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성범죄'의 맨얼굴을 공개합니다
[백채원, 박소향 기자]
'고도 산업화' '정보화'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은 이용자에 편리성·효율성 등 이점을 선사했지만, 이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6월, 인공지능(AI) 발전의 이면에 차별·감시·인권침해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회가 관련 육성법을 만들 때 인권 보호 규정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 표명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기술인 가상 공간 '메타버스'는 코로나 팬데믹 속 비대면 사회의 장기화로 더욱 인기를 끌었다. 특히 국내 사업자인 네이버제트의 '제페토'는 2020년 출시 이후 2022년 기준 가입자 수 3억 명을 돌파하며 메타버스의 유명세를 몸소 증명했다. 또 메타버스 게임 '로블록스' 역시 꺾이지 않는 상승세를 보인다. 메타버스는 현재 플랫폼 경향의 대세다.
▲ 국내외 주요 메타버스 플랫폼 분기별 평균 월 이용자 수 추이를 나타낸 자료이다. |
ⓒ 출처 data.ai / 박소향 정리 |
메타버스도 성적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특히 로블록스, 제페토 등 메타버스 플랫폼의 주 이용층이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졌다. 가상 캐릭터로 소통하는 메타버스의 특성상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에 비해 처벌과 보호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 메타버스 앱 연령별 설치비중을 나타낸 자료이다. |
ⓒ 출처 Dighty / 정리 박소향 |
디지털 성범죄, 취재진도 당했다
취재진은 직접 메타버스 안으로 들어가 가상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실태를 확인해봤다. 첫 번째로 접속한 메타버스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3억 명이 넘는 아시아 최대 플랫폼 '제페토'다.
▲ 취재진이 접속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한 유저가 기자에게 "사귀자"고 말하고 있다. |
ⓒ 백채원 |
두 번째로 접속한 메타버스는 '로블록스'였다. 제페토보다 이용률이 높은 만큼 성범죄의 수위 또한 심각했다. 취재진은 제페토에 접속한 캐릭터와 똑같은 성별과 나이를 적용해 아바타를 제작했다.
▲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남성 아바타가 여성 아바타를 욕실에 가두고 괴롭히자 다른 유저가 이를 제지했다, |
ⓒ 백채원 |
이용자로부터 제지당한 남성 아바타는 곧 취재진의 아바타로 시선을 돌렸다. 취재진은 가까이 와보라는 남성의 말을 따라 욕실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남성 아바타는 취재진의 아바타를 만지기 시작했다. 특정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성적인 발언을 내뱉었고, 취재진의 아바타 뒤로 움직이며 마치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서 가까이 와보라는 남성 아바타의 말을 따라 욕실로 들어가자 특정 신체부위를 언급하며 성적인 발언을 내뱉었고, 취재진의 아바타 뒤로 이동해 마치 성행위를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해당 남성 아바타의 성희롱은 다른 여성 아바타에게도 이어졌다. |
ⓒ 백채원 |
메타버스의 기능이 점차 체험형에 가까워지면서 VR기기를 활용해 3D로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취재진은 소셜 VR 플랫폼 'VR CHAT(VR 챗)'에도 접속해 충격적인 성범죄의 실체를 확인했다.
▲ 메타버스 플랫폼 VR CHAT의 한 월드 내부 모습이다. 2층에는 헌팅이 목적인 클럽이, 3층에는 헌팅에 성공한 이들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침실이 있다. |
ⓒ 백채원 |
2층에는 클럽을 연상하게 하는 조명과 무대가, 3층에는 침실이 여럿 있었다. 2층에서 헌팅에 성공하면 성관계를 위해 3층의 룸으로 향하는 구조다. 서로를 만지며 수위 높은 대화를 일삼는 그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용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맵에 접속하는 이용자의 80~90%는 남성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아바타에서는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물론 가상공간의 특성상 아바타의 성별은 현실의 성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성별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점이다.
실제 성별이 남성인 사람들이 자신의 아바타를 반라의 여성으로 설정해 여성 아바타 간의 성관계를 묘사하고, 이를 통해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심지어 이들은 여성 아바타에 부착할 성인 기구를 커스터마이징해 현금으로 거래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미성년자도 쉽게 접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Only VR(온리 VR)', 즉 VR 전용인 이곳은 기기만 착용하면 시공간을 불문하고 입장할 수 있는 글로벌 유흥업소다. 타인의 신체를 허락 없이 만지고, 성행위를 관음하거나 나체를 촬영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곳은 보통의 가상공간과 분명 다르다.
윤리적 제도뿐 아니라 기술적 대응도 구축돼야
이에 대해 이지영 서울디지털재단 선임은 지난 11월 3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가 새로운 디지털 사회로 자리매김하려면 윤리 가이드라인, 윤리 리터러시 프로그램 등의 제도 마련과 윤리 의식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의 비영리 자선 단체인 South West Grid for Learning(SWGfL)에서는 유아층에도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제공하고,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는 연령⋅나이⋅성별의 제약 없이 모두가 리터러시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 선임은 "윤리적 제도뿐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기술적인 대응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디지털재단의 <메타버스 이슈 및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기술적 예방책은 효과적인 대응 방안이다.
예시로 게임사 QuiVR에서 개발한 '퍼스널 버블'(성추행과 같은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상대방에게 게임상에서 튕겨내 버리는 기능)과 메타버스 Meta Horizon World에서 개발한 '퍼스널 바운더리'(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아바타 간 일정 거리 두기 기능)이 있다. 이러한 대책은 이용자의 판단에 따라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와 같은 조치의 일환으로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국제인터넷핫라인협회 '인호프'(INHOPE)와 지난 11월 1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인호프는 아동청소년 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국제네트워크 기관이다. 이들은 파트너십 체결을 통해 모니터링 기술 고도화(인공지능 기반 음란물 검출 등), 신고 핫라인 구축 등 온라인 아동 성착취물 근절을 위해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능동적인 '사이버 감찰대' 필요
메타버스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을 지적하고 제지하는 이용자 문화가 요구된다. 한 이용자가 로블록스에서 성희롱을 당할 때 다른 이용자가 이를 만류했던 것처럼, 작은 행동 하나가 큰 불씨를 막을 수 있다. '사이버 감찰대' 역시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결국 가상 공간에서도 현장을 통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3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빅브라더의 역할이 아닌 같은 플랫폼 이용자로서 건강한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관찰자'가 돼야 한다. 취재진이 평범한 메타버스 이용자 중 한 명으로 접속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윤리적 토대가 마련된다면 메타버스는 범죄가 난무하는 '밀실'이 아닌 오롯이 시공간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광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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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페토, 로블록스, VR챗에 대한 취재는 지난 11월 20일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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