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주지사 '북송'…왜 美부통령 관저에 '불법이민자' 보냈나 [박현영의 워싱턴살롱]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가장 추운 크리스마스이브로 기록된 지난 24일(현지시간) 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관저인 미국 해군성 천문대 앞에 중남미 불법 이민자 110~130여명을 태운 버스 3대가 섰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남부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남미인들의 불법 입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항의 표시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보낸 행렬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들은 텍사스를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이곳에 도착했다. 당초 크리스마스인 25일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뉴욕주를 휩쓴 눈폭풍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이민자들은 영하 7도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담요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텍사스트리뷴은 보도했다.
공화당 소속인 애벗 주지사는 지난 4월 멕시코-텍사스 국경으로 넘어온 불법 이민자들을 워싱턴,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민주당 소속 시장이 있는 북부 도시로 보내는 '북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 이민 문제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대통령과 부통령의 국경 방문을 촉구하기 위한 방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 후 한 번도 남부 국경을 방문하지 않았다.
애벗 주지사는 지난 9월 부통령 관저로 처음 버스를 보냈을 때 NBC뉴스 '밋 더 프레스'에 출연해 "그(부통령)가 국경을 보러 내려오지 않고, 바이든 대통령이 내려와 국경을 보지 않을 거면 우리는 그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려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로 텍사스가 겪는 어려움을 북부 도시들도 직접 겪어보라는 메시지다.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 주들은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중남미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뉴욕, 시카고, 워싱턴 같은 대도시들은 문제를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이라고 주장한다.
애벗 주지사는 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국경이 안전하다는 거짓말을 멈추고 즉시 연방 자산을 이곳에 배치해야 한다"면서 "더 많은 무고한 생명을 잃기 전에 남부 국경을 보호하라는 헌법이 명령한 의무를 수행하라"고 촉구했다. 또 텍사스 주정부는 미국으로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수천 명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호소했다.
공화당 소속으로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도 '북송' 행렬에 동참했다. 지난 9월 디샌티스 주지사는 베네수엘라에서 월경한 불법 이민자 50여명을 텍사스주 샌앤토니오에서 전세기 2대에 태워 매사추세츠주의 고급 휴양지인 마사스 비니어드로 날랐다. 마사스 비니어드는 바이든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유력 인사들이 여름 휴가를 즐기는 곳이다.
당시 디샌티스 주지사는 기자 회견을 열고 "미국 내 모든 공동체가 부담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플로리다는 멕시코와 국경을 접하고 있지 않지만, 텍사스로 들어온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목적지가 플로리다라는 이유로 나섰다고 한다. 더그 듀시 애리조나 주지사도 불법 이민자들을 버스에 태워 워싱턴으로 보냈다.
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애벗 주지사의 '북송' 프로젝트는 사람을 볼모로 잡고 벌이는 '정치 쇼'라고 비판한다. 압둘라 하산 백악관 대변인은 크리스마스이브 불법 이민자 행렬은 연방 정부와 협조 없이 보내졌으며 "잔인하고 위험하며 수치스러운 행위"라고 밝혔다. WP는 하산 대변인이 "우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의회에 보낸 포괄적인 이민 구조조정과 국경 보안 조치 같은 실질적인 해결책에 대해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구와도 협력할 용의가 있지만, 이런 정치적 게임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뿐"이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디샌티스 주지사가 전세기로 불법 이민자들을 실어나른 직후 공개 연설에서 "공화당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는 대신 사람을 소품 삼아 정치 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건 비미국적(Un-American)이고 무모하며, 우린 국경에서 이주민을 관리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면서 "공화당은 정치적 쇼를 통해 그 절차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중남미 출신 불법 이민자는 바이든 정권 출범 이후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지난달(11월) 멕시코와 접한 남쪽 국경에서 23만3740명이 불법 입국하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달(10월)보다 늘었고 같은 달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치다. 2022 회계연도에 남부 국경 불법 이민자는 사상 처음으로 200만 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 영향이 컸던 2020년엔 46만 명, 2021년엔 170만 명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19 초기였던 2020년 3월 도입한 행정명령 '타이틀 42' 정책의 존폐에 대한 법원 판단이 엇갈리면서 공화당과 민주당 간 이민 정책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미국 망명을 신청한 불법 이민자의 즉각 추방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 정책을 유지하던 중 지난달 워싱턴DC 연방법원이 이 조치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며 지난 21일부로 기한 종료를 결정했다. 행정명령 폐지를 이틀 앞둔 지난 19일 보수 우위의 연방대볍원은 공화당 주정부 요청에 따라 심의에 들어가면서 폐지를 일시 보류했다.
여론조사로 보면 미국인 과반수는 불법 이민 문제에 강경한 편이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과 입소스가 지난 8월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53%)은 남부 국경이 "침략(invasion) 당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침략" 주장은 완전히 허구라는 응답은 19%에 그쳤다. 응답자의 27%는 모른다고 답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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