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서브아빠', 강기영은 칼을 갈고 이 시간을 기다렸다
Q : 목소리 좋다는 말 자주 듣죠?
A : 하하하. 그렇습니까? 전에는 지금보다 목소리가 더 얇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변호사 연기를 하며 복식호흡을 하루에 30~40분씩 하기도 했고, 말투도 좀 더 느긋해진 것 같아요.
Q : 그나저나 이번 촬영이 생애 첫 화보였다고요.
A : 맞아요. 늘 영상 카메라 앞에서만 서다가, 멋진 옷 입고 사진 찍히려니 민망하더라고요.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Q : 배우라면 한 번쯤 이런 순간을 상상해봤을 법도 한데.
A : 그럼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가 큰 관심을 받게 되며 생긴 일이니까,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Q : 인기를 실감하나요? 유명해지면 주변이 달라진다고들 하잖아요.
A : 가족, 지인들에게 사인 요청이 쇄도하고, 오랜만에 연락 오는 친구도 많고요. 가족의 기쁨이 된다는 점에서도 좋아요. 감사한 일이 많죠. 〈우영우〉 촬영을 방영 초기에 마쳤는데, 정말 그러기를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Q : 왜요?
A : 제 캐릭터인 ‘정명석’에게 ‘유니콘 상사’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엄청난 관심이 모이니까,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겼을 것 같거든요. 〈우영우〉의 문지원 작가 또한 “정명석은 40대 초반이 가질 수 있는 멋짐을 다 넣은 캐릭터”라고 한 적 있어요. 비현실적이라 해도 될 만큼 이상적인 인물이죠. 배우로서 들여다보면 ‘정명석’이 ‘우영우’(박은빈)를 편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성과가 우선인 사람이 아닐까 해요. 14년 차 시니어 변호사로서 ‘우영우’의 기발하고 창의적인 방식을 보며 초심을 떠올렸을 것 같고요.
Q : 처음 〈우영우〉의 대본을 받고 읽을 때,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예상했나요?
A : ENA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지만, 넷플릭스라는 대형 OTT 플랫폼과 함께했으니 더 파급력이 큰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채널, 플랫폼에 따라 더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콘텐츠가 좋으면 결국 알아봐주는 게 아닐까요?
Q : 대본을 읽을 당시 ‘정명석’은 어떤 인물 같았나요?
A :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인물. ‘츤데레’ 같은 매력도 있고,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있고, 매력이 입체적이더라고요. ‘정명석’뿐 아니라, 〈우영우〉 거의 모든 캐릭터가 생동하는 것 같아요. 주인공인 ‘우영우’를 포함해, ‘권모술수’라는 별명이 붙은 ‘권민우’(주종혁), ‘봄날의 햇살’ ‘최수연’(하윤경) 등 모두 그래요. 그래서 요즘처럼 SF를 비롯해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 사이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것 같고요. 그야말로 극본의 힘이죠. 전작인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의 ‘박유식’ 등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긍정적 반응이 뒤따르기도 했어요. 그런 면에서 〈우영우〉의 ‘정명석’은 비교적 새로운 선택 같았달까. 작품을 고르는 기준 중 캐릭터의 매력이 첫 번째거든요. 흥미가 생기면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요. 악역이라고 해도, 그 캐릭터의 배경이나 성격에서 서사가 드러날 때, 더 작품에서 생동하는 것처럼 느끼잖아요. 그런 인물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 커리어를 돌아보면 유쾌하고 발랄한 연기를 많이 한 만큼, 〈우영우〉는 배우로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갈망에 의한 선택이기도 해요.
Q : 배우 강기영만의 무기는 뭘까요?
