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에게 미안하다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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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 기자]
오늘 미루고 미뤄왔던 왼쪽 윗부분 어금니 두 개를 발치했다. 몇 달 전 의사 선생님의 발치 진단 결과를 통보받고도 한동안 고민을 해 왔다. 몸은 안 좋으면 어느 정도 치료해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만 치아는 기능이 상실되면 재생이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잇몸에 인공뼈를 이식하는 이차적인 방법으로 치아의 수명을 좀 더 늘려 갈 수는 있지만 치아 상태에 따라 치료가 가능하지 못한 부분은 발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붓고 잇몸 주위에 고름이 가득 차 더 이상 음식물을 씹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미련스럽게도 며칠 밤을 통증에 시달려 오면서도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행동을 계속해왔다. 한번 뽑힌 치아는 영원히 소생할 수 없다는 강한 애착이 이유이다.
날이 거듭될수록 더 이상 고통을 견디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통의 강도 때문일까, 발치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확고해졌다. 치과에 예약 전화를 했다. 전화를 응대하는 리셉션은 한 주 이상 예약이 밀려 있다고 난감해한다. 오늘을 참아낼 자신이 없어 발치 결정을 내렸는데, 한 주 동안 고통을 더 가지고 가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손님 잠시만요."
리셉션이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는 듯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다.
"손님 그럼 오늘 12시 반에 시간 어떠세요."
의사 선생님의 점심시간을 쪼개어 대기 예약 스케줄에 넣어주겠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치과 예약을 힘겹게 했다는 말에 아내가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치아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그동안 양치질도 게을리한 주인의 행동 때문이라고요."
아내의 말이 맞다. 저녁 식사 후에도 피곤함을 핑계로 그냥 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더 나이 들어 치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고 게으름을 질타했다.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치아를 관리했다면 아직까지도 건치로 남아 있을 텐데 주인의 게으름에 발치라는 운명을 가지고 최후의 순간까지 가게 되었다.
예전에도 어금니 하나를 발치한 적이 있다. 발치 전 치과를 몇 군데 내원하면서 치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발품을 판 결과 치과 한 곳에서 긍정적인 방법을 내놓았다. 인공잇몸뼈를 이식하면 십 년 이상은 무리 없이 치아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히 찰나에 뽑혀버릴 뻔한 치아를 살린 예전의 경험이다. 그때는 한 살이라도 젊었고 치아를 소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접근했다. 지금은 그때의 상황과는 다르다. 치아의 소생보다는 발치라는 결과에 승복할 나이가 된 것이다.
발치를 끝내고 의사 선생님은 잇몸에 상당 부분 고름을 제거하셨다. 며칠 동안의 고통만큼 고름의 양도 반비례했다. 최종적인 치료가 끝나고 두 개의 치아가 뽑혀 나간 자리에 봉합수술을 하고 피가 지혈될 수 있도록 봉합 부위에 두툼한 솜을 핀셋으로 밀어 넣었다.
입 안에 솜을 꽉 물고 두 시간 이상은 있어야 지혈이 된다고 한다. 데스크에서 처방전과 함께 환자가 지켜야 할 수칙을 설명해 주었다. 술담배는 삼가고 특히 음주는 되도록이면 이주일 정도는 삼가라는 환자 수칙을 설명해 주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어떤 부위든 관계없이 대부분 술 담배를 금기하는 것이 환자 수칙 중 단골 메뉴이다. 더구나 발치된 부분을 봉합해 놓았기 때문에 음주는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주범이다.
식탁에는 팥죽이 놓여 있다. 아내가 씹기 불편할 것을 미리 알고 치과 치료 하는 동안 팥죽을 점심으로 준비해 놓았다. 죽을 먹으면서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많아졌다. 현재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심리적 식탐이 생겨난 것 같다.
또 죽이 밥처럼 포만감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민들 사이에는 오복(五福)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치아의 건강이다. 치아가 재기능을 하지 못하니 먹는 즐거움까지 앗아가 버렸다.
연말연시 모임이 늘어가고 있다. 모임의 성격상 술을 마셔야 할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모임에 가서 술까지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모임 자리가 어색하고 지루함까지 생겨난다. 물론 애주가의 입장이기 때문인 이유도 크다. 식탁 한쪽에는 항상 양주가 한 병 올려져 있다. 장식품이 아니다. 저녁시간 반주로 한두 잔 하는 습관이 베여 있으니 애주가가 맞을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술은 그림에 떡으로 변신했다. 몸에서 기능하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그동안 손과 눈, 발 그리고 치아 이 모든 것들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당연한 존재감처럼 받아들였다.
세상의 행복은 부일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다. 모든 것들은 그 자체의 존재가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 안에 좀 더 월등한 존재감을 가지고 존재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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