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사랑 앞에 선 유연석과 문가영

전혜진 2022. 12.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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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선 두 세계. <사랑의 이해> 유연석과 문가영의 온기로 피워낸 어떤 사랑.
「 문가영 」
유연석이 입은 재킷과 셔츠는 모두 Kimseoryong. 문가영이 입은 튜브 톱 드레스는 Loewe.

Q : 개인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느껴지는 문가영의 얼굴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어떤 인상을 지녔다고 생각하나요? 가장 좋아하는 내 얼굴은

A : 순간 포착으로 드러나는 낯선 얼굴은 항상 흥미로워요. 화보 촬영이 즐거운 이유죠. 제일 익숙하고 좋아하는 얼굴은 혼자 있을 때 나오는 무표정한 얼굴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보면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 묻곤 하는데 제일 저다운 것 같아서요.

Q : 어떤 생각을 할 때 나오는 얼굴인가요

A : 별생각 안 해요. 차로 이동할 때 창밖의 구름을 가만히 보다가, 구름이 뭘 닮은 것 같다는 생각으로 넘어가는 식이죠. 간판이랑 차 번호 같은 것도 읽고요. 공상을 즐기거든요.

Q : 〈사랑의 이해〉의 안수영은 겉으로는 밝고 상냥하지만 실은 삶과 사랑에 냉소적인 인물이죠

A : 수영이는 내면에서 많은 것이 일어나는 친구예요. 그 점에서 저와 비슷하고요. 이제까지 감정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분출하는 인물을 연기해 왔기에 처음엔 너무 표정이 없는 건 아닌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걱정했어요. 그런 모습이 새롭다는 현장의 반응을 믿고 연기했죠.

카디건은 Kimseoryong. 팬츠는 Loewe.

Q : 은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현실적인 멜로 이야기인데, 작품의 어떤 점에 이끌렸나요

A : 일단 대본이 너무 좋았어요. 대본이 좋을 땐 설레는 마음으로 엄마나 지인들에게 보여주는데, 다들 이 작품을 반기더라고요.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가영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Q : 배역에 잔뜩 몰입한 상태인가요

A : 일과 사생활의 ‘온오프’가 확실한 편이라 잘 빠져나오는 편이에요. 차분하고 정적인 역할에 몰두하다가도 퇴근길에 들은 음악 한 곡에 원래의 문가영으로 돌아가죠.

Q :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A : 목을 잘 안 가다듬었다는 것(웃음)? 그만큼 자연스럽게, 현장감을 살려 연기하고 싶었어요. 스스로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면서 촬영했죠. 감정이 안 나오면 기다리고, 다시 내뱉고 싶은 대사가 있으면 여러 번 반복하면서요. 그래서 더 사실적인 표현이 나온 것 같아요.

니트는 Stella McCartney. 데님 스커트는 Alexanderwang. 슈즈는 Moon Boot by Boontheshop.

Q : 은행이라는 배경에서 느껴지는 현장감도 있었을 것 같고요

A : 맞아요! 첫 대본 리딩 날, 대본 옆에 각자의 사원증 사진이 붙은 은행 업무 설명서가 놓여 있었던 게 생각나요. 6개월 넘게 촬영하다 보니 책상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나는 것도 재미있었죠. 저 같은 경우도 도장과 스테이플러가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웃음).

Q : 이혁진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 소설은 어떻게 감상했나요? 다독가인 당신이 원작을 활용하는 방식도 궁금합니다

A : 원작은 독서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한 번 정도 읽는 편이에요. 중요한 사건과 큰 흐름만 머릿속에 남기고 이후에는 대본에 집중하죠. 소설 〈사랑의 이해〉를 재미있게 읽은 분들이라면 드라마에서는 과연 어느 지점을 엔딩으로 정했을지 굉장히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증폭되는데 그런 점이 연기하는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죠.

Q :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안수영과 하상수의 관계가 어떻게 느껴졌나요

A : 걱정도 많고, 머뭇거리느라 계속해서 타이밍을 놓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솔직히 제3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실제로 사랑할 때 경험하게 되는 온갖 적나라한 감정을 낱낱이 마주하는 건 껄끄러운 일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솔직한 묘사야말로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 생각해요.

Q : 하상수 역할을 맡은 유연석 배우와는 첫만남이죠. 가까이서 본 상대의 매력은

A : 굉장히 섬세한 ‘젠틀 가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웃음). 정말 편하게 소통하며 연기한 것 같아요. 항상 꼼꼼하게 현장을 살피는 모습을 보며 배운 것도 있고요. 또 오빠가 같은 대사도 매번 조금씩 다르게 내뱉는 스타일이라 저도 반응을 다르게 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도 즐거웠어요. 제가 애드리브를 좋아하거든요.

