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5년 화성에 태극기 꽂을 것”…시작엔 선산 내준 이 있었다

최경호 2022. 12. 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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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조상들의 선산까지 옮겨가며 만든 우주기지가 세계 최고가 되기만을 빕니다.”

전남 고흥군에 사는 노문성(73)씨가 지난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20여 년 전 나로우주센터 건립 때 고향을 떠난 하반마을 주민 중 한 명이다. 이주 당시 마을 이장이던 그는 고흥이 우주발사체 산업 클러스터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 피눈물로 만들어진 우주기지 가치를 이제야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21일 제22회 국가우주위원회를 열고 국내 3곳을 우주산업 클러스터로 지정했다. 고흥을 중심으로 한 전남은 발사체, 경남은 위성, 대전은 연구·인재개발 특화지구로 만든다.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 우리 손으로 만든 착륙선을 화성에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번 우주산업 클러스터 지정 과정을 남다른 감정으로 지켜본 이들이 있다. 오랜 삶의 터전을 나로우주센터 부지로 내준 실향민들이다. 2002년부터 마을을 떠난 이들은 나로호·누리호 발사가 성공할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선산까지 옮겨가며 고향을 내줬다는 마음에 발사 성공에 대한 애착도 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는 모습. [뉴시스]

옛 하반마을은 남해의 절경과 울창한 소나무가 그림처럼 자리했던 곳이다. 마을 자리에는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이 세워져 나로호·누리호 발사 성공을 이끌었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하반분교 자리에는 로켓 종합조립동이 들어섰다. 주민 100여 명이 살던 보금자리가 한국의 우주시대를 이끈 밑바탕이 됐다.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은 인근 고흥 외에도 서울·부산 등 전국으로 흩어져 살아왔다. 2009년 6월 11일 나로우주센터 준공식 때 초대받은 것을 빼곤 고향인 하반마을로 가지 못했다. 이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2010년 세워진 망향비를 찾아 실향의 아픔을 달래왔다. 노씨는 “마을을 떠나온 뒤 전국 곳곳을 떠돌며 고생을 한 주민이 많다”며 “우리 삶의 터전에 세운 우주기지가 전 세계를 주름잡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주민들은 이번 우주산업 클러스터 지정에도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정부가 2031년까지 발사체 클러스터에만 1조6084억 원을 투입키로 해서다. 나로우주센터 인근에는 국비 3800억 원을 들여 172만9174㎡(약 52만평) 규모의 ‘우주발사체 국가산업단지’를 짓는다.

고흥은 국내 유일 나로우주센터가 있어 발사체 클러스터의 최적지로 꼽혀왔다. 나로호(2013년 1월)와 누리호(2022년 6월)의 성공 발사를 일군 우주산업 요람이기도 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민간 발사장을 확충할 여건이 빼어난 것도 강점이다. 정부는 민간 기업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해 2030년까지 3500억 원을 들여 민간발사장과 연소시험장·조립동 등을 구축한다.

전남 외나로도에 있는 국내 유일의 우주센터인 나로우주센터 위치도. 중앙포토

정부는 이번 우주 클러스터 지정을 전후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밝혀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광복 100주년인)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후인 2032년 달 착륙에 이어 화성에 우리 손으로 착륙선을 보내겠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대한민국은 5년 안에 달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발사체 엔진을 개발하고, 2032년에는 달에 착륙해 자원 채굴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5년 내 우주개발 예산을 두 배로 늘리고, 2045년까지 100조 원 이상의 투자를 끌어낸다는 복안도 내놨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신설한다. 우주경제 강국을 위한 우주항공정책을 수립하고 연구개발과 기술확보를 주도할 기관이다. 2030년까지 1조4223억 원을 투입해 초소형위성체계 개발에도 나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45년 우주경제 글로벌 강국 실현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전남도와 고흥군은 우주발사체 클러스터가 조성되면 2031년까지 10개 이상 발사체 앵커 기업 유치로 2조666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1조1380억 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와 2만785명의 고용유발효과 등도 기대된다. 공영민 고흥군수는 “이번 발사체 클러스터 지정을 통해 10년 후 인구 10만 명 이상이 될 수 있는 우주산업 거점 지자체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고흥으로선 지난 10월 ‘차세대 발사체 개발사업’이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것도 호재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4차례에 걸쳐 누리호 발사를 한 후 차세대발사체를 개발해 2030년부터 3차례 발사한다. 차세대발사체는 정부 주도로 개발됐던 나로호·누리호와는 달리 민간기업이 설계부터 제작·조립·설계·발사 등 전 단계에 참여한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우주발사체 클러스터는 우주경제 강국을 실현하기 위한 기틀이 될 것”이라며 “경남과 함께 남해안 남중권에 초광역 우주산업 벨트를 조성하는 등 3개 특화지구 간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우주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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