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새해에도 ‘중꺾마’

신종수 2022. 12. 27.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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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에서 처음 쓴 표현
올해 최고 유행어로 거듭나

고난 중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갖는 것은 큰 가치

두려움 변하여 기도 되고
한숨 변하여 노래 되길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 표현을 처음 쓴 것은 국민일보 자회사 쿠키뉴스다. 미국 뉴욕에서 지난 10월 열린 온라인게임 롤(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한 한국팀이 본선 첫 경기에서 패배한 뒤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 기사에서 나왔다. 인터뷰 내용에 이 표현은 없다. “오늘 지긴 했지만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쿠키뉴스는 이 말의 맥락에 맞춰 제목을 다소 창의적으로 뽑았다.

약팀으로 꼽히던 이 팀은 첫 패배에도 불구하고 강팀들을 잇따라 꺾고 롤게임 월드컵(롤드컵)으로 불리는 이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후 MZ세대들 사이에서 이 말이 SNS와 방송 등을 통해 회자됐다. 결국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카타르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올해 최고의 유행어로 거듭났다.

어떤 종목이든 경기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지고 있을 때, 그것도 상대적으로 강한 상대에게 지고 있을 때 어떤 심리 상태에 빠지는지를. 기가 꺾이고, 역시 지는가 보다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흔히 얼었다거나 쫄았다고 하는 멘붕 상태를 말한다.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고 운동 수행 능력이나 팀워크도 떨어진다. 이를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경쟁 불안’이나 ‘팀 역동’ 등의 주제로 다루기도 한다.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 밥 로텔라는 경기가 안 풀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진 심리 상태를 ‘파괴적인 자기방만(destructive self-indulgence)’이라며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보다 강팀으로 평가받는 포르투갈이 경기 시작 후 5분 만에 먼저 한 골을 넣었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넣은 완벽한 골이었다. 우리가 역시 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응원단 쪽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손흥민 선수가 선수들을 독려했다. 조용하던 응원단 쪽에서 ‘대∼한민국’ 함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함성은 점점 커졌고 일사불란했다. 관중석에서 방송을 하던 어느 진행자는 이 응원 소리에 “소름이다”고 말했다. 전율을 느낀 것이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16강 진출이 좌절될 가능성이 커져 카타르월드컵 마지막 응원이 될지 모를 상황에서 한마음 한목소리로 간절히 외치는 ‘대∼한민국’이었다. 나는 이 응원이 지금까지 봤던 응원 중 최고라고 생각한다. 응원하는 데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내가 보기만 하면 지는 것 같아 아예 경기를 안보기도 했던 나로서는 특히 그렇다.

이 간절함은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손흥민은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진짜 투혼을 발휘했다. 너무나도 멋진 이 말은 분명히 선수들 경기에 큰 영향을 줬다”라고 말했다.

약팀에 지고 있으면 분한 마음이라도 들지만, 강팀에 지고 있을 때는 기가 죽어 응원하는 것조차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직접 그라운드를 뛰었던 선수들의 부담은 더 컸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운동 기계처럼 뛴 것이 아니라, 16강 진출과 관련한 복잡한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담은 채 심리적 압박감을 안고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손흥민의 드리블과 패스, 황희찬의 슛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심한 압박감 속에서 하는 플레이는 마음 편한 상태에서 하는 플레이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응원단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적힌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포르투갈에 2대 1로 역전승한 선수들은 관중석으로 다가가 이 태극기를 건네받은 뒤 그라운드에 섰다. 이때 손흥민이 운 것은 마음이 약하거나 남자답지 못해서가 아니다.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도 혼신을 다하고 안으로 자신을 다지고 다졌던 사람이 흘린 눈물이다. 손흥민은 ‘중꺾마’에 대해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준 정말 멋있는 말”이라며 “국민들도 인생에서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침체된 국내외 경제 상황과 북한의 핵 위협, 극심한 사회 갈등 속에서 곧 새해를 맞는다. 희망보다 두려움, 걱정이 앞서는 새해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고난을 대하는 한 우리의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될 것임을.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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