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도 못했는데” 행정수도 공약, 처음엔 주저했다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13〉 무산된 행정수도 이전과 세종시
세종시는 최초 구상부터 출범까지 3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었다. 나는 두 번의 정부에서 작은 힘을 보탤 기회가 있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와 2000년대 노무현 정부 때다. 어쩌다 보니 세종시라는 도시명을 정하는 데도 관여했다. 이번엔 행정수도 이전 계획과 세종시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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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약 발표 전날 내부 논쟁 벌어져
“웃음거리 안 되겠나” 반문하기도
도시명 선호도 조사 1위는 한울시
총리실에 얘기해 세종시로 확정
」
2002년 9월 무렵이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내가 ‘친정’(기획예산처)으로 복귀해 기획관리실장을 맡은 지 7개월 정도 지났다. 그전에는 김대중 정부의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에서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했다.
노무현 후보 대선 캠프의 이광재 기획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팀장은 이렇게 물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대강 이런 취지로 답한 것 같다. “역대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추진했는데 잘 안 되고 서울 집중화만 심해졌습니다. 이제 와선 다소 과격한 조치라도 하지 않으면 해결이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행정수도 이전으로 정부 기관이 전부 옮겨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균형발전 위해 과격한 조치라도 해야”
그때는 뭐하려고 이런 걸 물어보나 생각했다. 나중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얘기를 듣고 의문이 풀렸다. 그는 2002년 대선 캠프에서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다.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도 맡고 있었다.
노 후보는 그해 9월 30일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족식에서 주요 공약을 정리해 발표했다. 하루 전날 대선 캠프에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신행정수도 공약을 넣느냐, 마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부소장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처음에 노 후보는 신행정수도 공약을 넣는 데 주저했다. 이 부소장이 신행정수도를 포함한 연설문 초안을 보여줬다. 노 후보는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며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독재정권도 못해낸 일을 하겠다면 국민이 믿겠습니까. 지금 형편에서 이걸 내놓으면 웃음거리가 되는 게 아니에요.”
임채정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반대였다. 정동채 후보 비서실장은 말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선 건 이해찬 대선 기획단장이었다. 이 단장은 서울대 캠퍼스까지 옮기자고 해서 이 부소장이 말렸다고 한다.
이 부소장은 노 후보를 이런 논리로 설득했다. 민주당은 그해 3~4월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해 지역별로 돌아가며 대선 후보 선출 투표를 진행했다. 노 후보는 대전지역 경선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개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니 충청권 유권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정식으로 대선 공약에 포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광재 팀장은 1988년 노 후보가 초선 국회의원이던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함께한 최측근이다. 과연 신행정수도 건설이 타당성이 있는지 의견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으로 있을 때 노 후보를 만난 뒤 푹 빠져 있었다. 비밀이 샐 염려가 없으면서 솔직한 의견을 말해줄 사람으로 나를 떠올렸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재익 국장 지시로 비밀 작업 참여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한 건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임시행정수도 구상을 공개적으로 밝힌 건 1977년 2월이었다. 그해 7월에는 특별법까지 공포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비하는 안보적 목적도 중요하게 고려했다. 70년대 중반은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이 잇따라 공산화하며 국제적으로 긴장이 높아지던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경제기획원에 복귀했다. 배치는 경제기획국 투자3과로 받았다. 지역개발·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업무를 맡은 부서였다. 그때 경제기획국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익씨였다. 김 국장은 임시행정수도 설계 작업에도 참여했다. 경제기획원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주요 국가 프로젝트의 수립과 집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던 시절이다.
나는 김 국장의 지시를 받아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비밀 작업반에 들어갔다. 20대 후반의 말단 사무관이던 나는 이른바 잡일 담당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는 “백지계획을 세우라”는 거였다. 흰 종이 위에 도시계획의 세부 아웃라인(개요)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어느 날 내 손에도 임시행정수도의 도시계획을 그린 종이가 들어왔다. 산도 있고 강도 있고 전반적인 도시의 윤곽이 보였다. 지도를 놓고 맞춰봤다. 충남 공주 부근 금강 유역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이 지역으로 가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연차별 투자계획을 세우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전체적으로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이 나오면 연차별·분기별로 금액을 쪼개는 일이었다.
79년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임시행정수도는 없던 일이 됐다. 그 후 김 국장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오래전 중앙일보 기사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김 수석은 전 (임시행정수도) 기획단 관계자들을 불러 헬기를 타고 후보지로 꼽혔던 중부 지역을 여러 차례 둘러보았다는 것이다.”(1991년 11월 1일자 26면) 행정수도 후보지의 하나였던 계룡산 부근으로 3군 사령부를 옮겨 계룡대를 건설하는 데 김 수석이 관여했다는 말도 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유추해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정부와 여당 안에선 의견이 갈렸다. 완전히 포기하느냐, 일반 행정부처라도 옮기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2005년 1월 기획예산처 장관 임명장을 받았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중앙행정부처를 대규모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냈다. 서울은 미국 뉴욕처럼 경제 중심 도시로 놔두고 사실상 행정수도를 따로 만들자고 했다. 대통령실과 국회를 제외한 행정부처 이전은 헌재 결정에 어긋나는 게 아니었다. 그해 3월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번에도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수도 기능 분산으로 비효율성 커져
2006년 12월, 도시 이름을 결정할 시점이 다가왔다. 내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을 때다. 당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사업은 총리실 소관이었다. 김영주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에게서 진행 상황을 전달받았다. 국민공모를 거쳐 도시 이름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고 했다. 한울·금강·세종시였다. 두 차례에 걸쳐 국민선호도 조사를 했는데 한울시가 두 번 다 1위를 했다. 금강시는 2위였고 세종시는 3위에 그쳤다. 다만 금강시와 세종시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때 노 대통령과 나눈 대화는 이랬다. “그냥 세종시로 하면 좋겠는데(노무현).” “그러면 세종시로 추진해 보겠습니다(변양균).” “선호도가 세 번째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노).”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제 생각에도 세종시가 제일 좋아 보입니다(변).”
김영주 실장에게 대통령 뜻을 전했다. 김 실장도 난색을 보였다. 나는 좀 강하게 나갔다. “확정 발표한 것도 아닌데 왜 못 바꾸겠습니까. 공무원 생활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실제로 선호도 조사는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최종 결정은 한명숙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추진위원회 권한이었다. 2006년 12월 21일 행정중심복합도시 추진위는 세종시로 도시명을 확정해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좋아하면서도 약간 뜻밖이라는 반응이었다.
이후 세종시가 정식으로 출범한 건 2012년 7월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선 원안이냐, 대안(행정부처 이전 대신 기업 투자 유치)이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도 많이 들었다. 아직도 일부에선 세종시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있다. 나로선 완전한 행정수도로 건설하지 못한 게 상당히 아쉽다. 수도 기능이 분산하면서 비효율적으로 됐다. 공무원 후배들의 말을 들어보니 상위직과 중하위직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어떤 도시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갈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대담=주정완 논설위원, 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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