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에 박수"라는 아이들... 왜 이렇게 됐을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서부원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지금껏 윤석열 대통령의 거짓말 논란 등 연이은 헛발질에 혀만 끌끌 찼는데, 취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냈네요."
대학생이 돼 찾아온 제자들의 대꾸에 당황한 나머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최근 윤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항복'을 받아낸 일을 두고 잘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따로 찾아온 세 명의 아이들이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스스로 나름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파업'이라는 두 글자에 공공연히 거부감을 드러냈다. 전가의 보도처럼 경제 위기 국면에 파업은 가당찮다는 지적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이들이 걸핏하면 파업한다거나 '전문 시위꾼'들이 잠입해 파업을 부추기는 것 같다며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정경유착이 횡행하던 독재정권 시절, 부패한 권력자들이 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21세기 대학생의 입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은 색안경을 쓴 채 파업은 물론, 노동자라는 말조차 어색해했다. 노동자보다 근로자라는 단어가 부담 없고, 더 자연스럽다는 거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존재도, 그들에겐 그저 '파업의 온상'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듯했다.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결사 단체라는 기본적 의미조차 파업과 노동을 경원시하는 그들에겐 낯선 정의다. 여전히 파업은 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행태고, 노동은 자기 비하의 어휘다.
▲ 눈물 닦는 화물연대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렇다고 그들이 '노동 3권'에 대해 모르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험에 종종 출제되는 내용이라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 3권 즉, 단결권과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은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헌법적 권리라는 점은 중학생 정도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대입을 위한 수험 지식으로서 앵무새처럼 기억할 뿐 노동 3권의 가치와 실효성 등에 대해선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다. 심지어 단결권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운영할 권리이며 단체 행동권이 파업권과 동의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명색이 스물이 코앞인 고등학생들인데, 노동조합의 대표가 사용자와 교섭을 벌이는 방법을 알기는커녕 단체 교섭이 무슨 뜻이냐고 반문하는 아이도 있다. 하긴 근로계약서조차 쓸 줄 모르는 그들에겐 난망한 일이다. 대입에 사활을 건 학교에서 노동교육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파업은 용납될 수 없어요."
이 또한 세 명의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건넨 말이다. 그러나 파업이란 본디 일손을 놓아 사회에 불편을 끼쳐 사용자를 압박하려는 게 목적이다. 파업으로 아무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용자가 굳이 노동자들과의 대화에 나설 리 만무하다. 이런 기본적인 파업의 원리조차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알리고,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될 텐데, 노동조합이 왜 자꾸 애꿎은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만 일삼는지 모르겠어요."
그들의 이야기는 갈수록 태산이었다. 노동자들에겐 파업이 마지막 몸부림이다. 언론과 정치권을 향해 호소해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 보니, 함께 어깨 겯고 길거리로 나서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해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좋아서 파업하는 노동자는 없다는 말조차 허공에 흩어졌다.
학생들에겐 위험한 단어 '노동' '파업'... 뿌리깊은 오해
전태일의 불꽃 같았던 삶도 그들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한 듯하다. 비참한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던 그의 희생을 기린다면서도, 지금의 파업은 별개라고 말하는 그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되레 전태일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며 반론한다.
그들에게는 전태일조차 수험용 지식일 뿐인 걸까. 실제 전태일도 당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한 그가 독학으로 근로기준법을 익힌 것도 그래서였다. 오죽하면 '대학생 친구 한 명'을 소원했겠는가. 노동조합의 결성조차 여의치 않던 엄혹한 시기, 결국 그는 분신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노동자들을 파업의 외길로 내몬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화물연대 운전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아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아이는 없었다. 이유야 어떻든 '파업은 나쁜 짓'이라는 편견이 강고하게 아이들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저(자기)들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을 옹호하면서 아이들이 건넨 또 하나의 이유다. 정작 최저임금을 전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먹고 살 만한 이들이 되레 설친다는 거다. 정부의 '귀족 노동자'라는 표현이 조금 지나친 면은 있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라며 짐짓 두둔했다.
▲ 총파업중이던 지난7일, 당시 화물연대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윤석열 정부 규탄, 노동자 참여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자신의 차량 번호판을 목에 걸고 참석하고 있다. |
ⓒ 유성호 |
'꼰대' 소리를 듣게 될까 조심스럽지만, 나는 30년 전 대학 재학 시절엔 정규 커리큘럼처럼 매년 여름에 농촌활동을 떠났고, '노학연대'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 당시 내게 농민과 노동자는 대학생의 '벗'이었고, 손잡고 세상을 함께 바꿔나갈 주체였다. 농민과 노동자의 자녀로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리매김이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졌을 리 없건만, 노동자의 자녀가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비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 부모의 절대다수가 노동자일 텐데도, 회사원이라고 답할지언정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아이는 지금껏 단 한 명도 못 봤다. 전교조 조합원이라고 하면, 교사가 어째서 노동자냐며 되묻는 아이들이 여전히 많다.
누구는 직업 귀천을 따지는 유교적 분위기가 여전히 팽배한 탓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이 또한 분단의 모순에 기인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노동이라고 하면 대번 공산주의를 떠올리는 아이들이 태반인 현실이다. 북한은 노동당의 일당 독재국가 아니냐며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5월 1일을 노동절로 부르지 말고, 근로자의 날이나 차라리 '메이데이'로 부르면 좋겠다는 아이들도 있다. 언젠가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한 정당의 캐치프레이즈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몇몇 되바라진 아이들은 이를 두고 '빨갱이 정당 인증'이라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들과 헤어지며 깊이 깨달은 바가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 절실한 건, 대학입시를 위한 맹목적인 공부가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노동교육이라는 사실을. 단언컨대, 십중팔구 노동자가 될 아이들이 노동자를 비아냥거리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은 날로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더 기막힌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2일 교육부가 생태전환교육과 함께 노동교육을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교육 목표에서 갑자기 삭제했다는 거다. 얼마 전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대체하고, 성평등과 성소수자 용어를 삭제한다고 밝혀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일었는데, 사회적 합의 따위는 괘념치 않겠다는 식이다(관련 기사: 교육부 "최초로 투명한 교육과정"... 80개 단체 "막장드라마").
백년지대계 교육이 5년짜리 정치 권력의 입김에 누웠다 일어서기를 반복할 모양새다. 바야흐로 '퇴행의 시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주상 같은 지침인 교육과정에서 노동교육이 빠졌으니, 아이들의 노동 비하는 더욱 심각해질 듯하다. 미래 노동자가 될 그들에게 노동교육을 시킬 수 없는, 참으로 어이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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