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명품코' 광고에 운 민효린…이젠 이길 방법 생긴다?

허정원 2022. 12. 2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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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이름·사진·목소리·유행어 등도 재산으로 인정하고, 이를 영리적으로 무단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인격표지영리권(퍼블리시티권)’ 도입에 법무부가 발을 뗐다. 26일 법무부는 민법 제3조의3에 퍼블리시티권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로 연예인을 대상으로 판례로만 종종 인정되던 퍼블리시티권이 민법에 명문화되는 건 처음이다. 기존에 보호되던 초상권보다 개인을 나타내는 인격표지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어서 침해될 경우 손해배상액도 커질 수 있다.


‘이휘소 판결’ 27년만에 입법예고


이휘소 박사(1935~1977)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이론물리학자로 20세기 후반 입자물리학에서 '자발적으로 대칭성이 깨진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맵시 쿼크의 질량을 예측하는 등 물리학에 공헌했다. [미국 페르미 국립 가속기 연구소]

개정안의 내용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명·초상·음성 등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갖고, 타인이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만 스포츠 경기 중계 때 관중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는 경우 등 정당한 이익이 인정될 때에는 허락 없이도 인격표지를 이용할 수 있다.

법무부는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며 “유명해진 인격표지를 영리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에 시동을 건 것은 1995년 김진명 작가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관련한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의 ‘이휘소 결정’ 이후 27년 만이다. 고(故) 이휘소 박사는 미국에서 미립자 분야 이론물리학을 연구한 인물이지만, 소설에서 핵무기 생산 및 한국 반입을 한 인물로 그려져 유가족이 책 제작·판매금지 등을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었다. 당시 법원은 “소설의 스토리와 같은 경우 예외적으로 독창성, 신규성 갖는 사상 및 감정도 보호받을 여지가 있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개인의 인격권보다는 창작의 자유에 무게를 둔 결정이었다.


연예인들도 인정받기 어려웠던 권리


배우 민효린은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이용해 무단 광고한 한 성형외과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퍼블리시티권을 인정받지 못해 2014년 5월 패소했다. [민효린 인스타그램 캡처]

퍼블리시티권은 법에 명문화돼 있지 않은 탓에 연예인들도 이를 인정받기 쉽지 않았다. 배우 민효린(36·정은란)은 ‘민효린의 인형 같은 코는 타고나야만 하는 걸까요. 연예인 부럽지 않은 명품 코를 만들어 드립니다’라며 사진과 이름을 무단으로 광고에 활용한 한 성형외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014년 5월 2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퍼블리시티권의 의미, 범위, 한계가 아직 명확히 정해졌다고 볼 수 없고, 연예인 사진과 이름으로 사람을 유인했다는 사정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가수 겸 배우 유이(34·김유진) 역시 한 한의원이 부분 비만 치료 프로그램을 홍보하면서 사진·이름 등을 이용, ‘멋진 유이의 꿀벅지로 거듭나세요’라고 홍보하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5년 3월 2심에서 패소했다.


“인격표지 침해, 손해배상액 커질 수도”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인격표지영리권(퍼블리시티권) 신설을 위한 민법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개정안은 사람의 성명·초상·음성 등 개인의 특징을 나타내는 요소들을 '인격표지영리권'으로 규정해 이를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를 법에 명시했다. [연합뉴스]

인격표지가 명문화된 만큼, 향후 이 같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향방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일반인 낚시 유튜버의 콘텐트를 본 낚시용품점 주인이 해당 유튜버의 이름이나 얼굴, 유행어 등을 상품 마케팅에 이용한 경우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기존 초상권 침해 소송에서는 주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했다면, 이제는 재산적 손해도 인정돼 배상액이 더 올라갈 여지가 있다”며 “유명세가 권리 침해 요건이 아닌 만큼, 일반인이라도 창의적으로 (퍼블리시티권을) 행사하고 장시간에 걸쳐 판례가 쌓여야 개념이 보다 명확·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 역시 “퍼블리시티권이 명문화됐다 해서 바로 어느 범위까지 명확히 보장된다고 확언하기는 힘들다”며 “다만 그간 판례나 부정경제방지법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 인정되던 개인의 권리가 민법에 반영되면서, 전보다 보편적 권리로 확대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또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된 후에야 소송을 통해 손해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보고 구제 수단도 마련했다.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되면 이를 제거하도록 청구하거나 필요하면 예방도 청구할 수 있는 ‘침해제거·예방 청구권’도 개정안에 담았다. 또 영리권자가 사망해도 퍼블리시티권은 상속되며 그 기간이 30년인 점도 명확히 했다.

다만 법무부 관계자는 “입법예고는 전문가와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로, 정부 입법의 초안이 나온 셈”이라며 “향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국회 의결을 거쳐야 정식 법률이 된다”고 말했다. 해당 민법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내년 2월6일까지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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