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광주 아파트 붕괴 1년 뒤

이영미 2022. 12. 27.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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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영상센터장


2022년은 광주의 붕괴 사고가 문을 열었다. 1월 11일 새로 짓던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콘크리트 더미에 휩쓸려 실종된 이들은 예정대로라면 ‘화정아이파크 201동 2602호’쯤으로 불렸을 누군가의 집 안방과 거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고 직전 영상을 보면 걸쭉한 콘크리트가 바닥 중앙부로 쏠리며 거푸집을 늪처럼 빨아들였다. 타일 깔고 창틀 달던 노동자 머리 위로 16개층이 쏟아져 내린 연쇄 붕괴의 시작이었다.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 보고서는 사고 원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①공사 방법을 멋대로 바꿔 하중은 늘었는데 ②아래층 지지대는 철거되고 ③불량 콘크리트는 제대로 굳히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눈발 날리는 날 콘크리트가 타설됐다. 붕괴로 이어진 마지막 버튼이었다. 이후 수사기관은 원청과 하청, 감리를 잇는 총체적 부실을 확인했다. 관계자들은 줄줄이 법정에 섰고, 시공능력평가 기준 국내 9위 대기업도 벼랑에 섰다.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다.

사고 직후만 해도 시공사 현산은 시장에서 당장 퇴출당할 분위기였다. 그럴 만했다. 지난해 6월 9일 현산의 또 다른 시공 현장인 광주 학동에서는 5층짜리 철거 건물이 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정동 사고 불과 7개월 전. 하굣길 고등학생과 엄마 문병 다녀오던 서른 살 딸, 아들 생일상 차리고 가게 나가던 60대 엄마가 그때 그 버스에 탔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우연이 만든 황당한 참사였다. 학동의 충격이 수습되기도 전, 이번에는 화정동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가 났다. 같은 도시, 같은 시공사. 다른 듯 닮은 참사였다.

광주에서는 유족과 시민들이 손잡고 현산 퇴출을 외쳤다. 시장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현산이 관련된 재건축 현장에는 반대 현수막이 줄줄이 내걸렸다. ‘불안하다’ ‘제발 떠나 달라’는 호소부터 ‘살인 시공에 목숨을 못 맡긴다’ 같은 과격한 문구까지 등장했다. 광주에서는 앞선 계약이 해지되고, 현산이 전국 곳곳의 수주전에서 철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리고 1년 뒤. 초반 기세대로 현산은 철퇴를 맞고, 현장은 안전해졌을까. 현산은 건재하다. 퇴출되기는커녕 수주 실적은 지난해보다 늘었다. 여름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시행하는 공공재개발 1호 사업을 수주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제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학동 참사와 관련해 서울시로부터 2건의 영업정지 처분(1년4개월)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실행이 안 됐다. 1건은 과징금 4억여원으로 대체됐고, 다른 1건은 법원에서 집행정지가 결정됐다. 화정동 관련해선 서울시가 비공개 청문을 반복하며 최종 행정처분을 내년으로 미뤄버렸다. 이대로라면 국토부가 요청한 최고 수위 징계도 헛말이 될 터다.

1심 판결이 나온 학동 형사재판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 하청과 감리는 실형을, 원청인 현산 관계자들은 전원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벌금도 현산이 하청보다 낮았다. 1심이 막 시작된 화정동 사건이라고 다를까. 더욱 흥미로운 건 주가 폭락 후 벌어진 일이다. 연이은 참사로 현산과 지주회사 주가가 폭락한 뒤 최대주주 지배력은 되레 높아졌다. 주가 방어를 명분으로 주식 매수를 한 덕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이런 뜻이던가.

건설 현장은 죽음이 흔한 일터다. 정보공개센터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재해사고와 사망자가 많은 상위 7개 기업이 모두 건설사다. 놀라운 결과도 아니다. 건설 현장에 죽음이 흔한 건 목숨값이 싸기 때문이다. 노동자 죽음을 처리하는 비용이 싸다는 말이자,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법적 책임과 사회적 부대비용이 저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건의 광주 참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건 정확히 그런 현실이었다. 대가를 치르게 해야 바뀐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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