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여기" 헤세의 극찬받은 여행지
[김종성 기자]
▲ 뷔르크부르크 시내 |
ⓒ 김종성 |
바꿔 말하면, 월요일은 일정을 짜기 쉬운 날이다. 맘편히 늦잠을 자도 되고, 느긋하게 공원을 산책하거나 쇼핑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욕심 많은, 열정적인 여행자 입장에서 휴식은 달갑지 않다. 하루 일정을 '죽이고' 쉰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번에는 여유있게 여행을 하자'라고 다짐하지만, 정작 여행지에 도착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공백의 시간을 용납하지 못한다. '여행을 와서 쉰다고? 그럴 거면 집에 있지 뭐하러 비싼 비행기를 타고 유럽까지 와?'
월요일, 과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번 여행 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다. 금(프랑크푸르트), 토(뒤셀도르프), 일(쾰른)까지 일정을 짜고,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며 갈 만한 여행지를 물색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1. 거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거리에 있을 것, 2. 월요일에도 즐길 만한 콘텐츠가 있을 것. 그러다 '뷔르츠부르크'를 발견했다. 유레카!
▲ 뷔르츠부르크 시내 |
ⓒ 김종성 |
이곳이라면 오래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싶다." (헤르만 헤세)
11월 28일 뷔르츠부르크 행 ICE에 몸을 실었다. 인구 12만 6112명(2020년 추계)의 작은 도시 뷔르츠부르크는 프랑크푸르트나 뒤셀도르프, 쾰른과 같은 대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중앙역의 규모는 소박했고, 그 앞으로 펼쳐진 거리(Bahnhofstraße)의 풍경은 차분했다. 레지덴츠 궁전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 문제는 15분 만에 주파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뷔르츠부르크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곳이라, 여행객이 드물어서 본연의 모습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쾰른이나 뒤셀도르프는 관광지에 가깝다보니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시끌벅적해 정신사나웠기에 뷔르츠부르크의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월요일에도 휴식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에도 마음 속에 평온이 깃들었던 건 그 때문이었으리라.
▲ 레지덴츠 궁전 |
ⓒ 김종성 |
시어터 스트라세(Theaterstraße)로 접어들자, 눈앞에 레지덴츠 궁전의 모습이 들어왔다. 'ㄷ'자 형태의 궁전의 앞마당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외관은 절제미가 돋부였다.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갖춘 단정한 궁전이었다. 이곳은 마리엔베르크 요새에 살던 주교가 지낼 궁전으로 쓰기 위해 지어졌다. 1720년에 착공해 1744년 완성됐다.
베르사유 궁전에 비해 덜 화려할 뿐, 레지덴츠 궁전에도 방이 300여 개가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그 중에는 금장이 되어 있는 방도 있어 강렬한 금빛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예술가가 참여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폴레옹은 레지덴츠 궁전을 둘러보고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궁전'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 레지덴츠 궁전의 정원 |
ⓒ 김종성 |
뷔르츠부르크 레지던츠에도 정원이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면적의 베르사유 궁전에 비하면 '코딱지' 정도이지만, 조용히 사색에 잠겨 거닐기에 딱 좋은 크기라 마음에 들었다. 겨울이라 알록달록한 꽃은 없었지만, 중앙의 소박한 크기의 프랑코이나 분수를 중심으로 예쁘게 조경된 나무와 푸릇한 잔디들이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봄이나 여름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처음 세운 일정을 변경한 이유
궁전을 둘러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미리 찾아뒀던 맛집 'Bürgerspital-Weinstuben'로 발걸음을 옮겼다. 뷔르츠부르크는 좁은 동네라 도보로 5분이면 충분했다. 입구부터 근사했던 'Bürgerspital-Weinstuben'는 구글 별점 4.5점(2,038)의 믿음직한 식당인데, 내부는 흰색 벽에 은은한 조명, 고급스러운 내부 인테리어가 훌륭했다.
▲ Burgerspital-Weinstuben에서 먹었던 티본 스테이크 |
ⓒ 김종성 |
티본 스테이크와 슈니첼을 주문했다. 직원은 프로페셔널했고 상냥했다. 비용에 친절도 포함되어 있는 걸까. 프랑스를 여행했을 때는 식당에서 '인종차별'이라 할 만한 불쾌한 경험을 종종 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일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 당시 카타르 월드컵 조 예선에서 일본이 독일을 상대로 2:1 역전승을 거둬 살짝 걱정을 했지만,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으나(실제로 인터넷에서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다는 글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발끈할 일이 없어 다행스럽다고 생각했다. 분위기와 친절에 비해 음식의 맛은 조금 아쉬웠다. 야심차게 주문했던 티본 스테이크는 각 부위마다 굽는 정도가 달라 실망스러웠다. 그냥 먹기 힘들어 직원에게 후추 소스를 부탁해야 했다. 슈니첼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 알테 마인교 |
ⓒ 김종성 |
멀찌감치 마리엔베르크 요새가 보이고, 마인 강의 풍경들이 운치있게 펼쳐진다. 다리 양쪽으로는 주교, 성자를 모델로 한 12개의 석상들이 있는데, 프라하의 카를 교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마리엔베르크 요새까지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났지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 계획을 수정했다. 대신 뷰가 좋은 식당('Caféhaus Brückenbäck')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애초의 계획은 뷔르츠부르크-밤베르크-뉘른베르크를 둘러보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뷔르츠부르크와 밤베르크가 '소도시' 정도의 크기였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 기차를 마음껏 탈 수 있는 유레일 패스(원컨트리 패스)를 보유하고 있기도 했기에 여러 도시를 이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뷔르츠부르크 시내 |
ⓒ 김종성 |
뷔르츠부르크는 '로맨틱 가도'가 시작되는 기점으로도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로파버스를 타고) 출발해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거쳐 퓌센까지 이어지는 코스(오전 9시 출발, 오후 7시 출발)이다. 퓌센은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유명하다.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한데, 겨울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많은 도시를 한번에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눈에 담고 있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그래도 역시 한 도시에 조금 더 시간을 배분해 머무는 게 낫지 않을까. 만약 애초의 계획대로 오전에 뷔르츠부르크를 잠깐 보고, 다른 곳으로 곧장 이동했다면 뷔르크부르크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을 것이고, 이도저도 아닌 여행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일정 중에 '애매한' 월요일이 있었기에 갈 수 있었던 곳,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의심'스러웠던 곳, 하지만 이제 월요일이 되면 낭만적인 분위로 은은하게 빛났던 뷔르츠부르크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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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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