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티보 우승 이혁, “콩쿠르 한국인 입상은 클래식 대중화의 결과”
전쟁 탓 배움의 터전, 모스크바서 파리로 옮겨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자선 음악회 개최
28일 롯데콘서트홀 프로코피예프 협주곡2번 협연
“또래 한국 연주자들이 열정적이죠. 음악을 사랑하고 노력하기에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 되다 보니 청중도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11월 롱 티보 크레스팽 콩쿠르(롱 티보 콩쿠르)에서 일본의 마사야 카메이와 공동우승 후 돌아온 피아니스트 이혁(22)이 26일 서울 서초동 스타인웨이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를 연주한 뒤 “쇼팽이 많은 감정을 담아낸 곡이라 연주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2016년 파데레프스키 콩쿠르 최연소 우승, 2018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3위 입상 이후 2021년 폴란드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중 유일하게 결선에 진출한 이혁은 그해 12월 파리 아니마토 콩쿠르 쇼팽 에디션에서 우승했다. 이어서 올해 11월 프랑스 최고 권위의 피아노 콩쿠르인 롱 티보 콩쿠르를 제패하는 등 꾸준히 연마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혁은 그간의 궤적을 회고하며 “딱히 힘들었던 적은 없다”며 “프로그램 선정부터 경연까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과정 자체를 즐긴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작곡가들을 만나며 축제처럼 즐기고 응원하며 지냈다”고 했다. 당분간은 콩쿠르는 생각하지 않고 연주에 열중하겠다는 그는 “콩쿠르 참가는 무대를 얻기 위해서였다. 상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수상했다고 음악가의 삶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덧붙였다.
14세 때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리로 본거지를 옮겨 에콜 노르말에서 수학중이다.
“프랑스 음악을 예전부터 사랑했고 깊게 탐구해보고 싶었는데 에콜 노르말에 다니면서 가능해졌다”는 그는 “한편으론 정들었던 모스크바에서 급하게 정리를 하느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한 건 아쉽고 슬펐다”고 말했다.
이혁은 다재다능하다. 특히 6~7세 때 시작한 체스는 취미 이상이다. 최근 바르샤바에서 열린 속기전에서 3위에 입상할 정도다.
“작곡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등 20세기의 위대한 음악가들이 체스를 즐겨 뒀어요. 한 게임에 4시간인 클래식 체스를 집중해서 두다 보면 체력에도 도움 되죠. 논리적인 게임입니다. 음악도 논리가 없으면 제대로 연주하기 어려워요.”
한참동안 체스 예찬론을 펴던 그는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싶다. 한국에는 아직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피아노 뿐 아니라 세 살 때부터 배운 바이올린도 수준급이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연주가 가능하다니 보통이 아니다.
재즈나 타악기에 관심이 많아서 드럼, 아프리카 민속 타악기를 어린 시절부터 탐구해왔다고 한다. 평소에 니콜라이 카푸스틴이나 알렉산더 츠파스만 같이 재즈와 클래식을 결합한 작곡가들의 연주도 즐긴다.
해외에서도 종종 자선공연에 참가했던 이혁은 지난 20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첫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수익금은 중앙대병원 어린이 병동에 입원 중인 소아 환우들의 치료를 위해 기부했다.
“오래된 꿈 중 하나였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했죠. 뜻이 맞는 팬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이날 해설을 맡은 동생 이효(15) 역시 피아니스트다. “제가 그 나이일 때보다 동생이 더 잘 치는 것 같다. 어떻게 성장할지 기대된다”는 이혁은 새해에 동생과의 피아노 듀오 콘서트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그 밖에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에서 많은 연주회를 갖는다. 특히 7~8월 엑상프로방스, 노앙 쇼팽 페스티벌 같은 프랑스 음악축제들에 참여하고, 9월에는 안토니 비트가 지휘하는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협연한다. 한국에서는 9월 금호아트홀연세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보다 먼저 12월 28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이혁을 만날 수 있다. 롱 티보 콩쿠르 결선곡이기도 한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이병욱이 지휘하는 디토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2부에는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한다.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 중 하나예요. 프로코피예프가 피아노 협주곡을 다섯 곡 썼어요. 1, 3, 4, 5번이 해학적이고 역동적이고 즐거운 반면 2번은 암울하고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하죠. 프로코피예프가 이 곡을 친구에게 헌정했는데 친구가 자살해요. 이 곡의 악보가 화재로 소실됐었는데 기억력으로 되살려서 쓴 작품이기 때문에 애착이 남달랐을 겁니다. 이 대작을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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