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을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2. 12. 26. 15: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상균 칼럼]
일본 장기 디플레 출발은 1990년대 초 자산 시장 급랭
韓 자산 급락 → 투자·소비 위축 → 수요 감소 악순환 막아야
주간국장
“집이든 주식이든 수익을 낼 수 있어야 사죠?”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던 2013년, 일본 증시는 모처럼 큰 활황세였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로 공격적 양적 완화가 진행됐다. 돈을 풀면 자산 가격이 올라가는 건 불문가지였다. 친한 일본인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주식 좀 샀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한결같았다. 주식 투자를 왜 하냐는 것이었다. 40대 중후반이었던 그들 중 자가 주택을 소유한 경우는 절반도 안 됐다.

일본의 중년층은 자산 시장에 투자해 돈을 벌어본 경험도 없고 주변에서 보지도 못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즈음인 1990년대 초반부터 자산 가격의 급락이 시작됐고 ‘잃어버린 30년’ 동안 제대로 된 반등도 없었다. 더 낮은 연령대는 물가와 임금이 오르는 것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장기 디플레에 시달리는 일본을 담당하는 특파원 입장에서 늘 품고 있던 의문이 있었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예산을 그렇게 퍼부었는데 왜 경제가 살아나지 못했냐’고 묻고 다녔다. 도쿄의 한 명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욕 상실’이라는 대답을 줬다.

제로금리가 되니 기업 경영자는 자기자본 이익률이 3%만 넘어도 양호한 경영 성과를 냈다고 칭찬을 받았다.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 신사업 진출 등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개인 레벨도 마찬가지다. 은행에 저축해봐야 이자를 1%도 못 받았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 5%의 이익만 내도 엄청난 수익률이다. 기를 쓰고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가 없다.

경제 주체들의 목표와 의욕 상실은 국가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로 이어졌다. 출발점은 1990년대 초반 자산 가격 급락이었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버블 시기 잉여자금으로 부동산에 대거 투자를 했는데, 가격이 급락하면서 부실 채권이 누적됐고, 이것이 수익성 악화로 연결되면서 투자 위축 → 고용 악화 → 수요 감소 → 물가 하락 → 기업 수익 악화의 악순환이 생겼다.

당시 일본 부동산 가격 하락은 심각했다. 일본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1년 4499만엔에 정점을 찍은 전국 아파트 분양가는 2005년 3492만엔까지 22% 떨어졌다. 토지 가격은 대략 4분의 1이 됐다고 한다.

이와 비교하면 최근 한국 집값 하락세는 훨씬 심각하다. 올 들어 11월 말까지 세종이 12%, 대구가 9.2% 하락했다. 서울 하락률도 4.9%에 이른다. 수도권 일부 지역은 1년도 안 돼 반 토막이 났다는 현장 얘기가 나온다.

내년이 더 큰 걱정이다. 입주 물량이 올해보다 18% 급증하지만 수요는 바닥이다. 그렇다고 재건축에 따른 멸실이 활발할 가능성도 적다. 전문가들은 역전세난이 심화되며 이것이 집값을 밀어 내릴 가능성을 걱정한다.

동시에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은 1.6%(기재부 예측치)에 그친다. 2020년 한 해만 빼고는 11년째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친다. 경제 성장 능력과 생산성 자체가 위축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여기에 자산 가격 급락까지 겹치는 국면이다. 1990년대 초중반 장기 디플레에 빠져들기 시작하는 일본 경제를 닮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해야 하는 이유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