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패싸움 두고만 볼 것인가 [소셜 코리아]

하네스 모슬러 2022. 12. 2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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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코리아] 다음 총선은 위성정당 차단하는 진짜 비례대표제로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하네스 모슬러]

 지난 3월 2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사회분야 방송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고 있는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옆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지나가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한국 정치는 원래 선량하고 예쁜 것이 아니었지만, 올해 내내 목격한 광경은 명실상부한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 그 자체였다. 주지하듯이 이 광기는 단기적으로 봤을 때 올해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대선을 앞두고는 두 거대 정당이 대선후보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당내 진흙탕 싸움이 붙었고, 두 후보가 출마한 다음에는 양당 간의 진흙탕 정쟁이 벌어졌다.

경쟁이 워낙 뜨거워서 대선후보를 뽑는 기준은 국민들이 가장 선호할 만한 인사가 아니라 상대방에 맞서서 확실하게 이겨낼 수 있는 소위 '힘센 놈'인지 여부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대선은 일차적으로 양당 간 패싸움에 불과했다. 국민들의 선택권은 두 거대 정당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으니, 누가 후보가 되든 어차피 표를 던져주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거운동 내내 양쪽 정당들은 상대 후보를 비방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국민들은 다시 한번 최악과 차악 중 선택을 강요받아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으로 기록됐다. 2021년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 묘서동처(猫鼠同處)는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잘 표현한다. 즉, '길고양이와 들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 것'이다.

역대 대선 중 가장 적은 표 차로 당락이 갈린 20대 대선은 끝났지만 악몽은 계속됐다. 치열한 패싸움이 멈출 줄 모르고 오히려 점차 심해졌다. 야당은 반드시 대통령과 여당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무리수를 두곤 했고, 여권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정치보복을 방불케 한 전 정부 망신주기와 지우기에 전념했다. 그 결과는 파괴적 적폐청산 소용돌이의 반복이었다.

<교수신문>에서는 이런 공방을 포함한 한 해의 난리를 두고 '잘못하고도 안 고친다'는 과이불개(過而不改)라는 고상한(?) 사자성어로 문제의 일부를 비판했지만 실상은 더 심각하다. '염치없는 최악의 무책임 임무유기 정치'라고 표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담합정치 병폐 수술할 때 
 
 2019년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표결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장석으로 향하는 통로를 막고 문희상 국회의장을 향해 '민주주의는 죽었다, 독재가 시작되었다'라고 적힌 피켓을 던지는 등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러면 정치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후안무치한 행패를 부리는가?

국회를 독점한 담합정치형 정당 체제가 상당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평소에는 여야 거대 양당이 서로 몰살하려는 듯이 격하게 부딪치지만, 제3자(신생정당)로부터 잠재적 도전을 받을 것 같으면 갑자기 돌변하여 서로 뭉쳐서 공범이 된다.

2019년에 선거법을 개악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군소정당인 정의당 소속 심상정 의원이 비교적 발전된 선거법 개정안을 겨우 발의했다. 그러나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1차 사보타주로 그나마 25%(75석)로 늘린 비례대표 몫을 다시 원점인 15%(47석)로 되돌렸고, 이 중 겨우 30석만 지역구 의석에 연동시켰다. 이런 최소한의 개선조차 거부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2차 사보타주로 비례대표제를 우회하기 위해 가짜정당을  출현시켰다.

하다못해 더불어민주당도 위장정당을 만들어 두 당 사이에는 다시 한번 바닥치기 경쟁이 벌어짐으로써 개혁의 마지막 일부조차도 와해시켜 버렸다. 개혁의 초토화에 대한 책임 공방은 두 거대 정당이 공개적으로 서로 탓하는 희극으로 상연됐는데, 속으로는 자기들만의 정당 카르텔을 지켰음을 서로 축하했을 만했다.