문가영이 입은 니트는 Stella McCartney. 유연석이 입은 카디건은 Kimseoryong.

Q : 금새록, 정가람 배우와의 호흡도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A : 새록 언니는 이번에 맡은 박미경이란 인물처럼 실제로도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가람 오빠도 처음엔 낯을 가리더니 완전 수다쟁이더라고요(웃음)! 다만 제 역할이 차분하다 보니 두 사람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낼 수 없어 아쉬웠어요. 특히 경찰공무원 고시생인 정종현 역할의 가람 오빠와는 너무 가슴 아픈 장면으로만 마주했거든요.

Q : 당신의 삶에서 사랑은 얼마나 중요한가요? 혼자만의 시간도 꽤 즐기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A : 아무리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낸다 해도 결국 저는 사랑으로 움직여요. 왠지 모르게 힘이 안 나는 것 같을 때, 돌아보면 마음 쏟을 대상이 없어서 그렇더라고요. 한동안 엄마가 보내준 맛있는 사과즙을 먹을 생각에 매일 아침 설레면서 기상한 것처럼 뭔가에 애정을 쏟는 것만으로 삶에 활력이 돌죠.

Q :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A : 제일 중요한 것은 의지라고 생각해요. 이 관계를 지키고 싶은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가 사랑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 같아요.

Q : 그럼 타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요

A :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어릴 땐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굳게 믿었는데, 이젠 진심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끼리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어주기 때문에, 때론 이해하는 척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고맙고 소중한 거죠.

니트는 Fendi. 팬츠는 Zegna.

Q : 아역 시절부터 흔들림 없이 커리어를 쌓아온 것 같은데 〈그 남자의 기억법〉을 ‘자존감이 낮은 시기에 만나 반갑고 고마웠던 작품’이라 말한 걸 보고 놀랐어요. 지금까지 연기 인생에서 가장 크게 흔들렸던 순간은

A : 2019년에 〈으라차차 와이키키 2〉를 찍고 나서 ‘다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어요. 휴식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작 나에 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무기력해지더라고요. 그런 시기에 〈그 남자의 기억법〉을 만났는데 촬영현장이 너무 즐거운 거예요. 사랑을 듬뿍 받았던 현장이라 자존감도 높아졌고요. 여하진을 연기하면서 밝고 사랑스러운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죠.

Q : 어느덧 16년째 연기해 오고 있어요. 돌아봤을 때 가장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인물을 꼽는다면

A : 〈여신강림〉의 주경이요. 만화적인 연출과 판타지 요소가 섞인 작품이라 어느 선까지 몰입해야 할지 확신이 없었어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대사나 설정을 내 입맛에 맞게 조금씩 바꿔서 연기했죠. 주경이에게 공감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뿌듯했어요.

Q : 〈그 남자의 기억법〉 〈여신강림〉 등 특히 로맨스 장르에서 보여준 존재감이 대단합니다. 문가영의 로맨스 연기가 지닌 특별한 점은

A : 상대 배우와의 진실된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런 점이 좋은 ‘케미’를 이끌어내는 것 같아요. 촬영장은 물론 대본 리딩 시간과 리허설 현장에서도 상대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죠. 화면에서 다 보이니까요. 친밀한 관계에서는 귤 하나를 내밀 때도 다르거든요. 던져서 주거나, 한 발짝 가까이 가서 건네거나. 친해질수록 연기에 다양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Q :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당신은 스스로를 잘 채우는 사람 같아요. 그만큼 정리하고 비우는 일에도 마음을 쏟는 편인지

A : 최근까지는 채우면서도 조급했던 것 같아요. 삶의 템포도 빨랐죠. 뭐든 치밀하게 계획하는 성향이 있다 보니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땐 괴롭더라고요. 그러면서 멈춰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시간을 정체기가 아닌, 스스로를 잘 보듬으며 다음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여기면서요.

Q : 요즘 당신을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A : ‘이완의 순간’. 요즘따라 이상하게 자주 되뇌는 말이에요. 지난해부터 쉼 없이 달려오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소소한 이완의 순간들이 주는 행복을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돼요. 맛있는 차 한잔을 마실 때, 좋아하는 노래를 집중해서 들을 때, 퇴근길에 완벽한 노을과 맞닥뜨렸을 때 느껴지는 설렘이 정말 크더라고요.

Q : 확 꽂히는 표현인데요(웃음). 문가영의 첫 에세이 제목으로도 좋겠어요

A : 저 대신 써먹으세요(웃음). 저는 당분간 그런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에 만족하겠습니다.

