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럽으로, 태극전사들의 새로운 도전
[이준목 기자]
기적의 16강 신화를 이뤄내며 2022 카타르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태극전사들이 다시 소속팀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특히 곧바로 시즌이 재개되는 유럽파들의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프리미어리그 듀오'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울버햄튼)이 월드컵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두 선수는 지난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한국의 극적인 16강행을 결정짓는 결승골(손흥민 어시스트-황희찬 득점)을 합작하며 한국 축구의 저력을 증명한 바 있다.
손흥민의 토트넘은 오는 26일(이하 한국 시각) 오후 9시 30분 영국 런던 브렌트포드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브렌트포드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원정경기를 앞두고 있다. 토트넘은 카타르월드컵 휴식기 직전까지 9승2무4패(승점 29점)를 거둬 선두 아스널(승점 37점)과 맨체스터 시티(승점 32점), 뉴캐슬(승점 30점)에 이어 4위를 달리고 있다.
이어 황희찬의 울버햄튼도 오는 27일 0시 영국 울버햄튼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에버튼의 EPL 17라운드 홈경기로 리그 일정을 재개한다. 울버햄튼은 승점 10점(2승4무9패)으로 리그 최하위(20위)를 기록 중이다.
월드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올시즌 현재 손흥민과 황희찬의 소속팀 내 상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손흥민은 지난달 2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음벰바와 충돌해 안와골절 부상을 당했다. 이후로 수술을 받느라 같은달 7일 리버풀전, 13일 리즈유나이티드전에 모두 결장했다
또한 부상 문제를 제외하고도 손흥민의 올시즌 페이스는 다소 저조한 편이었다. 손흥민은 올시즌 각종 대회를 통틀어 현재 공식전 19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대회 별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3경기 3골2도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경기 2골이다.
여기서 실제로 골을 넣은 것은 단 2경기 뿐이다, 리그에서는 9월 레스터시티전 헤트트릭, 10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프랑크푸르트전 멀티골로 '몰아치기'를 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에서는 득점이 없다. 지난 시즌 아시아 선수 최초로 리그 공동 득점왕(23골)까지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득점의 양과 질, 경기력의 꾸준함 모두 기대에 못미친다.
3번의 월드컵 본선출전과 첫 16강 달성으로 대표팀 커리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손흥민에게 다음 목표는 역시 소속팀에서의 우승이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 이후 아직까지 클럽에서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소속팀 토트넘 역시 우승에 목마른 팀이다.
토트넘은 히샬리송(브라질)을 비롯하여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많은 선수들이 부상과 체력부담에 시달리고 있어서 정상적인 전력이 아니다. 월드컵 4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던 손흥민도 아직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지만, 팀 사정상 쉴 틈이 없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도 월드컵에서처럼 당분간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에는 소속팀 복귀 이후 처음으로 치른 니스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해 16분을 소화하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황희찬은 올시즌 소속팀에서 아직 첫골을 신고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임대로 합류해 좋은 활약을 보이며 조기 완전이적을 확정한 황희찬이지만, 올시즌에는 주전 경쟁에서 밀려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속팀도 전반기 최악의 부진을 거듭하며 강등 위기에 몰려있다.
소방수로 나선 스페인 출신의 홀렌 로페테기 감독 체제에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황희찬이 초반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는게 중요하다. 울버햄튼이 최근 황희찬의 포지션 경쟁자로 꼽히는 브라질 출신의 공격수 마테우스 쿠냐를 임대 영입한 것도 황희찬의 입지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황희찬은 지난 21일 카라바오컵 질링엄(4부)과 16강전에서 후반 교체 출격해, 페널티킥 유도와 도움 1개를 기록하는 쾌조의 컨디션으로 월드컵의 상승세를 이어가며 에버튼과 리그전에서의 활약도 기대되고 있다.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 수비의 중심으로 활약했던 김민재(나폴리)는 월드컵 기간에 종아리 부상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김민재는 올시즌 소속팀 나폴리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월드클래스 수비수로 부상했다. 리그 전반기 15경기에서 단 12실점을 내준 나폴리의 철통수비와 1위 등극에는 김민재의 기여도가 매우 컸다.
하지만 나폴리는 김민재가 빠지고 월드컵 휴식기 동안 치른 4경기에서 무려 10실점을 기록하며 흔들렸다. 친선경기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김민재가 빠진 수비진에서 주전과 백업의 기량차가 크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다행히 김민재가 팀훈련에 복귀하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강행군을 이어온 만큼 김민재의 체력관리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국축구의 미래' 이강인(마요르카)은 소속팀의 코파 델 레이(국왕컵) 3라운드(32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이강인은 지난 21일 3부리그 레알 우니온과의 경기에서 국왕컵 2라운드 경기에서 선발출장하여 복귀전을 치르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
이강인은 올시즌 마요르카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리그에서만 2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생애 첫 출전한 월드컵에서도 조규성의 득점을 어시스트하여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동안 유소년 시절의 잠재력에 비하여 성인무대에서의 연착륙에 어려움을 겪었던 이강인이지만, 올시즌을 기점으로 소속팀과 대표팀에 모두 스텝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강인의 라리가 복귀전은 오는 31일 오전 1시에 열리는 헤타페와의 경기다.
하지만 모든 유럽파들이 장및빛 전망만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벤투호의 주전 공격수 황의조는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황의조는 프랑스 리그앙 보르도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지난 8월 잉글랜드 노팅엄 포레스트 이적과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임대를 거치며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황의조는 올림피아코스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주전경쟁에서 밀렸고, 자연스럽게 경기에 뛰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또한 소속팀에서의 부진은 대표팀까지 이어지며 카타르월드컵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가나와의 2차전부터는 조규성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조규성이 가나전 멀티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스타'로 부상한 반면, 황의조는 무득점으로 월드컵을 마감했다.
월드컵에서 반전을 이루지 못한 황의조는 올림피아코스 복귀 이후에도 전력외 선수 취급을 받고 있다. 같이 월드컵에 출전했던 팀동료 황인범은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올시즌 보르도와 올림피아코스에서 경기출전 경력이 있는 황의조는 국제축구연맹 규정상 원소속팀 노팅엄 복귀도 당장은 불가능한 상황이라 부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올겨울에 새로운 유럽파 태극전사가 탄생할지도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현재로서 1순위로 꼽히는 것은 역시 조규성(전북)이다. 지난 시즌 K리그그 득점에 이어 왕월드컵에서 황의조를 제치고 한국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까지 부상한 조규성은, 벌써 셀틱(스코틀랜드) 페네르바체(터키) 등 여러 유럽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에 소속된 유럽파는 8명이었다. 손흥민-김민재-이강인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있지만, 축구 강국들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수치다.
역시 이번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이웃 나라 일본이 최종엔트리 26명 중 무려 19명을 유럽파도 채운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포르투갈을 제압하고, 일본이 독일-스페인 같은 세계적인 강호들을 격침시키며 '아시아 돌풍'을 이끈데는 모두 '유럽파의 경험'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K리거 출신인 김민재는 "유럽파가 많은 일본이 부럽다"면서 해외진출을 적극 장려하는 일본에 비하여, 한국에서 유럽으로 직행하는 것이 어려운 국내 축구계의 현실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축구가 지금보다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선수들이 더 큰 무대인 유럽에 진출하는 것이 활성화되어야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도전을 통하여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태극전사들의 새로운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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