이런 민주주의와 국민을 무시한 오랜 담합정치의 병폐가 도를 넘은 지 오래됐고, 이제는 더 수술을 미루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왜곡된 개정으로 퇴보한 선거법은 기로에 서 있다. 후퇴해서도 안 되고 이대로 진행되어도 안 된다. 돌파구는 확고하고 획기적인 진정한 선거법 개혁이어야 한다. 위성정당을 확실히 차단하는 진정한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안성맞춤의 해결책이다.

300석인 의원 정수를 유지하되 연동된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의석 비율을 적어도 2:1 수준으로 해야 비례대표제의 효과가 나타난다.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수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득표율과 실질 대표율 간의 비례성을 높여야 국민의 의사가 더 정확하게 반영되고 그 결과도 더 공정해진다.

군소정당과 신생정당의 원내 진출을 수월하게 함으로써 정당 다원주의를 촉진하고, 또 이로써 사회의 다양한 집단이나 지역의 이해관계를 보다 잘 대표할 수 있다. 아울러 다당제가 형성되면 연립정부 등 타협과 협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유인구조가 조성되고, 이로써 양당 기득권 구조의 해체를 비롯한 각종 권력 분산 효과가 나타난다.

지역구는 중선거구에서 다수 대표를 선발하고, 비례대표는 권역별로 득표율에 따라 선발하는 방식을 적용하면 사표도 줄이고 지역주의도 감소시키는 일석이조의 상승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물론 5% 이상의 득표율이나 지역구 의석 3석 이상의 확보가 의석 할당의 전제조건인 기존 문턱 조항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정당 난립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대신 풀뿌리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당 설립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지구당을 합법화해야 한다. 헌법 제8조에 의하면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내에 진출하는 다양한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기존과 달리 정당 득표율에 비례하여 국고보조금을 배분하는 공정한 할당 방식이 요구된다.

76년 전에 이미 도입 논의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된 뒤 본회의가 끝난 뒤 본회의장 문이 닫히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론이나 회의론은 있을 수 있지만, 학계와 시민사회 전문가 대개는 확장된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동의한다. 여론조사들을 보면 국민들 다수도 대체로 찬성하는 편이다.

실은 한국에서 비례대표제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무려 76년 전인 1946년 10월 12일 미군정에서 창설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의원들이 나중에 제헌의회 의원 선거법의 원형이 된 선거법을 심의했는데, 그때 비례대표제를 비롯한 여러 대안을 깊이 있게 검토했다. 결국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기는 했지만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당시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것은 대체로 국민들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이해가 미숙했고 정당정치는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치 선동에 의한 오도와 정당 난립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을 우려한 것이다.

비례대표제라는 개념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속기록뿐만 아니라, 이후 제헌의회 의원 선거법을 최종 제정한 UN 한국위원회의 기록에도 나온다. 비록 시기상조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비례대표제가 진지한 대안으로 검토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김붕준 의원이 선거법안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여하튼 비례대표제를 장래에 기대"한다는 희망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 '장래'가 된 7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크게 울리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현재 한국에서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특히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시의적절을 넘어 시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된다. 이번 정치개혁만큼은 생선가게를 전적으로 여의도 길고양이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개정 과정을 감시하고 부적절한 정치공학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언론, 시민사회와 주권이 있는 국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 이 글은 모두 필자가 한글로 작성했으며 편집자가 약간의 교정·교열만 했음을 밝힙니다.
 
 하네스 모슬러 /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하네스 모슬러
 
필자소개 : 이 글을 쓴 하네스 모슬러는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University of Duisburg-Essen) 정치학과와 동아시아연구소(IN-EAST) 교수이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입니다. 관심 분야는 한국정치와 사회이고 최근의 연구주제는 선거제도, 개헌, 기억의 정치, 시민교육, 포퓰리즘 등입니다. 최근 저서로는 <Politics of Memory in Korea>(편저), <South Korea's Democracy Challenge>(편저), <The Quality of Democracy in Korea>(공편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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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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