유연석이 입은 니트는 Le17septembre. 문가영이 입은 니트는 Bottega Veneta.
「 유연석 」
유연석이 입은 재킷은 Coor. 팬츠는 Recto. 슈즈는 Camper. 문가영이 입은 니트 드레스는 Courrèges by 10 Corso Como Seoul. 슈즈는 Moon Boot by Boontheshop.

Q : 유연석의 멜로를 손꼽아 기다린 사람이 정말 많은 거 아나요? 제목에 ‘사랑’이란 단어가 단단히 자리한 〈사랑의 이해〉라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요했군요

A : 문득 순수하게 사랑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극적이거나 다른 장르적 요소에 기대지 않은, 사랑의 감정 그 자체에 집중한 작품이 근래 많지 않았던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시대가 가로막거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랑보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에 더 끌렸어요.

Q : 〈응답하라 1994〉의 칠봉이는 그리운 90년대를 배경으로 풋풋하고 안타까운 짝사랑을 했고,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는 일제 치하에서 목숨을 건 사랑을 했죠. “매 작품은 도전”이라고 말해 온 당신에게 이제 동시대의 ‘흔한 사랑’이 도전이 된 건가요

A : 흔하지만 여태 그려보지 않은 사랑 이야기라 그런 걸까요. 〈강철비2: 정상회담〉 〈수리남〉 같은 작품들이 스스로도 몰랐던 낯선 얼굴을 찾아가는 도전이었다면 〈사랑의 이해〉는 제 나이에 오롯이 고민하고 느낄 만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Q : 극중 네 남녀는 처한 현실과 이해관계가 극명히 달라요. 자신을 작아지게 만드는 상대를 동경하거나, 우쭐하게 만드는 상대를 연민하는 등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보여주죠

A : 네 사람 모두 현실적인 말과 행동을 해요. 각자 상황과 입장에서 충분히 내뱉을 만한 것들이죠. 시청자도 이들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대입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공감은 되겠지만, 그 방식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예요. 그 아이러니에서 사랑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나올 것 같아요.

Q : 그중 당신이 연기한 은행원 하상수는 이름처럼 늘 삶의 일정값을 유지하려는 남자예요. 유연석은 어떤가요

A : 변수와 상수라는 숫자적 개념으로 얘기해 본다면, 글쎄요. 일할 땐 변수를 주거나 예상되지 않는 값을 입력하려 한다면, 일상의 유연석은 상수처럼 뭐든 일정하게 유지해요. 작품이 끝나면 원래 좋아했던 일을 실컷 하면서 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을 갖고요. 그래야 또 다른 변수와 자신 있게 마주할 수 있거든요.

Q : 〈종합병원2〉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의학 드라마에서 자주 본 탓인지 흰 가운을 입은 모습이 익숙해요. 멀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은행원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은행이란 공간은 어땠나요

A : 돈을 세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에는 분명 묘한 구석이 있어요. 타이틀 제목에서 ‘이해’라는 표현은 단순히 ‘깨닫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득과 실을 따지는 ‘이해’로도 읽힐 수 있죠. 의사일 땐 병원에서 실습하고 수술실에도 들어가보았는데, 이번엔 ‘창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기 위해 은행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직원들이 고객을 대하는 모습을 관찰했어요.

슬리브리스 톱과 데님 팬츠는 모두 Loewe. 베스트는 Chloé.

Q : 상수는 ‘마음을 꺼내면 안 됐던 상대에게 마음을 줘버린 사고’를 치죠. 극중 상수의 변수가 되는 수영을 연기한 문가영에게는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A : ‘해피 바이러스’라는 말을 실감했달까요(웃음). 익사이팅 스포츠를 즐기는 의외의 면도 있고요. 작품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모니터 화면으로 본 어떤 신에서 우리는 서로 닮은 얼굴로 보이기도 해요.

Q : 극중 인물처럼 주변 상황이나 타이밍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마음이 흔들린 적 있나요

A : 30대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면 항상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연이 다가와도 직업적 특성상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고려하거나 배려해야 할 것이 많았나 봐요.

Q : 금새록, 정가람 등 후배 배우들과 함께하는 현장이기도 하죠

A : 서열은 제가 꼴찌입니다. 저어 아래죠(웃음). 선배로서 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이나 책임감이 들지 않을 만큼, 나이와 경력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호흡이 좋았어요.

Q : 유튜브에서 인상적인 댓글을 봤어요. 당신의 멜로 연기 클립에 ‘유연석이 그리는 사랑은 늘 설레고 마음을 울렸는데’라는 문장. 읽는 순간 문득 이 남자는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연기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A : 이번 작품을 찍으면서 저도 사랑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해 보려 했는데, 결론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거였어요. 어릴 때와 30대의 끝자락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확연히 다르고요. 알면 알수록, 하면 할수록 더 모호해지는 거죠.

