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현의 이코노믹스] ‘11명의 메시’로는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없다

2022. 12. 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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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경쟁력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MVP를 받은 아르헨티나 메시가 크게 돋보였다. 메시는 프랑스 구단 소속이지만 조국 아르헨티나 팀을 이끌었다. 우리의 손흥민 선수와 포르투갈 출신 벤투 감독도 그렇지만 우수한 선수와 팀 구성은 국경을 넘는 경험과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가장 우수한 선수를 복제하여 팀을 구성하면 최고의 팀이 될까? 11명의 메시로 이뤄진 팀을 상상해보면 된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만 팀을 채우면 최고의 성과가 나올까? 그런 팀은 유사한 교수진 밑에서 교육받은 사람들, 비슷한 인적 네트워크와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동질적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는 최고의 팀을 만들 수도 없고, 최고의 성과도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보는 소수의 사람이 모두 가질 수 있지만, 복잡한 문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과 정보, 관점이 다른 사람이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조직이 우수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조직 원리이다.

「 동질적 팀 구성은 집단사고 위험성
디지털시대 다양한 관점 융합 중요

다양성 관리 위한 포용적 리더십
조력자 및 코치로서 역할 요구돼

차별방지·준법경영 그치지 말고
윤리경영이란 큰 그림에서 봐야

성상현의 이코노믹스

모 IT 기업에 실 사례가 있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 최고의 명문대 출신 전자공학 박사들로 팀을 구성했다. 또 다른 팀은 전공 분야와 학위, 출신 대학이 다양한 이들로 이뤄졌다. 그 결과 최고의 능력자들로 구성한 팀은 실패했고, 개개인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다양성을 가진 팀이 성공했다. 팀원들의 전공이 달라 다각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했고, 스스로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외부 전문가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으며,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은 자기 확신이 강한 경향이 있다. 게다가 동질적인 팀은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반론 제기자’를 투입하는 등 다른 시각에 대한 ‘경청’을 강조한다. 다른 관점에 귀를 열고, 이의제기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1961년 미국 케네디 정부의 쿠바 피그만침공 결정이나 1986년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는 모두 엘리트 집단의 무오류에 대한 자기 확신과 만장일치에 대한 강박이 증폭시킨 집단사고의 결과라고 한다.

다양성 중시하는 포춘 500대 기업

조직의 힘은 역동성에서 비롯된다.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의 역동성은 구성원이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포용될 때 발휘된다. 다양성은 올바로 관리되지 않으면 갈등과 분열의 온상이 된다. 포춘 500대 기업의 80% 이상이 ‘다양성과 포용’을 핵심가치로 내세우는 이유다. 한국 기업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빠른 추격전략을 통해 성장해 왔다. 구성원들이 주어진 목표를 향해 일치단결하여 신속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요구됐다. 다른 관점과 의견은 접어두는 겸손과 인내를 중시했다. 개인적 특성이나 소수집단이 갖는 차이는 내세우기 힘들었고 눈에 띄지 않았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공동목표를 위해 각자 가진 생각의 차이를 없애거나 덮어두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같은 시기에 채용된 공채 인력들이 입사기수와 연차에 따라 승진하고 동기와 선후배로 이어지면서 수직적 위계질서를 형성하여 일사불란하게 조직목표에 매진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운영돼왔다.

동질성을 중시하는 집단주의적 기업문화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주의 제도와 맞물려 양적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통적 인사 관행 하에서 한국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나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다양성이 갖는 장점을 인식하고 이를 관리할 필요성도 제기되지 않았다. 소수의견이나 소수집단의 입장은 고려하기 힘들었고, 대세와 다른 의견을 내기도 어려웠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도 변화

1997년 말에 닥친 외환위기는 기업의 기존 질서를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구조조정과 대규모 해고 사태 속에서 안정된 평생 직장의 신화는 깨졌고, 기업과 구성원 간 신뢰에 금이 가면서 수직적 집단주의는 수평적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쟁의 심화와 정보통신(IT)기술의 발달 속에서 인사 관행 역시 큰 변화 흐름에 놓이게 됐다. 연공주의가 성과주의로,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로, 안정성 중심에서 유연성 확보 방향으로 변화가 진행됐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대규모 공채와 동일한 입문 교육으로 이뤄지던 고용이 수시 경력 채용으로 바뀌면서 중도·경력 입사자가 증가하고, 공채 중심 순혈주의가 퇴조했다. 이에 따라 산업 경력과 경험적 배경이 다른 인력이 섞여 일하다 보니 학력·지식·스킬·아이디어·관점 등에서 다양성이 한층 높아졌다.

우리 사회 전체로는 경제활동인구 구성의 다양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6년 남녀고용평등법상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실시 이후 500인 이상 사업장 및 공기업·공공기관에서 여성 비율은 30.8%(2006년)에서 37.8%(2021년)로, 여성관리자 비율은 10.2%에서 21.3%로 뛰어올랐다. 장애인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2007년) 시행을 계기로 장애인 고용률도 높아졌다(민간부문 2009년 1.86%→ 21년 2.96%). 외국인 취업자도 2012년 79만명에서 21년 85만명 이상으로 늘었다. 양성평등 정책의 진전, 고령화와 정년연장, 민주화의 진전과 불합리한 차별 철폐 등 법·제도의 변화로 기업 인력의 다양성이 확대됐다.

국내 기업 다양성 관리는 아직 초기

기존 인력에 당연시되던 제도와 관행은 새로 유입된 인력에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수직적 서열구조와 보고 체계, 상명하달식 소통, 연공급제, 경직된 근무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이 꽃을 피우기 위해선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전략과 조직, 제도와 문화, 리더십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은 인력 다양성 확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왔는가. 한국 기업의 다양성 관리 수준은 어떠한가.

다양성 관리의 발전 단계로 보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다양성 확대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실제로는 동질성을 중시하고 있거나, 차별 방지와 형식적 공정성 확보에 주력하는 초기 대응 또는 적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다양성을 기존의 제도와 문화에 동질화시키려 하거나 최소한의 법적 기준을 준수하는 데 머문다. 다양성이 갖는 내재적 가치를 인식하고 다양성 확대 상황에 적응하거나 인력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확대하여 기업 경영에 활용하는 수준의 기업은 아직 드문 실정이다.

최근 삼성전자에서 첫 여성 사장이 배출되는 등 4대 그룹에서도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배경을 불문하고 인재 유치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인력이 자기다움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조직에 기여하고, 차이를 통해 성과를 창출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높은 수준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차별 방지와 공정성 확보를 넘어 인력 다양성을 사업 전개에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나아가 열린 문화를 갖춤으로써 이질적인 인력들이 조직에 통합되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차이를 통해 서로 학습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변화와 혁신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개방형 혁신, 이종 융합, 연결의 활로를 다양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가부장적 리더십 극복해야

다양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아직 집단주의 문화의 온정적·가부장적 리더십에 안주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배경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큰 그림을 함께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이자 코치로서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다양성 관리는 디지털 전환기의 핵심 경영 과제로 전 세계 기업에 동시에 부여됐다. 한국 기업은 시작이 늦은 만큼 더욱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라는 최소한의 준법 경영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경영전략과 윤리경영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다양성을 봐야 한다. 사람밖에 딱히 기댈 자원이 없는 나라이기에 다양성을 포용하는 리더십과 다양성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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