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인간인 듯 아바타인 듯
이달 중순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2009년 선보인 ‘아바타’ 이후 13년 만에 나온 2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개봉이 연기된 기간까지 포함해 13년이 된 것이지만, 어찌 됐건 그사이 배우들이 1편보다 나이를 먹으면 먹었지 세월을 거슬러 젊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데 시고니 위버는 세월을 거스른다. 1편에서 과학자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가 2편에서는 극 중 나이 14세의 새로운 캐릭터를 맡았다. 이 배우가 올해 73세인 걸 고려하면 6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은 셈. 분장이나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좋아졌다고 해도 일반적인 실사 영화라면 상상하기 힘든 캐스팅이다.
이 시리즈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할리우드의 대표적 디지털 ‘덕후’다. 1980년대부터 혁신적인 CG 기술을 활용해 ‘터미네이터’ ‘어비스’ 등 지금도 회자하는 놀라운 장면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인간 배우의 연기로 디지털 캐릭터를 만드는 퍼포먼스 캡처에 대한 구상도 일찌감치 1992년에 쓴 글에 나온다. 시각효과 전문회사 디지털 도메인의 창립을 준비하면서 쓴 ‘디지털 매니페스토(선언문)’라는 글이다. ‘아바타’의 간략한 초고를 처음 쓴 것은 이로부터 4년 뒤의 일이다.
물론 ‘아바타’가 이 방면의 선구자는 아니다. 전 세계 관객이 퍼포먼스 캡처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2001년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반지의 제왕’ 1편, 그중에도 골룸의 활약을 통해서였다. 그 실체는 배우 앤디 서키스가 쫄쫄이 차림으로 얼굴에 잔뜩 점을 찍은 채 연기하는 촬영 현장 모습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뉴질랜드 회사 웨타는 ‘아바타’ 시리즈에서도 시각효과를 맡았는데, 2편은 1편보다 얼굴 표정을 한층 섬세하게 포착하는 강점을 내세운다.
AI가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쓰는 세상이다. 인간 배우의 연기가 고품질 디지털 캐릭터를 실감 나게 구현하는 데 중요한 요소란 점은 뭔가 위안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한데 극장을 나서기 전 의문도 들었다.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본 것을 시고니 위버의 연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낯선 행성 판도라의 바닷속 풍경을 비롯해 시각적 향연을 세 시간 넘게 펼친다. 흔히 ‘관람’보다 ‘체험’이라고 하는 대로다. 그 이미지가 워낙 압도적인 탓인지 시고니 위버의 연기에 대한 실감은 딱히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배우의 변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탓일 수도 있다. 앞서 앤디 서키스도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든 ‘킹콩’으로든 연기상 후보에 올랐단 얘기는 못 들었다. 내년 개봉할 ‘인디아나 존스’ 5편에서는 해리슨 포드가 극 중 수십 년 세월을 오간다는데, 이대로라면 배우의 ‘연기’도 ‘변신’도 새로운 개념 규정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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