A : 현실에 가까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과하지 않고 일상적인 언어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거든요. 작품에서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게 보인다는 게 제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Q : 적재적소에 애드리브를 구사한다는 점을 꼽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A : ‘정명석’이 ‘우영우’의 자기소개를 듣고 “너무 재밌어요”라는 대사 등, 제 애드리브 장면이 꽤 화제가 되더라고요. 큰 관심에 감사하기도 한데, 한편으로 낯설기도 해요. 애드리브는 예전에 광고 모델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의 경험이 도움이 돼요. 광고는 매체 성격상 15초, 30초 안에 매력적인 모습은 물론 한마디라도 힘있게 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저는 배우로서 천천히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럴 때면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요.
Q : 배우로서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요?
A : 작품과 맡은 캐릭터에 대해 깊게 연구하다 보면 외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그 이후가 중요하죠. 연구한 성과를 저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연기에 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우영우〉를 찍으며 배운 게 많아요. 사람 대 사람으로는 물론, 박은빈 배우와는 서로 맡은 캐릭터인 ‘우영우’와 ‘정명석’으로도 응원하는 기분을 느꼈거든요. 처음 겪은 감정이에요. 결말쯤에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은빈 배우는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좋고, 배울 점이 많아요. 존경심이 들 만큼.
Q : 데뷔 14년 차, 출연 드라마만 19편.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가 적당한 시기에 왔다고 보나요?
A : 벌써 그렇게 됐나요?(웃음) 이르다, 늦다로 나누기보다는, 배우로서 차분해진 시기에 온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에요. 〈우영우〉는 신드롬이라 해도 무방하고, 출연한 배우들은 취해도 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처럼 가정도 생기고, 배우로서도 안정을 찾은 시기에 이런 순간을 맞은 게 다행인 것 같아요.
Q : 강기영을 지금까지 오게 한 동력은 뭔가요?
A : 지금은 가족, 이전에는 열등감이 아니었나 해요. 예민하고 자존심이 센 편이었거든요. 동료 배우들이 스타가 되는 걸 지켜보며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칼을 갈았던 것 같아요. 질투가 아니라, 나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언젠가 알아주는 날이 올 거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는 마음으로요.
Q : 유독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A : 연기가 마음처럼 안 될 때 가장 힘들었죠. 그리고 작품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될 때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기회가 왔어도 잘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열정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거든요. 조바심도 내며,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간이죠. 그런 시간을 지나 차분해진 시기에 〈우영우〉를 만나지 않았나 해요.
Q : 그런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에 품고 있던 문장이 있었나요?
A :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이미 내 안에 있다.” 유명 브랜드의 광고 카피였던 것 같은데, 와닿아서 모토처럼 여겼어요. 오디션에 참여할 때 자기소개에 쓸 만큼 좋아하던 문장이에요.
Q : 처음을 돌아보면 어때요?
A : 2003년, 연기 학원을 다니며 배우를 꿈꾸던 때, 초반에 오디션에서 감독님, 작가님이 왜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면 농담을 섞어 이렇게 답했어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인기도 많아지고 싶다”라고요. 신인 배우로서 메소드 연기를 하고 싶고, 대단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흥미롭고 개성 있다고 여겨지길 원했거든요. 나름의 전략이었는데, 그때는 통했던 것 같아요.(웃음) 어쩌면 지금이 꿈꾸던 모습 아닌가요? 화제작의 중심에 선 인물을 연기하고,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니까. 감사하죠. 반면에 연기는 할수록 어렵다고 느껴요. 저는 좋은 연기라는 게 꽤 추상적이지만, 맡은 역할에 대해 사력을 다해 고민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자연스럽고 개성 있는 연기도 좋지만, 발성이나 시선 등 기본기가 탄탄해야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보고요. 장르는 다양하고, 캐릭터는 무궁무진하니까.
Q : 다음 목표는요?
A : 높이 오르기보다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신선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고요. 〈우영우〉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 기성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대중적으로 제 이미지와 연기가 어느 정도 파악됐을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정명석’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통해 다시 신선한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걸 느끼며 앞으로 더 다양한 걸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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