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이승기·츄도 당했다…K엔터 후진적 행태 더 무서운 이유 [임명묵이 고발한다]
요새 내가 가장 열심히 탐구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K-팝이다. 단순한 분석을 넘어 K-팝이 이루고 있는 문화 생태계 자체의 매력에 푹 빠져 살고 있다. 특히 주요 걸그룹의 신곡은 나오자마자, 아니 그 이전에 언제 공개된다는 공지가 뜨자마자 친구들과 빠르게 공유하고 관련 주제로 계속 토론을 한다. 이전에는 눈길도 안 주던 연예 뉴스도 자연스레 자주 챙겨본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고백하자면 과거의 나는 K-팝 팬덤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기는커녕 사회적 아노미 현상의 일종으로 보았다. 자극적으로 나오는 관련 뉴스도, 그 기사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안 되었다. K-팝에 ‘귀의’한 지금은 정반대다. 이제는 내가 연예 뉴스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고, 이젠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중이다.
그래서 연말 연예계를 달군 가수 이승기와 걸그룹 이달의 소녀 멤버 츄의 정산 이슈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승기 사례부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의 소속사인 후크엔터테인먼트(이하 후크)가 누가 봐도 톱의 위치인 그를 "마이너스 가수"로 지칭하면서 정산해줄 게 없다고 주장해 무려 18년 동안이나 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미지급된 정산금은 후크 셈법으로도 수십억에 이르렀다. 여론이 악화하고 경영진의 횡령 의혹까지 불거지자 후크 측은 부랴부랴 정산금을 지급했지만, 이승기 측은 애초 돈이 문제가 아닌 만큼 이 돈은 전액 기부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달의 소녀츄를 둘러싼 논란은 조금 더 복잡하다. 소속사였던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이하 블록베리)는츄가 이달의 소녀 활동을 하며 소속사 직원들에게 한 ‘갑질과 폭언’을 사유로 츄를 퇴출했다. 아이돌 멤버가 소속사와 이런저런 갈등 끝에 나가는 경우조차 표면적으로는 쌍방간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온 게 지금까지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속사가 일방적으로 ‘퇴출’을 통보하는 건 워낙 이례적이라 비단 이달의 소녀 팬이 아니라도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츄의 퇴출은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오래된 갈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양측의 폭로전이 시작되면서 이달의 소녀 계약 구조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났다. 수익은 회사와 아티스트(가수)가 7:3으로 나누는데, 비용은 5:5로 나누는 구조였다. 이달의 소녀가 음반·음원 판매나 광고 수익 등 꽤 좋은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멤버들이 활동해온 만큼 정산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얘기다. 문제가 불거지자 회사 측은 이달의 소녀 데뷔를 위한 프로젝트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을 감안해 멤버들이 모두 동의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달의 소녀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걸그룹이 인기를 얻어 수년간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정산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걸 과연 처음에 알고 사인을 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멤버들보다 예능 등 개인 활동을 더 많이 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은 츄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끝에 결국 전속 계약 해지 소송에서 승소했고 곧바로 퇴출당했다. 이러니 츄의 갑질과 폭언이 퇴출 사유라는 소속사 주장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츄의 퇴출 후 나머지 멤버 11명의 계약과 정산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거의 시차 없이 불거진 두 아티스트의 정산 문제는 우위를 점한 소속사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아티스트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K-팝은 이제 늦어도 20살 전후면 데뷔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0대 초중반의 어린 나이에 수년에 걸친 연습생 생활을 거치다 보니 연습생 본인이나 부모 모두 당장 데뷔가 급하다. 계약을 충분히 검토할 심리적 여유나 지식 없이 불공정한 계약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들은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오랜 금언을 꺼낼지 모른다. 실제로 문제는 일단락되어가고 있고, 두 아티스트 모두 뛰어난 매력이 있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인기를 구가하며 지금까지 못 번 돈을 단숨에 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설령 그렇다 해서 그동안 받은 부당한 처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이 일반 대중에게 더 충격적으로 다가간 것은 이들이 힘없는 무명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한 성공한 연예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빠르게 우호적 여론을 만들고, 소송을 결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 정도의 힘을 지니지 못한 아티스트는 공정하지 못한 계약 탓에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소속사와 마찰을 빚으며 제대로 된 권리를 요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치열한 경쟁이 일상이고 주어진 시간은 짧은 연예계에서 소속사와의 갈등은 자칫 연예계 생명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
소속사의 부조리한 행태, 그로 인한 아티스트의 갈등은 사실 익숙한 이야기다. 지난 2001년 MBC가 연예계 부조리를 폭로하면서 이른바 ‘노예계약’이라는 봉건적 관행 등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새로운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씩 발전과 개선이 이뤄졌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 수준이 올라간 데다 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대형화하고 글로벌화한 게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이슈에서도 여론이 아티스트에 우호적으로 형성된 것 역시 우리 사회가 공정과 보상에 있어 높은 기준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게 됐듯이 여전히 미흡한 게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이 연예계에 아직 남아 있는 불공정한 관행을 혁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침 국회에서도 소속사가 아티스트에 회계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개하여 투명성을 제고하는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달의 소녀의 경우도 ‘비용을 5:5로 한다'는 연예계 전반의 표준에서 상당히 벗어난 계약 내용 자체도 문제였지만, 과연 회사 측의 비용 지출 내역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도 관건이다. 이 부분을 신뢰할 수 없으니 츄도 전속 계약 해지 소송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흔히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나은 이유로 급여도 급여지만 ‘절차’와 ‘투명성’이 낫다는 이야기가 많다. 당연하게도 대기업이라고 절차를 다 지키는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이라고 절차를 다 뭉게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런 인식은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 투명한 정보 공개를 많은 이들이 갈망한다는 것만큼은 드러낸다. K-팝을 비롯한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세계적이 되었으니 그에 맞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니다. 세계적이 됐든 아니든 많은 사람이 납득할 수 있게 합리적 절차와 투명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른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자체적인 정화 노력 이외에 대중의 감시가 꼭 필요하다.
임명묵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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