 포드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2019년 8월 시속 463㎞를 질주한 포드가 상을 타 주목을 받았다. 버진 그룹은 미국과 인도, 두바이 등 여러 국가에서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0년 11월 최초의 유인 테스트를 실시했다. 버진의 2인 탑승 포드는 시속 172㎞를 기록했다. 음속의 7분의 1로 500m를 달리는 데 불과했지만 더 이상 공상 과학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지난달 30일 한국연구재단(NRF)의 ‘하이퍼루프를 위한 정보기술’ 보고서는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대륙간 이동이 몇시간 단위로 줄어듦에 따라 전 세계 어디든 하이퍼루프를 통해 물건을 전달하는 주문형 경제 구축이 가능해진다"면서 "사람들의 거주와 직업 선택의 자유가 확대됨에 따라 다양한 경제적·사회적 이점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9년간 1조 쓴다
우리나라도 하이퍼루프 기술 개발 국가 중 선두권에 속한다. KRRI는 2018년 하이퍼루프의 핵심 장치인 ‘1000분의 1 기압 튜브’ 국산화에 성공했다. 2020년 11월엔 진공상태에 가까운 0.001 기압 수준에서 시속 1019㎞의 속도를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 아진공 튜브 내부에서 비행기보다 빠르게 주행하는 하이퍼튜브의 주행특성을 실험으로나마 처음으로 규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KRRI는 2024년까지 하이퍼튜브 차량의 엔진에 해당하는 핵심 장치인 초전도전자석과 추진장치, 차량의 초고속 주행 안정화 장치 등 하이퍼튜브의 핵심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6월 하이퍼루프 연구개발(R&D)에 향후 9년간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광역 시도 중 한 곳을 택해 10㎞ 길이의 테스트 베드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R&D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불이 붙은 상태다.
아직 해소되지 못한 문제도 산적해 있다. 워낙 속도가 빨라 사고가 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밀폐된 포드 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책이 없다. 항공, 고속철도, 지하철 등 기존 교통 수단들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제 수요가 얼마나 있냐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까지 없었던 신개념 교통 수단이라 국제적 협의를 통한 규제 마련과 투자·지원도 필요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100명에 알렸는데 달랑 5명 참석…결혼식하다 인생 되돌아본 부부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황정음처럼 헤어지면 큰일"…이혼전문 변호사 뜯어 말리는 이유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번호 몰라도 근처에 있으면 단톡방 초대"…카톡 신기능 뭐지? - 아시아경제
- "'김 시장' 불렀다고 욕 하다니"…의왕시장에 뿔난 시의원들 - 아시아경제
- "평일 1000만원 매출에도 나가는 돈에 먹튀도 많아"…정준하 웃픈 사연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