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해봤습니다, 정치개혁은 투표제를 바꿔야합니다

김가영 2022. 12.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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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투표제로 바꾸자①] 선거구제로는 안 돼... 선호투표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

[김가영 기자]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6월 1일 서울 성북구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별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7일 북아일랜드의 좌파 민족주의 기반 정당인 신페인(Sinn Fein)이 사상 처음으로 총선에 승리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아일랜드에도 기반을 둔 신페인은 2020년 아일랜드 총선에서도 역사적인 첫 총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신페인은 아일랜드의 독립 투쟁에 영국 정부군과 유혈투쟁을 한 IRA에 뿌리를 둔 정치조직으로, 1970년 이래로 매우 낮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 군소정당이었다. 아일랜드의 '새로운 시대'를 도래하게 한 신페인의 지지율 급상승은 '선호투표제'라는 독특한 선거제도가 있기에 가능했다.

최근 중대선거구제 개혁 관련한 논의는 빠르게 물살을 타고 있으나, 과거 정의당에 몸담아 출마해 본 필자가 느끼기에는 이미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지역에서 집권을 실패한 바 있어, 선거구제 개혁으로는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국회나 의회를 구성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관련 기사: "다른 여성들에도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고 싶다" http://omn.kr/21f0k ). 이에 선호투표제를 소개하려 한다.

선호투표제에 주목해야 할 이유... 선호투표제가 뭔가요

선호투표제는 여러 후보들 중 유권자가 지지하는 단 한 명의 후보에게만 기표하는 단순다수제와는 달리, 모든 후보에 자신의 선호도 순위를 매겨 이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순위선택투표제라고도 불린다. 각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 순서대로 등수를 매기게 되고 기표 결과는 후보별 1순위 합산 결과를 기준으로 가장 낮은 득표 후보가 탈락하며, 탈락한 후보의 표에 적힌 2순위 선호도에 따라 각 후보별로 표가 분산되어 누적된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여 과반을 받은, 즉 절반을 넘은 후보가 등장하거나,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선호투표제에서는 1차에 1순위를 많이 받은 후보가 최종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다. 또 원칙적으로 모든 후보에게 선호도가 매겨진 표만 유효표로 인정된다. 일부 후보에 선호도를 매기지 않거나, 중복 선호 표기를 하면 무효로 판정된다. 채택한 선출단위에 따라 n차까지만 개표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호주 외에도 아일랜드, 뉴질랜드, 메인 등 미국 일부 주에서 선호투표제가 시행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지방선거 선거제 개혁과 다당제 정치개혁 촉구’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결과적으로 선호투표제 방식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행사한 정치적 의사가 사표가 되는 일이 없다. 나의 1위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나의 2위 또는 3순위 후보자가 최종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번 할 결선투표제를 한 방에 끝내는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선거를 여러 번 함으로써 생기는 유권자의 피로도 증가, 결선이 정치적 중요도가 높음에도 오히려 유권자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등 결선투표제가 갖는 단점이 선호투표제 시행으로 해결될 수 있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 하의 모든 선거제도가 그렇듯이 선호투표제에도 단점이 있다. 전체 후보의 선호도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유권자에게는 복잡할 수 있으며, 일부 상위 선호 후보 외에는 선호도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출구조사 시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개표 기간이 상당히 길고 그에 따라 선거 비용이 증가하는 측면도 있다.

왜 선호투표제여야 하나?

그럼에도 선호투표제는 소선구제 선거의 맹점인 흑색선전과 사표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선호투표제에서는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상대에게 부정적인 흠집을 내는 선거 운동을 펼치는 경우가 적다. 전체 유권자로부터 비호감도가 올라가 차순위를 얻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타도어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극좌나 극우의 스탠스로 흑색선전을 펼치는 후보도 있을 수 있으나, 당선권을 목표로 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유의미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선호투표제는 '만인의 2등'을 당선시킨다는 비아냥도 받는다. 그러나 상대 후보보다 단 한 표만이라도 더 받고자 비방으로 점철되는 단순다수제 방식보다는, 훨씬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선거를 치를 수 있다.

무엇보다 선호투표제는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나도 빠짐없이 반영하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단순다수제보다 민주적이다. 단순다수제 선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표를 막을 방법이 없으며, 그 결과가 양당제 공고화와 정쟁과 정치의 극단화, 군소정당의 정치적 지위 약화를 갈수록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대선이나 총선 과정에서 거대 양당의 후보가 받은 득표율의 차이값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이제 그 반대상황은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에는 이 '사표심리'의 심각성이 크게 차지한다.

단순다수제는 양극화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다자 대결에서 엉뚱한 이가 당선되는 콩도르세의 패자 당선이나, 반대로 양자 대결에서 모두를 이길 후보가 다자 구도에서 낙선하는 콩도르세 승자의 낙선이 생긴다는 것도 문제이다. 한국은 이미 87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라는 체제 변화를 힘겹게 얻어냈음에도 그 결과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아닌, 콩도르세 패자였던 노태우의 당선이라는 역설적인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다시 아일랜드의 신페인 사례로 돌아오자. 사표가 없는 선호투표제의 장점이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던 소수 좌파정당의 집권을 이끌어낸 기반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아일랜드는 독립 과정 이후 피어나 팔(Fianna Fail)과 피너 게일(Fine Gael)이라는 중도 우파 성향의 거대 양당이 줄곧 역사적으로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책, 이념적 태도에 차이가 없는 두 정당 사이에서 신페인이나 노동당과 같은 소수정당이 소선구제 체제 하에서 여론의 관심만으로 명맥을 잇기는 너무나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신페인의 자구적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국과의 관계에 있어 기존의 배타적이던 태도(과거 신페인은 아일랜드 독립 무장투쟁 조직에 뿌리를 두었기에, 영국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의회에 참여하지 않고자 당선된 후보가 의회에 출석하지 않는 결석주의absentionism를 고집했다-기자 주)에서 벗어나 실리적 기조를 새롭게 정립했고, 양당이 다루지 않았던 주택난 해결, 수도세 인상 반대 등 민생 의제에 천착했다.

이러한 신페인의 노력은, 서로 차별화되지 않는 양당 사이에서 제3의 대안을 찾던 국민의 관심을 얻는 데 유효했다. 그러나 사표 심리가 작동하는 소선구제에서는 신페인이 아무리 노력했다한들 집권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권자의 의사를 100% 반영하고 다당제 민주주의를 이끌 수 있는 선호투표제의 장점은 호주에서도 확인된다. 호주는 1948년 선호투표제의 한 종류인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single transferable proportional voting)를 채택함으로써 민주노동당, 호주민주연합, 녹색당 등 소규모 정당이 대거 상원에 진입하는 쾌거를 낳았다.

특히 대규모 산불 등 기후재난을 겪었던 호주 퀸즐랜드 지역에서 녹색당이 점차 의석수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만약 단순다수제 선거제였다면 결코 일어나기 힘든 결과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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