Q : 그런 모호함 속에서도 사랑은 우리를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요

A : 풍요로울 수도 있겠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도 있죠. 그럼에도 그 모든 걸 감내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Q :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멜로 인생작을 떠올려보면

A : 전도연 · 황정민 선배의 〈너는 내 운명〉을 군대에서 봤어요. 당시 저도 아픈 사랑을 하고 있었거든요. 영화 후반부에 교도소 면회 신 있잖아요? 제약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에 공감하며 오열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Q :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신원호 PD는 “유연석의 스위트한 면모, 다정다감함, 아이를 좋아하는 면모가 소아외과 안정원 교수와 찰떡일 것 같았다”며 당신의 실제 성격이 특정 신에서 장점이 된 걸 얘기한 적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가 발휘될까요

A : 그때는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런 표정이나 눈빛이 자연스럽게 나왔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평범한 사람을 표현하지만 미묘한 감정의 엇갈림이 얼굴에 드러나야 해서 더 어렵죠. 그간 멜로 장르에서 보여드린 익숙한 얼굴은 물론, 복잡미묘한 상황으로 더해진 낯선 표정까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유연석이 입은 셔츠와 수트 세트업은 모두 Kimseoryong. 슈즈는 Camper. 문가영이 입은 드레스는 Loewe. 슈즈는 Bottega Veneta. 네크리스는 Chaumet.

Q : 〈올드보이〉로 데뷔해서 그런지 신인 때는 악역 이미지가 강했어요. 실제로 나쁜 면모들은 얼마큼 내재돼 있나요(웃음)

A : 제 안에 잠재된 일부분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 실마리로부터 〈수리남〉의 데이빗 박 같은 캐릭터를 찾아나가는 것일 수도, 분출하고 싶지만 참아둔 감정을 작품에서 대신 표출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Q : 최근 〈출장 십오야2〉에서는 K팝 아티스트 후배들과도 능청스럽게 어우러지더군요. 원래부터 ‘인싸’인가요

A : 어릴 땐 함께 작업하는 사람 모두 저에 관한 좋은 기억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종의 강박처럼요. 하지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애쓰다 보면 상처받을 때가 더러 있더라고요. 지금은 상처받으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주의예요. 그냥 즐기는 거죠(웃음).

Q : 타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A : 생각을 환기하며 그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 보면 이해될 때가 많아요.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전에는 그마저도 애써 이해하려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내려놓고 바라보게 돼요.

Q :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A : 반려견 리타. 촬영할 땐 학교에 보내는데, 노는 모습이 담긴 알림장을 받으면 힘이 솟아요. 또 요즘 촬영장에 조그마한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동료들을 찍는 일도요. 틈틈이 가영이랑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선물하기도 했어요. 오늘도 좀 찍었네요.

Q : 그러잖아도 분명 〈엘르〉가 준비한 소품이 아닌데, 촬영장 한쪽에 놓인 ‘똑딱이’ 카메라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A : 전에는 자주 찍었는데 최근 다시 시작하니 좋더라고요. 필름 사진을 촬영하고 인화해서 배우들이나 스태프에게 나눠주는 일에 조금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Q : 팬들에게도 참 다정한 배우죠. 작품뿐 아니라 유튜브 ‘주말연석극’이나 〈슬기로운 산촌생활〉 같은 예능 프로그램, 심지어 ‘프라이빗 메시지’도 열심히 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A : 꼭 작품으로 배우를 만날 필요는 없죠. 형태나 방식이야 어떻든 스스로를 포장해 놓고 기다리지 않아도 팬이나 대중은 그 사람의 진면모를 알아보는 것 같아요. 물론 자신을 드러내는 데 겁도 나고 망설여지지만, 그럼에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보여주고 싶어요.

Q : 요즘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 고민이 있다면

A : 뭔가 특별한 대답을 내놓고 싶지만, 사실 자기 전에는 작품 생각만 나요(웃음). 시청자들이 어떻게 보실지, 오늘 찍은 장면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내가 잘했는지 고민하다 잠들죠.

Q : 어느덧 데뷔 20년 차예요. 캐릭터나 다양한 이미지를 이해하고, 창조해 내는 일은 즐겁지만 굉장히 지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매번 새로운 인물에 다가서는 일이 여전히 설레나요

A :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늘 설렘과 두려움이 반복돼요.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가 좋으면 또 탄력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죠. 그래서 배우라는 일이 재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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