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목소리에 재산권 생긴다…상속 뒤에도 30년 존속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이름·사진·목소리·유행어 등도 재산으로 인정하고, 이를 영리적으로 무단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인격표지영리권(퍼블리시티권)’ 도입에 법무부가 첫 발을 뗐다. 26일 법무부는 민법 제3조의3에 퍼블리시티권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로 연예인을 대상으로 판례로만 종종 인정되던 퍼블리시티권이 민법에 명문화되는 건 처음이다. 기존 초상권보다 개인을 나타내는 인격표지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어서 침해될 경우 손해배상액도 커질 수 있다.
개정안은 누구나 자신의 성명·초상·음성 등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갖고, 타인이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스포츠 경기 중계 때 관중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는 경우 등 정당한 이익이 인정될 때에는 허락 없이도 인격표지를 이용할 수 있다.
법무부는 “유튜버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며 “유명해진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에 시동을 건 것은 1995년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관련한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의 ‘이휘소 결정’ 이후 27년 만이다. 고(故) 이휘소 박사는 미국에서 미립자 분야 이론물리학을 연구한 인물이지만, 소설에서 핵무기 생산 및 한국 반입을 한 인물로 그려져 유가족이 책 제작·판매금지 등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었다. 당시 법원은 “소설의 경우 예외적으로 독창성, 신규성 갖는 사상 및 감정도 보호받을 여지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퍼블리시티권은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은 탓에 연예인들도 이를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배우 민효린(36·정은란)은 ‘민효린의 인형 같은 코는 타고나야만 하는 걸까요. 연예인 부럽지 않은 명품 코를 만들어 드립니다’라며 사진과 이름을 무단으로 광고에 활용한 한 성형외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014년 5월 2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의 의미, 범위, 한계가 명확히 정해졌다고 볼 수 없고, 연예인 사진과 이름으로 사람을 유인했다는 사정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인격표지가 명문화된 만큼, 향후 이 같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향방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기존 초상권 침해 소송에서는 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했다면, 이제는 재산적 손해도 인정돼 배상액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또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된 후에야 손해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보고 구제 수단도 마련했다.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되면 이를 제거하도록 청구하거나 필요하면 예방도 청구할 수 있는 ‘침해제거·예방 청구권’도 개정안에 담았다. 또 영리권자가 사망해도 퍼블리시티권은 상속되며 그 기간이 30년인 점도 명확히 했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향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국회 의결을 거쳐야 정식 법률이 된다”고 말했다. 해당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내년 2월6일까지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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