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의 재난대응법…훈련하고 교육하라
2014년 남해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해 10대 고교생 250명 등 모두 304명(미수습자 5명 포함)이 희생됐다. 8년 만에 이번에는 서울 이태원에서 20~30세대 젊은이들을 포함해 158명의 생명을 잃었다. 오는 29일이면 두 달째를 맞는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세월호 참사의 아픈 기억을 떠올린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화물을 더 싣기 위해서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는 등 선박 업체의 불법에서 비롯됐지만, 배가 기울어진 뒤 상당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구조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압사당할 것 같다”며 다급하게 112신고를 수차례 했지만, 경찰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경찰이 압사 위험을 오판했을 수도 있겠지만, 재난 대비 시스템이 부실해 피해를 키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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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주민 등 정기적 가상훈련
끝없는 토론으로 최선 대책 찾아
현장 실무자에 재량권 부여해야
」
필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피해자 지원 점검과 직원들과 함께 2016년 6월 미국의 여러 재난 관련 기관을 방문해 재난 대비와 대처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개선 방안을 제시하려 한다.
조지워싱턴대에 설치된 위기·재난 및 위험관리 연구소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는 대량 인명 사고에 대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시신의 신원을 확인할 것인지, 피해자 가족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재난 대응 인력은 어떻게 훈련할 것인지, 자원봉사자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에 대해 쌓인 경험을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이런 앞선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면 좋겠다 싶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위기관리교육원(EMI)도 방문했다. EMI의 교육과 훈련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교육은 입소교육, 영상교육, 재난현장교육 등 여러 형태로 이뤄지고 있었다. 연방과 지방 공무원 및 자원봉사자들이 대상인 입소교육의 경우 교육 참가자들의 거주지와 똑같이 만든 지도 위에 발생 가능한 재난 상황을 설정하고 대비 계획을 만들도록 했다.
참가자들이 긴급상황에 따른 대비책을 그룹별로 계획하고 토론하고 그룹별로 발표함으로써 적절한 대비책을 세웠는지 상호평가 시간을 갖도록 했다. 끊임없이 그룹별 토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나은 대비책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돕는 것이 교육 목적이었다. 이 교육원은 2015년 중국과 라오스에 교관 두 명을 파견하기도 했다. 한국도 갑작스러운 인적 재난에 대비할 역량을 기르는 훈련과 교육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볼티모어 시와 뉴욕시를 방문해 미국 지자체의 재난 대응을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도시의 재난관리과는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다른 기관들과 협력 체계를 준비해 놓고 기관 간 업무를 조정하며, 위기 대비를 위한 훈련과 연습을 해오고 있었다. 365일 24시간 근무 및 전화 응대 체계도 갖췄다. 지역 주민봉사단(CERT)들이 재난 대비를 위해 매월 회의를 열고 분기별로 훈련을 진행하도록 했다. 지자체들은 재난 계획을 수립하고 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일상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사 대처 역량은 갑자기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처럼 미리 훈련하고 교육해야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고 현장에서 구조·구난 등 대응 지휘자는 사고지휘시스템(ICS)에 따른 현장 책임자(IC)다. 지자체는 관련 근무자들이 위기관리교육원을 통해 ICS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었다.
한국도 현장 실무자들에게 더 큰 재량권을 부여해 상부에 보고하는 것과 동시에 현장 실무 지휘자를 중심으로 서로 의논해 신속히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 더 높은 단계의 지원 인력이 오면 지휘권을 넘기는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ICS 원칙은 모든 재난관리 관계자들이 단 한 사람의 감독만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재난 발생 시 상부에 보고하느라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폐해를 막아 줄 것이다.
재난에 대한 대처, 특히 인적 재난에 대한 대처 능력은 한 국가의 기초체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기초체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질 수는 없다. 한국의 재난 대처 능력이 아직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를 크게 향상하는 데 여러 부문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선혜 변호사·전 세월호 특조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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