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변제' 피해자 반발에 외교부 "아직 정해진 바 없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26일 "최근 정부로부터 한국 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변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통보 받았다"고 밝힌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사실과 다르며 해결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일본 기업들의 재원 참여와 사과 등 "성의 있는 조치"를 일본 측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이날 일본 도쿄 외무성에서 국장급 협의를 가졌다. 서 국장은 협의를 마친 후 기자단에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면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피고 기업의) 사과와 기여 등 일본 측의 호응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후 강제징용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단과 지원단체는 서울과 광주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주 외교부 측으로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한 안을 청취했다"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의 기부로 재원을 마련해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변제한다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피해자 측은 이 방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며 "미쓰비시중공업이나 일본제철과 같은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나 출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 다른 기업들의 출연조차 없는, 말 그대로 일본을 면책시켜주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한국 기업에게 기부 받은 재원만으로 배상한다는) 방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가 해법을 발표하면 일본 측에서도 성의 있는 호응 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일본 기업의 재원 참여와 사과, 두 가지 모두를 두고 일본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고 기업 참여 두고 협의 난항
한·일 양국은 그동안 논의를 통해 행정안전부 산하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한·일 기업 등 민간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재원을 조성해 배상 소송의 피고인 일본 기업 대신 원고(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와 재원 조성 참여 등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징용 배상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일본은 피고 기업이 재원 조성에 참여할 경우 사실상의 대법원 판결 이행이 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동안 피해자 측은 일본 피고 기업의 직접 배상이 아니라 제3자가 판결을 대신 이행하는 방식을 취하더라도 이를 위한 재원 조성에는 피고 기업이 참여해야 하고, 일본 기업 또는 정부의 사죄 또한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분들과 계속 소통하겠다"며 "정부안을 발표한 다음에 정부가 어떻게 노력해왔고 부족하지만 이런 정도의 해법이 나왔다는 것을 원고와 소송대리인 한 분 한 분께 설명해드리면서 이해와 동의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들에 대한 변제를 대신 수행하기 위한 정관 변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정부가 구상하는 해법이 사실상 윤곽을 갖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재단은 정관 내 '목적사업'에 '일제 국외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 및 변제'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바꾸고 있다.
재단 측은 정관 변경이 외교부의 요청에 따른 것은 아니며, 재단이 대법원의 배상 확정 판결 이행 주체로 유력하게 거론됨에 따라 사전 준비를 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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