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그걸 꼭 다 말로 해야 알아듣니?
수업 중에 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한국어와 같은 고맥락(high contextual) 언어와 독일어와 같은 저맥락(low contextual) 언어의 차이를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고맥락과 저맥락 언어를 개념적으로 나누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두 언어를 들여다보니, 말하는 가운데 드러내어 표현되지 않은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언어와 맥락보다는 문장 안에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차이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1980년대 배웠던 담화지향(discourse oriented) 언어와 문장지향(sentence oriented) 언어로 차이를 두어 설명했다. 꽤나 전문적으로 들리는 용어지만, 펼쳐놓고 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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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어’ 없어도 이해되는 우리말
귀가 아닌 마음으로 헤아려야
무뚝뚝한 속내에 담긴 다정함
」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과 독일 사람의 언어습관에서 흥미로운 비교 관점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예”가 “예”가 아니고 “아니오”가 “아니오”가 아니라는 말을 곧잘 한다. 상대방이 뱉어낸 말 그대로가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행간 속에 감추어진 의중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독일 사람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문장에서 모두 드러낸다. 그러니 심중을 헤아려 행간에 숨은 의도를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고맥락 언어에서는 이처럼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맥락 속에 녹아있는 진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천재인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아’로 말해도 ‘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심성을 가져야 한다. 왜 심성인지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헤아려 듣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듣게 되는 ‘주어 없음’은 한국어의 고맥락 특성을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 말에서는 ‘사랑해’에서 보듯이 주어나 목적어가 곧잘 생략된다. 그러나 이런 생략도 아무 때나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조건은 말하는 맥락 속에서 언제든 그 생략된 성분을 다시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아무거나 함부로 생략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말에서는 주어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쓰임새다.
한 예로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 선고는 보통 “○○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로 시작해서 “주문, 피고인 ○○을 징역 ○년에 처한다”로 맺음을 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우 그 판결 주체가 명시적으로 거론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누가 (본 법원 혹은 법관) 이러한 판결을 내리는지. 그래서 이러한 판결문의 주체가 되는 주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주어 없음’은 주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 법정의 선고는 ‘주어 없음’으로 그 효력에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 소위 말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M)Z세대에도 고맥락 언어라는 말이 통할까. 그들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흡입하는 모든 정보 단위들은 맥락적 배경에 대한 이해나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번 새겨듣고 마음으로 헤아려야 하는 이중, 삼중의 이해 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듣고 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문명을 비판하는 많은 지식인은 디지털 문명 안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표면적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탄식한다. 니컬러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이를 처리하는 속성은 바다의 그 깊은 심연을 모르는 채 오로지 서핑하듯 표면만을 훑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글을 대하는 태도는 ‘읽는’다라기보다 ‘본’다는 것에 더 가깝다.
예전 아버지들은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한 존재로 군림하셨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겉으로 잘 표현을 못 하셔서 평생 ‘사랑한다’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본 적 없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겉은 저러셔도 속은 그러신 분이 아니야”라며 그 쑥스러움에 담긴 속내에 뭉클해진다.
거대하게만 보이는 아버지의 등과 어깨가 그 인생을 감싸고 있는 맥락을 함께 이해한다면, 어쩐지 굽고 쓸쓸해 보이는 무게감과 다 내비치지 못하는 다정함을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모습은 아니었을까. 어느 시인이 말한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처럼 쓸쓸하고 버거워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멋쩍은 어색함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두셨던 다정한 한마디를 자식 된 내가 들려드리고 싶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최명원 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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