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에 고립된 한국인 여행객 9명…‘삽’ 대신 ‘집’ 내어준 美 부부

눈보라에 고립됐던 한국인 여행객 9명과 운전사 1명이 24일(현지시간) 알렉산더 캠파냐 부부의 집에서 이들과 함께 와인잔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알렉산더 캠파냐 페이스북 캡처.

미국 뉴욕주 버펄로에서 평생을 살아온 알렉산더 캠파냐(40)씨와 그의 아내는 ‘폭탄 사이클론’이 온다는 소식에 집에서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계획이었다.

뜻밖의 손님을 만난 건 지난 23일 오후 2시. 최요셉(27)씨 등 한국인 여행객 2명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던 중 눈이 빠르게 쌓이면서 도로가 마비됐고 승합차가 눈에 파묻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며 삽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알렉산더 부부가 내어준 건 삽이 아닌 집이었다. 눈 폭풍의 위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파냐 부부는 순식간에 한국인 여행객 9명과 운전사 1명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25일(현지시간) 폭탄 사이클론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미 뉴욕주에서 눈보라에 갇힌 한국인 관광객들이 따뜻한 미국인 부부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성탄절 연휴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캠파냐 부부는 손님 10명을 위해 소파·침낭·에어 매트리스를 내어줬고, 침실이 3개인 집은 금세 북적북적해졌다. 여행객들이 놀란 건 부엌을 둘러봤을 때였다. 한식을 좋아하는 부부의 부엌에는 김치와 전기밥솥은 물론 맛술과 간장, 고추장, 참기름, 고춧가루가 있었다. 요리를 잘하는 여행객 한 명이 제육볶음과 닭볶음탕 등을 만들었고, 캠파냐 부부와 10명의 손님은 미국 프로풋볼팀 버펄로 빌스가 시카고 베어스를 꺾는 모습을 함께 시청하며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우연히 문을 두드린 집에서 최고의 환대를 받은 최씨는 NYT에 “운명 같았다”며 “이들 부부는 내가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캠파냐씨도 “예상치 못한 손님 덕분에 정말 즐거웠다. 독특한 축복이었고 우리는 이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말했다. 또 한국 방문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성탄절인 25일 눈보라가 잦아들고 도로 제설작업이 이뤄지면서 여행객들은 이들을 태우러 온 차를 타고 뉴욕시로 떠났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새해맞이를 하기로 한 최씨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관광객은 이번 주 귀국할 예정이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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